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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6. 2024

복길 《아무튼, 예능》

텔레토비라고 면박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리모콘을 곁에 둔 채로...

  아내는 나를 향해 종종 야 이 텔레토비야, 라고 소리를 치곤 한다. 배에 텔레비전의 브라운관을 달고 있는 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그램의 등장 캐릭터와 닮아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고, 텔레비전을 많이 본다며 면박을 주고자 할 때 아내가 골라 쓰는 문장이다. 딱히 보고 있지 않더라도 집에서 들고 온 회사 일을 하는 동안 텔레비전을 켜 놓기 일쑤인데, 이런 나를 아내는 마뜩치 않아 한다.


  “싫으나 좋으나 내 시간은 텔레비전과 함께 흐르고 있다. 관 안 쪽에 텔레비전을 달 수 있는지, 달 수 있다면 사후 얼마나 유지되는지, 그걸 알아봐야겠다.” (p.224)


  사실 내가 텔레비전을 켜 놓고 일을 하는 동안 아내가 각별히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아내는 텔레비전 모니터를 향한 채 내 옆에 앉아, 오랜 시간 스마트폰으로 쇼핑을 하기 일쑤이다. 물론 아내가 내게 그러는 것처럼 나는 아내에게 면박을 주거나 하진 않는다. 사실 아내는 그렇게 열심히 쇼핑을 하여 집으로 배달되는 재료들을 가지고 두 식구의 일용할 양식을 만들어낸다.


  “내가 생각하는 ’위대한 하루‘가 있다. 새벽 네 시에 기상해서 피아노 연주곡을 들으며 물을 끓이고 찻잎을 준비한다. 차가 충분히 우러날 동안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하루 스케줄을 꼼꼼히 체크한 뒤, 연주곡을 끄고 차를 마시면서 아침 뉴스를 본다. (정말 쓰잘데없는 부분이지만 이런 사소한 순서 같은 게 나름 있다.) 조금씩 동이 틀 때쯤 30분 코스의 조깅을 시작한다. 반드시 한강 다리 중 하나가 코스에 포함되어야 한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거룩하게 마음을 다잡고 집에 와서 상쾌하게 샤워를 한 뒤 블루베리를 생으로도 먹고 믹서로 갈아서도 먹는다. 친구한테 이런 풍경의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고 했더니 ’전체적으로 토할 것 같다‘는 답을 들었다...” (pp.23~24)


  ’예능‘이라는 주제를 갖고 컴팩트 한 책을 한 권 써낸 작가는 ’복길‘이라는 네임을 쓰는 헤비 트위터리안이다. 어느 해인가 문제점 투성이인 대종상을 트윗으로 중계하면서 널리 알려졌다는데 스피디하면서 반전을 꾀하는 위와 같은 문장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고 여겨진다. 자신의 일상사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다가 은근슬쩍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로 스리슬쩍 넘어가곤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일 때문에 주말마다 태극기 부대 할아버지들과 동행한 적이 있다. 주로 경상도 출신인 그들 또한 원래는 영의정 정도의 고위 관료였으나 책이나 드라마에서 본 뭔가 강력한 궁중 비화 같은 문제로 산속에서 두문불출하다가 나라가 걱정되어 통곡하려 나온 유생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듯했다. 그러나 어느 때의 유생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건지 성군 박정희를 찬양할 때는 사육신, 아둔한 임금을 위해 첨언할 때는 율곡 이이, 사실은 이런 집회보다는 낭만을 더 중요시한다는 걸 어필할 때는 정철, 재벌 탄압과 규제 완화 등을 이야기할 때는 정약용, 북한을 때려 죽이고자 할 때는 대원군, 미국 국기를 흔들고 대통령의 일본 외교를 지적할 때는 이완용인 어마어마한 조선 남자 위인 리믹스였다...” (pp.152~153)


  무한도전을 비롯해 익숙한 예능들과 강호등을 비롯한 발군의 예능인들이 작가의 도마 위에 올라서 칼질을 당하는데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안심을 한다. 그럼에도 예능을 예능으로 받지 않고 다큐로 받는다 투덜대는 이도 있을 법하고, 막강한 덕후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또 나름의 이유로 지은이를 공격하기도 할 것 같다. 그리고 작가는 이런 투덜거림과 공격을 능청스레 받아 넘길 것 같으니 다시 안심을 한다.


  “제대로 수평을 잡으려면 기울어진 쪽에 더 무거운 추를 달아야 한다. 여성의 목소리가 방송의 여러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많다. 그것이 당연해지는 세상이 될 때까지 남성들의 목소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감시를 당해야 한다. 그럼에도 변화가 없다면 압력 또한 높여가야 한다.” (p.182)


  이 리뷰를 쓰는 동안에도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다. 아니 이런 책이니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전지적 참견 시점>이 방송 중이다. 실은 아내가 느닷없이 전참시를 보겠다며 틀어달라고 한 것인데, 정작 아내는 다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의 텔레비전 하루 평균 시청 시간이 세 시간인데, 조만간 인터넷 접속 시간이 이를 앞지를 것이라는 전언이다. 



아무튼, 예능 / 복길 / 코난북스 / 224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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