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사건》

아무리 어두운 일이라도 밝은 채광 아래에 두고 바라보는...

by 우주에부는바람

*2019년 12월 2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아버지가 편찮으시다. 아니 편찮으실 예정이라는 말이 맞겠다. 아버지의 폐에서 3~4 센티미터의 종양이 발견된 것이 한 달 보름 전의 일이다. 건강 검진에서였다. 그리고 이어진 연세암병원에서의 검사를 통해 폐암 4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무런 자각 증상이 없던 아버지는 쉽사리 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결과를 사실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아버지를 제외한 다른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이어 갈 수 있으리라는 아무런 확신도 없이, 일주일 전에 이 글을 시작했다. 그저 그 사건에 대해 쓰고 싶다는 욕망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 년 전부터 집필 중인 책을 쓸 때마다 그 욕망이 지속적으로 스며들었다. 그런 생각을 떨칠 수도 없으면서 저항했다. 그 생각에 빠져들면 끔찍했다. 한편으로는 이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면, 바로 그 일이었을 거다...” (pp.18~19)


진단을 받은 이후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진단을 내리던 의사에게 아버지의 몸에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자, 그는 한 달 안에 증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아버지와 엄마를 진료실 바깥으로 내보내고 나만 남아 있을 때였다. 병실 바깥으로 나오자 칠십대 후반의 사내에게 어울리는 헌팅 캡 아래로 백발이 성성한 아버지가 엄마와 몇 개의 좌석만큼 떨어져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의사가 내게만 전달한 사실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였다.


“(글을 쓰면서 증거가 필요할까, 매번 자문한다. 이 시기 일기장과 수첩을 제외하면 내 머릿속을 지나간 것들은 물질적이지도 않고 점진적으로 사라져버렸기에, 감정이나 생각은 그 무엇도 확실해 보이지 않는다.

나를 제외하면 사람들과 사물들 – 퓌이 쥐멜에 쌓인 눈이나 장 T.의 휘둥그레 튀어나온 두 눈, 혹은 시스터 스마일의 노래 – 에 품었던 감정을 기억하기만 해도 사실적인 증거가 나타난다. 유일하게 진실한 기억은 물질적이다.)” (p.48)


연세암병원에 이어 국립암센터 그리고 서울대암병원을 차례로 거쳤다. 나는 아버지가 없는 자리에서 들은 의사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아버지에게 전달하였고, 함께 들은 의사의 이야기는 나름 해석하여 아버지에게 다시 전달해야 했다. 냉정하기 그지없는 의사의 태도를 두고 함께 분개하였지만 진료실 안에서 우리 둘은 그저 고분고분했을 따름이었다. 아버지는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표준화된 치료를 받기로 결정하였다. 흡연과 상관없는 종류의 폐암이고 유전자 변이가 있어 경구약인 표적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다.


“(... 이 글을 쓰며 가끔씩 터져 나오는 분노나 고통에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내 삶에서 그 순간 하지 않았던 일을 텍스트에 쓰고 싶지는 않다. 혹은 아주 조금이라도 소리를 지르거나 울고 싶지 않다. 약사의 질문을 들으며, 탐침관이 잠겨 있던 대야 옆에 놓인 빗을 보며, 내게 전해진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변화 없이 흘러가는 불행의 감정을 아주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을 뿐이다. 왜냐하면 이 이미지들을 생각하면서, 그 당시 내가 느꼈던 바와 전혀 상관없는 말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느끼는 충격은 그저 글쓰기를 하며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 충격은 글쓰기를 가능하게 하며, 글쓰기라는 진실의 기호를 이룬다.” (p.61)


나는 거듭되는 아버지와의 동행의 시간 동안 아버지를 기리는 일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되도록 나는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린 나를 이불 포대기로 업은 채 방을 서성이다 카메라에 포착된 아버지이다. 흑백 사진 속 이십대 아버지의 표정은 어둡지도 밝지도 않다. 활기가 넘치는 것도 아니지만 신산스러움이 묻어나는 것도 아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바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어린 어른이 거기에 있었다.


“삶과 죽음, 시간, 도덕과 금기, 법을 포함하는 인간의 모든 경험, 육체를 통해 극과 극을 오간 경험으로 여겼던 사건을 단어들로 표현하는 일을 끝냈다... 그저 사건이 내게 닥쳤기에, 나는 그것을 이야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 삶의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아마도 이것뿐이리라. 나의 육체와 감각 그리고 사고가 글쓰기가 되는 것, 말하자면 내 존재가 완벽하게 타인의 생각과 삶에 용해되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다.” (pp.78~79)


아니 에르노는 리얼리티를 극대화시킨 극사실주의 기법을 사용하는 소설가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어떠한 문학적 체로 거르는 일 없이, 아무리 어두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밝은 채광 아래에 두고 바라보는 일을 거듭하는 소설가이다. 《사건》 또한 그러한 작가의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작가는 가치 판단은 자제하고 그때 그 사실을 쓰는 일에만 집중한다. 나는 아버지를 그렇게 기리고 싶다.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 윤석헌 역 / 사건 (L’événement) / 민음사 / 82쪽 / 2019 (2000)



ps. 아버지의 병이 모습을 드러내기 얼마 전까지 나는 엄마에 대해 무언가를 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느 주말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거신 이유가 무엇이냐는 내 물음에 새침해져서는, 꼭 이유가 있어야만 전화를 걸 수 있느냐 따지시더니, 그저 보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고 대답하였다. 사실 엄마는 동생네 집과는 걸어서 십분 거리에, 내 집과는 자동차로 십분 거리에 살고 있다. 우리가 일하는 사무실도 엄마의 집과 멀지 않아 일주일에 서너 번 얼굴을 마주치고 그 사이 어는 날엔 불쑥 나를 찾아오기도 하신다. 그런 엄마가 주말에 또 전화를 하신 것이다. 나는 그런 엄마가 짝사랑에 빠진 소녀인 것처럼 생각되어, 짝사랑에 빠진 엄마를 쓰고 싶었던 것인데, 그 사이 이런 사건이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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