제임스 설터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패닉의 상태에서도 포기되지 않는 포기하지 않아도 좋은...

by 우주에부는바람

제임스 설터는 2015년 아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책은 제임스 설터의 아내가 그가 <파리 리뷰>, <뉴요커>, <에스콰이어> 등에 실은 기사, 에세이, 인터뷰 글 등을 모아 엮은 것이다. 제임스 설터의 아내인 케이 엘드리지 설터는 책의 서문에서 “쌓아두면 안 돼”라는 제임스 설터의 말을 전하는데, 어쩌면 이것이 책의 원제인 “Don’t save anything”의 의역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소설은 아마도 우연의 산물이겠지만 좋은 소설은 가능성의 영역에 속해 있고, 작가는 글을 쓰며 그 가능성을 생각한다. 간단히 말해, 좋은 소설은 이룰 수 있는 목표다. 나머지는 책이 알아서 한다. 정말로 많은 찬사가 대단찮은 것들에 쏟아지니, 찬사를 받으려고 애써봤자 별 의미가 없다.

결국 글쓰기란 감옥, 절대 석방되지 않을 것이지만 어찌 보면 낙원인 섬과 같다. 고독, 사색, 이 순간 이해한 것과 온 마음으로 믿고 싶은 것의 정수를 단어에 담는 놀라운 기쁨이 있는 섬.” (p.29, <『나는 왜 쓰는가: 소설의 기술에 대한 생각』(1999년)> 중)


코로나 19의 심상찮은 확산으로 온 세상이 침울하여 독서의 진도가 신통치 않았다. 귀가 얇은 것처럼 가슴이 두툼하지 못하여 이럴 때 나는 쉽사리 공명하는 편이다. 좋은 책은 모두 읽고 잠시 생각하고 이제 정리를 해보자 하면서 다시 페이지를 들출 때 또 다른 공명으로 나를 들뜨게 만드는데, 이 책이 그랬다. 정작 읽는 동안에는 지루하여 몇몇 페이지는 서둘러 넘기고 말았는데 말이다.


“... 바벨은 다른 무엇보다 구두점, 주로 마침표를 신봉했다. 그는 어떤 총칼도 올바른 지점에 찍힌 마침표만큼 사람의 심장을 깊숙이 관통하지는 못한다고 썼다. 그 힘은 더 이상 덧붙일 문장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는 뺄 문장이 없을 때 나오는 것이었다...” (p.40. <내러티브 매거진>, 2009년 봄호 중)


책에는 두서없이 다양한 글들이 실려 있다. 몇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 구분선이 책을 읽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책에는 알만한 작가에 대한 인터뷰를 비롯해 글에 대한 제임스 설터의 생각을 담은 기고문도 있고, 조금 본격적인 작가론이랄까 작품론이 있는가하면 여행기라고 불러야 하나 싶은 글이 등장하기도 한다. 정확한 카테고리로 나뉘지 않는 이 글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암벽 등반에 대한 것들이다.


“... 산은 암살할 수 없고 고지는 하루만에 정복되지 않는다. 영광이란 오로지 그걸 획득한 사람에게 일정 기간동안만 속해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도덕이 가장 중요하다. 예상 밖의 우승도, 부당한 승리도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운이라는 것도 없다. 이런 엄격함이 스포츠에게 힘을 부여한다. 이곳에는 천국과 최후의 심판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암벽 등반은 정직하다. 명예야말로 이 종목의 본질이다.” (p.277, <라이프> 1979년 8월호 중)


자신이 직접 미국 암벽 등반의 성지라고 부를만한 장소에서 암벽 등반의 성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과 마주치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작성하고 있는데 흥미롭다. 어쩌면 작가 자신도 조금은 암벽 등반이라는 행위에 몸을 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리더의 리드에 따라 어는 높이까지 올라가는 장면이 나왔었나 싶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암벽 등반의 또 다른 한 켠에는 스키 이야기가 나온다. 스키의 성지라고 부를 법한 아스펜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다.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거나 한다.


“그렇게 겨울은 눈과 함께한다. 땅은 순백이다. 길 건너 집에서 실내복을 입고 있는 여성이 발코니 문을 열고는 난간의 눈을 털어낸 다음 방 안의 온기로 물러나기 전에 산을 바라본다. 고작 아침 여덟 시다. 커피를 마시고 옷을 입을 시간이다. 침대는 정돈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스키를 들고 곤돌라로, 온통 방금 내린 눈으로 덮여 있는 저 위쪽 세상으로 갈 것이다. 재능 있는 여성이 스키를 타는 것보다 더 짜릿한 건 없다. 대담함, 우아함, 속도.” (p.388, 1994년 <로키 마운틴 매거진> 중)


주말마다 빼먹지 않던 부모님과의 외식을 지난주부터 포기했다. 아내와 나의 또 다른 거처라고 부를만했던 수영장들이 대부분 문을 닫아걸었다. 동네 피트니스 센터에 들르는 일은 아직 멈추지 않을 수 있는데, 그마저도 조심스럽다. 아내는 최애 아이템이었던 새벽 배송을 포기하였다. 소소한 일상이 멈춰 선 자리에서 모두가 얼마간은 패닉 상태라고 할 법하다. 이 와중에 이월까지만 담배를 필 것이라고 아내에게 큰 소리를 쳤다, 그러니까 패닉 상태에서...


제임스 설터 James Salter / 최민우 역 /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Don’t Save Anything) / 마음산책 / 447쪽 / 202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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