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모리슨 《술라》

거대한 아이러니에서 허우적거리는 술라 이후의 삶...

by 우주에부는바람

토니 모리슨의 《술라》는 에바에서 딸 해나로, 해나에서 딸 술라로 이어지는 여인 삼대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십대 시절에 시작된 술라와 넬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타운 메달리언의 근처에 자리 잡은 마을을 둥지로 삼은 흑인 공동체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를 향하여 발칙하게 저항하였던 한 여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모든 이야기에 골고루 ‘술라’가 포진하고 있다.


"... 그는 죽음의 냄새를 알았고, 죽음을 예측할 수 없기에 두려웠다. 그를 두렵게 하는 것은 죽음도, 죽어가는 것도 아니라 그 둘의 예측 불가능성이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던 중 그는 일 년 중 하루를 죽음에 바친다면 모두가 죽음을 제쳐놓고 나머지 날들은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식으로 그는 전국 자살일을 제정했다... 새해의 사흘째 되는 날, 그는 소 방울과 교수형 집행인의 밧줄을 든 채 사람들을 불러모으며 카펜터즈 로드를 따라 보텀을 돌아다녔다. 사람들에게 오늘이 자살을 하거나 서로를 죽일 유일한 기회라고 말하면서.“ (pp.28~29)


또한 이 모든 이야기는 보텀이라고 불리운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그 마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전쟁에서 돌아온, 전국 자살일의 창시자이기도 한 섀드릭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던 섀드릭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 부상을 당하고, 보텀으로 돌아온다. 그는 삶과 죽음을 목격하였고, 어쩌면 그 경계에서 멈춰섰다. 그렇게 멈춘 상태로 돌아왔다. 보텀은 섀드릭으로 대표될 수 있었다. 물론 이후 술라가 마을을 떠났다가 돌아오기 전까지의 일이었다.


“외부인들이 보기에 느슨함, 부주의함, 심지어 관대함으로까지 보이는 이러한 태도는 실은 선한 힘 외에 다른 힘들도 나름대로 타당하다는 것을 잘 아는 데서 나왔다. 사람들은 의사가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아무도 그들에게 그렇게 해준 적이 없었다. 죽음이 우연이라고도 믿지 않았다. 삶은 우연일 수 있어도 죽음은 고의적이었다. 자연이 삐딱하다고도 믿지 않았다. 단지 불편할 따름이었다. 역병과 가뭄은 봄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우유가 응고될 수 있다면, 울새들도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신이 아신다. 악의 목적은 그것을 견디는 것이며,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홍수, 백인들, 홍역, 기근과 무지를 견디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분노는 잘 알았지만 절망은 몰랐다. 자살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죄인들에게 돌을 던지지 않았다. 그들이 할 법한 일이 아니었다.” (pp.130~131)


소설의 초반에 술라가 등장하지 않아 의아했다. 섀드릭이라는 흑인 남성의 이야기가 한참동안 계속되었다. 술라는 할머니인 에바와 엄마인 해나의 이야기 속에서 불쑥 등장한다. 그러다가 친구 넬과 함께 한 아이의 죽음을 이끌어내고 그것에 큰 죄책감을 갖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에야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진다. 그녀의 할머니가 사라졌다 나타난 것처럼, 술라도 사라졌다 나타난다. 술라가 나타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할머니 에바를 유폐시키는 일이었다.


“... 술라는 확실히 달랐다. 그녀 안에서 에바의 오만과 해나의 방종이 온전히 그녀만의 것인 뒤틀린 상상력과 합쳐졌고, 그녀는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탐색하고 오로지 거기에만 매달리면서, 남의 쾌락이 자신을 즐겁게 해주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기쁘게 해줄 의무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살아왔다. 고통을 주는 것만큼이나 기꺼이 고통을 느끼고, 쾌락을 주는 것과 동등하게 쾌락을 느끼려 한 그녀의 삶은 실험적이었다...” (pp.171~172)


이제 술라는 보텀 마을의 살아 있는 악의 화신으로 자리잡아간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넬의 남편과 잔다. 그 장면을 목격한 넬은 남편 주드를 떠나보내고 술라와도 멀어진다. 술라는 마을의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갖는다. 이웃집 아이를 해치려 했다는 누명을 쓰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넬은 술라의 대척점에 자리 잡는다. 정상인 것과 비정상인 것, 선한 것과 악한 것이 한 마을에서, 오래 된 우정의 이름으로 함께 기거한다.


“... 술라의 조롱이 없어지자 타인에 대한 애정은 축 늘어져 황폐해졌다. 늙은 시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책임에 대해 불평을 쏟아내던 며느리들은 술라가 에바를 양로원에 가두자 태도가 바뀌어 불평 한마디 없이 시어머니의 타구를 씻기 시작했었는데, 이제 술라가 죽고 나자 짐이 되는 노인들에 대한 원한이 다시 쌓여갔다. 아내들은 남편들을 아껴주지 않았다. 더는 남편들의 자만심을 부추길 필요가 없어 보였다...” (p.220)


그리고 넬과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술라는 마을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죽는다. 소설은 1919년에 시작되고, 1965년에 끝나는데, 술라는 1940년에 죽는다. 술라가 죽은 후에도 마을은 남아 있고, 친구 넬도 계속해서 살아간다. 술라의 죽음 후에 술라를 한쪽으로 몰아세우고 그 반대편에 옹기종기 모여서 살았던 이들의 삶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나 넬은 거대한 아이러니에서 허우적대야 했다. 독자들 또한 넬을 따라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데, 아마도 이것이 토니 모리슨의 소설이 갖는 큰 장점일 것이다.



토니 모리슨 Toni Morison / 술라 (Sula) / 문학동네 / 267쪽 / 2017, 2015 (2002,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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