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모리슨 《재즈》

노예제라는 시스템으로부터는 해방되었지만 아직은 여전하였던...

by 우주에부는바람

토니 모리슨은 1992년 이 소설 《재즈》를 출간하고, 그 이듬해인 199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 문학상은 책이 아니라 인물에게 수여하는 것이지만 어떤 이들은 이 소설을 노벨 문학상 수상작으로 부르고 싶어 하기도 한다. 책 뒤에 실린 작가의 말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에서 어느 한 시기’를 표현하는 것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드러나고 있다. 노벨 문학상은 아마도 그 관심과 그 관심을 작가 고유의 ‘특수한 렌즈’를 통해 표현해낸 노고를 향하고 있을 것이다.


“난 그런 것을 틈새라고 부른다. 달리 표현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구멍이 뚫리거나 깨진 것이 아니라, 한낮의 둥근 빛 속에 드러난 시커멓게 갈라진 틈새다. 아침에 깨어나면 그녀는 밝은 조명 아래 펼쳐지는 일련의 소소한 장면들을 똑똑히 본다. 각각의 장면에서 구체적인 일들이 행해진다. 음식을 만들고 일을 하고, 우연히 손님과 지인을 만나고, 어딘가에 방문하고. 그러나 정작 그런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오직 행해지는 일만 보인다. 둥근 빛이 각각의 장면을 감싸고 있다. 그 빛이 끝나는 곡선 부분에 단단한 기반이 있을 거라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기반 같은 것은 없다. 항상 한 발짝 건너에는 좁은 샛길, 갈라진 틈새뿐이다. 그 둥근 빛 또한 불완전하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어떤 것이든 그 너머에는 이음매와 어설프게 붙여놓은 자국과 취약한 부분이 보인다. 그게 무엇이든. 때때로 주의를 소홀히 하면 바이올렛은 이 갈라진 틈새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왼쪽 발을 앞으로 뻗는 대신 뒤로 내딛고는, 무릎이 꺾여 거리에 주저앉아버렸던 때처럼.” (pp.43~44)


이야기가 시작되는 발단은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간결하다. 한 남자가 딸뻘인 소녀와 연애를 했고 결국 그 소녀를 총으로 쏘았다. 그 남자의 아내는 장례식장에 찾아가 그 소녀의 얼굴에 칼질을 하려다가 실패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조, 죽은 소녀의 이름은 도카스였다. 바이올렛은 조의 아내인데,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위와 같은 긴 문장에서 확인되는 ‘갈라진 틈새’를 가진 여자이다.


“이스트세인트루이스를 회상하면, 작은 현관이 무너져내리면서 불붙은 나무 조각들이 연기를 내며 공중에서 폭발하던 광경이 떠오른다. 그 조각 중에 하나가 그녀의 할말 잃은 입으로 들어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 게 틀림없었다. 아직도 그것이 뱃속에서 연기를 내며 불타고 있었으니까. 도카스는 불타는 조각을 내뱉지도, 불을 끄지도 않았다...” (p.99)


굳이 말하자면 소설은 연역의 형태로 서술된다. 바이올렛의 ‘갈라진 틈새’나 도카스가 삼킨 ‘불붙은 나무 조각’이 먼저 서술된 다음, 우리는 이후의 전개 과정을 통해 그것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떤 식의 행위로 발전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작가는 어떤 사건을 툭 던지거나 어떤 인물을 불쑥 등장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진행이 되어서, 혹시 앞에서 읽은 사건이나 인물인데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인가, 소설의 앞부분으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는데, 그래봐야 헛수고이다. 계속 읽어나가는 것이 좋다.


“그 남자는 왜 그런 짓을 한 거죠?” “그애는 왜 그랬는데요?” “당신은 왜 그랬어요?” “나도 몰라요.” (p.131)


어쨌든 소설의 얼개는 간단하다. 어쩌면 위의 간단한 대화에, 죽은 도카스의 이모와 죽은 도카스에게 칼질을 시도했던 바이올렛 사이에 이루어지는 힐난이 가득한 대화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그 남자는 조이고, 그애는 소녀 도카스이고, 당신은 바이올렛이다. 하지만 소설은 특정할 수 없는 내레이터인 ‘나’의 존재, 하나의 특정한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 시간대, 1920년대를 관통하는 (재즈를 비롯한) 음악 장르의 도입 등이 겹치면서 즉흥적이지만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전개되고 있어, 읽기가 수월한 것만은 아니다.


“자유로운 검둥이가 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자유로운 인간이기를 원해요.” (p.265)


작가는 ‘구조가 의미를 향상시키도록 설계된 소설들을 써왔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노예제라는 사회 시스템으로부터는 해방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방되지 못한 인간으로 존재해야 했던 이들을 묘사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소설에서는 구조가 의미와 동등할 것’이라고도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알 듯 모를 듯 하다. 작가의 소설을 두 권쯤 더 읽을 생각이다.



토니 모리슨 Toni Morrison / 최인자 역 / 재즈 (Jazz) / 문학동네 / 373쪽 / 2015, 2017 (199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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