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애트우드 《심장은 마지막 순간에》

자유 의지를 지닌 인간이어서 필연적인 고난의 집합소처럼 작동하는...

by 우주에부는바람

마거릿 애트우드가 다루는 미래는 아주 먼 미래가 아니다. 그 멀지 않은 미래가 보여주는 여러 테크니컬의 상황이나 사회적인 시스템 구현 또한 짐작 불가능한 모습을 띠고 있지 않다. 지금 여기와는 분명히 다르지만 지금 여기에서 조금만 시선을 멀리 두면 금세 바라볼 수 있는 모습이다. 어쩌면 이 때문에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이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이 아니라 사변물(Speculative fiction)이라는 장르로 분류되는 지도 모른다.


소설은 완전히 망가진 사회 시스템 내부에서 많은 위험에 노출된 채로 살아가는 스탠과 샤메인 부부로부터 시작된다. 두 사람은 집이 없는 채로 자동차에서 살아가는데, 이 자동차에서의 생활 또한 아슬아슬한 판국이다. 언제든 절도를 당할 수 있고 심지어 강간이나 살해 위험으로 가득한 거리에서의 삶이 주는 극도의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못한 두 사람의 사랑 또한 아슬아슬하다.


“‘컨실리언스/포지트론’이라는 쌍둥이 도시는 일종의 실험이다. 엄청나게, 엄청나게 중요한 실험... 만일 이 모델이 최고위층에서 채택되기에 이른다면, 최종적으로는 국가 전체에 대해서까지도 구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실업자와 범죄자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서 일거에 해소될 실업과 범죄, 그것에 대해 생각해봐라!!!” (pp.76~77)


그리고 두 사람은 새로운 형태의 도시 모델 (나아가 국가 모델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에 지원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놓여져 있는 상황에서 이보다 나은 선택은 힘들다고 자위한다. ‘컨실리언스(CONSILIENCE)=재소자들(CONS)+복원력(RESILIENCE). 지금 복역하라, 우리의 미래를 위해 시간을 벌어라!’라는 표어에서 알 수 있듯, 일반 시민과 재소자라는 두 가지의 형상으로 동시에 살아가는 것이 바로 두 사람이 겪게 되는 새로운 현실이다.


하지만 스탠이 컨실리언스의 집에서 발견하게 되는 대체인이 남긴 쪽지, 샤메인이 컨시리언스에서 포지트론으로 거처를 옮기는 시간에 벌이게 되는 대체인과의 섹스는 둘 사이에 균열을 만든다. 하지만 이 균열은 갑작스럽고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대체인인 맥스/필과 조슬린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사건임이 밝혀지지만 스탠과 샤메인은 결국 이들의 계획에 동조하게 된다.


“... 컨실리언스의 모든 사람들은 두 개의 삶을, 다시 말해 한 달은 죄수로, 그다음 달은 교도관이나 시 공무원으로 살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대체인’이 지정되어 있다. 따라서 독립적인 하나의 주거지가 최소한 네 사람에게 배정된다. 첫 번째 달에는 일반 시민들이 그 집들에서 살 것이고, 두 번째 달에는 첫 달의 죄수들이 일반 시민 역할을 맡아 그 집들로 거처를 옮길 것이다. 그리고 달마다 그런 식으로 번갈아 진행될 것이다...” (p.87)


황폐화된 사회 시스템 그리고 잘못된 욕망과 만난 새로운 시스템을 향한 위험천만한 시도 등이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외면의 메시지라면, 섹스 로봇의 등장이나 전면적 뇌의 리셋을 가능케 하는 뇌수술과 이를 거부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성정을 유지하려는 시도 등은 소설이 확산시켜보고자 하는 내면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심장은 마지막 순간에》는 선택 가능하다는 자유 의지를 가진 유일한 동물인 인간이, 바로 그렇게 인간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난의 집합소를 보여주고 있다.



마거릿 애트우드 Margaret Atwood / 김희용 역 / 심장은 마지막 순간에 (The Heart Goes Last) / 위즈덤하우스 / 595쪽 / 20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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