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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6. 2024

부희령 《무정에세이》

마음 편히 전염 되어도 좋을, ‘보시(布施)’보다는 ‘무외시(無畏施)’의

*2019년 10월 2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점점 피곤해진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피곤이 몰려오니 세상을 이해하려는 생각은 언감생심이 되고 만다. 나의 한 몸을 잘 추스르고 나의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고 나의 가까운 이웃의 안녕을 체크하는 일로도 시간은 꽤나 빠르게 흘러간다. 이제 올 한 해도 두 달여가 남았을 뿐이고, 이 년 동안 들르던 카페가 문을 닫는다고 하고, 엄마는 짝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내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를 하신다.


  “불교에서는 자신이 소유한 재물, 지혜나 지식, 혹은 재능을 다른 이들에게 베푸는 것을 보시(布施)라 부른다. 보시는 결국 공덕을 쌓고 복을 짓는 일이니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면 재산도 없고 지혜나 지식도 없고 내세울 재능도 없는 사람은 복을 지을 수 없는 걸까? 무외시(無畏施)가 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두려움을 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다른 이들을 불안하게 하거나 겁을 주지 않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베풂이다. 감정은 전염되기 쉬워서 화가 난 사람 옆에 있으면 누구나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즐거운 사람 옆에 있으면 반드시 즐거워진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흔히들 설명하기를, 얼굴 표정을 밝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미소 한 번이라도 건네는 것을 무외시를 실천하는 길이라고 한다...” (pp.60~61)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이 선 (그러나 그 날이 어디를 향하는 지에는 관심이 없는) 칼럼들과 갈 길을 잃은 (혹은 정해준 길을 향해서만 걷는) 기사들을 불편한 마음으로 읽는다. 어느 편에 서든 논리를 구사할 수 있으리라 짐작되는, 신념이나 가치관의 부재를 (기계적인) 중립이라고 자위하는 자칭 정치 평론가들의 썰을 불쾌한 마음으로 듣는다. 이 모든 부질없음을 달랠 방도를 찾지 못한 탓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것이 사람과 다른 생물 사이에, 사람과 물건 사이에도 오고 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생물과 물건 또한 나와 시간과 공간을 나누고 있으니까. 나를 품은 채 버려진 물건들이 어디로 가서 무엇이 될 것인지 생각해 본다면, 함부로 소유하거나 버리는 일이 두려워진다.” (p.165)


  그래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 있으리라는, 쓸모없어 보이는 자질구레의 일상에서 길어 올릴만한 선의의 건더기가 있으리라는 여념에서 작가의 칼럼집을 집어 들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작가가 적어 내려가는 거창하지 않은 상념들에서 소소한 위안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방향으로부터라도 좋으니 그럴싸한 훈풍 같은 것 불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집이었다. 한 군데 확 트인 정면으로 듬성듬성 흩어져 있는 마을 집들의 푸르고 붉은 지붕이 내려다보였다. 아침저녁으로 골짜기에서 올라오는 안개가 유독 짙은 날에는 지붕들이 희뿌옇게 지워지기도 했다. 도시 사람들이 놀러와 “이 집이 서향이지요?”라고 물어보면, 나는 괜한 트집이라도 잡힌 듯, “아니에요, 남서쪽이에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면 집은 남쪽으로 조금 몸을 틀어주었다.』 (p.208)


  칼럼집은 모두 여섯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겹치거나 흩어지려는 이야기들을 요령껏 각각의 챕터에 모았다. 1부 ‘길 위에서’는 그야말로 길이라고 불리는 공간 위에서 맞닥뜨린 이야기들이다. 2부 ‘여행의 이유’는 여기가 아닌 저기에서, 떠남이 있고 돌아옴이 예약되어 있는 거기에서의 이야기들이고, 3부 ‘기억에 대하여’는 몇몇 동물들을 비롯해 더듬어 찾은 기억 속의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잘 산다는 것을. 또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면 소소한 기쁨을 누리면서 살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을. 그러나 말 그대로 뼈가 부서져라 열심히 일할수록 삶이 점점 더 나빠지는 사람들이 분명히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그게 단순히 운이나 우연 때문은 아니라서 인류의 역사는 슬프고 잔혹하게 이어진다는 것을.” (pp.283~284)


  4부 ‘세상에 없는 집’은 내가 살았던 집 혹은 내가 살았던 동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고, 5부 ‘우리들의 안녕’에서는 우리 사회의 내면을 향하고 있는 동떨어지기 힘든 나의 손끝이 느껴진다. 그리고 6부 ‘가깝고 먼 시간’은 가족들을 비롯해 나를 구성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어쩌면 작가의 칼럼들은 ‘보시(布施)’라기 보다는 ‘무외시(無畏施)’에 가까운데, 마음 편히 전염이 되어도 좋겠다. 



부희령 / 무정에세이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 사월의책 / 365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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