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모리슨 《솔로몬의 노래》

현실 사회의 핍진한 어둠을 환상이라는 실루엣 너머로 뚜렷하게...

by 우주에부는바람

토니 모리슨의 《솔로몬의 노래》는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에카 쿠르니아완의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 이탈로 칼비노의 자작 3부작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하다. 상처로 가득한 개인의 역사를 통과하는 장치로 환상을 끌어들이지만 이것이 현실 사회가 품고 있는 핍진한 어두움을 가리키는데 장막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 실루엣을 통해 역사는 더욱 뚜렷해질 수도 있다.


“벽을 짚고 질질 기는 아버지의 마음이 온갖 모순적인 감정으로 벅차올랐던 것처럼 – 수치심, 분노 그리고 마지못해 느끼는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 – 아들 역시 그 나름의 모순적인 감정을 느꼈다. 아버지가 다른 남자 – 그게 자기 자신이라 해도 –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웠다...” (p.116)


소설은 삼대에 걸친 메이컨 데드의 이야기이다. 첫 번째 메이컨 데드는 백인들의 땅 가운데에 자신의 농장을 마련했다가 죽임을 당한다. 그때 열 여섯이었던 메이컨 데드의 아들은 임대업을 하며 부를 축적했고 도시에 하나뿐이었던 의사의 딸과 결혼을 하는 성과를 냈다.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세 번째 메이컨 데드는 두 메이컨 데드와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새로운 흑인 중산층의 일원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밀크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리우는 인물이다.


“공포는 아무래도 변함이 없었다. 밀크맨은 햇살을 똑바로 받으며 기타의 침대에 누워, 얼음송곳이 목을 관통하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보려 애썼다. 하지만 포도주처럼 붉은 피가 뿜어나오는 광경을 눈앞에 그려보고 얼음송곳이 목을 뚫고 들어오면 기침이 날까 생각해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따. 공포는 십자로 겹쳐놓은 앞발들처럼 그의 가슴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이마에다 팔을 얹어, 너무 많은 생각이 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 팔이 드리운 어둠 속에서, 그는 얼음송곳이 빗방울보다 더 빨리 떨어져내리는데 자신은 어린아이처럼 그걸 혓바닥으로 받으려 하는 상상을 했다.” (p.185)


밀크맨의 아버지인 메이컨 데드에게는 여동생 파일러트가 있는데, 첫 번째 메이컨 데드의 죽음 이후 남매는 헤어졌다가 밀크맨이 태어날 무렵 다시 재회했다. 파일러트에게는 리바라는 딸이 있었고, 리바에게는 헤이가라는 딸이 있었다. 파일러트는 밀크맨의 고모였고, 밀크맨이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파일러트의 도움이 있었다. 메이컨 데드는 여동생인 파일러트와 왕래하지 않는다.


“... 우리 식구들 때문에 내가 완전히 돌아버리겠어. 아버지는 내가 자기처럼 되어서 어머니를 증오하기를 바라. 어머니는 내가 자기처럼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증오하기를 바라고. 커린디언스는 나한테 말도 안 걸어. 리나는 내가 나가기만 기다리고. 그리고 헤이가는 내가 자기 침대에 묶여 있든지 그게 아니면 차라리 죽어버리기를 바라지. 다들 나한테서 뭔가를 바란다고, 무슨 말인지 알아? 그 인간들이 다른 데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뭔가를 내게 바란단 말이야. 그걸 내가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데 나는 그게 뭔질 모르겠어 – 그 인간들이 정말로 바라는 게 뭔지를 모르겠다고.” (p.347)


밀크맨은 이미 태어나기 이전부터 죽임의 위기에 처한 인물이었고 지금은 파일러트 고모의 손녀인 헤이가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였던 기타로부터 살해의 위협을 당하는 지경에 처해 있다. 이 모든 죽음들로부터 이제야 겨우 스스로 벗어나볼 작정을 한 밀크맨은 아버지와 고모의 여정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흔적을 찾는 여행을 시작한다. 소설의 2부는 바로 이 여행의 이야기이다.


“... 두 사람만 제외하고,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그가 자기 삶에서 꺼져주길 바랐다. 그리고 두 예외는 모두 여자, 둘 다 검은 피부에 연세가 지긋한 노인이었다. 처음부터 어머니와 파일러트는 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싸웠는데, 자신은 막상 그들에게 차 한잔 대접한 적이 없었다.” (p.516)


소설에서는 20세기 초반 노예에서 해방된 흑인들이 거치게 된 역사가 거칠지만 환상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제대로 된 이름도 가질 수 없었던 조상의 흔적을 찾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구전되는 한 마을의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안에서 밀크맨은 그 피의 여정을 완성하게 된다. 세대를 거듭하며 흐릿해지는 역사가 아니라 세대가 거듭됨으로써 완벽해지는 역사가 그 안에 있다.


토니 모리슨 Toni Morrison / 김선형 역 / 솔로몬의 노래 (Song of Solomon) / 문학동네 / 543쪽 / 2020 (197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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