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모리슨 《빌러비드》

인간 상실과 인간 회복의 시간이 좋은 문장들 위에서...

by 우주에부는바람

*2019년 8월 2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이번 달 5일 토니 모리슨의 별세 소식이 들려왔다. 마침 한 달 전쯤 작가의 소설 《빌러비드》를 구매하였지만 아직 읽지 않은 상태였다. 토니 모리슨은 여성이었고 흑인인 작가였다. 그녀가 떠나고 그녀가 남겼다는 말이 떠다녔다. “어떤 순간은 떠나가. 그냥 흘러가지. 또 어떤 순간은 그냥 머물러 있고.” 떠나가지만 또 그냥 머물러 있기도 한 것이 삶이려니, 하는 마음으로 1987년에 출간된, 1800년대 후반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었다.


“네 글자를 새기는 데 십 분. 십 분을 더 허락했더라면 ‘디얼리’란 글자도 새길 수 있었을까? 그때는 남자에게 물어볼 생각조차 못했지만, 그럴 수도 있었으리라는 미련이 아직도 그녀의 마음을 괴롭혔다. 이십 분, 아니 삼십 분이었다면 장례식에서 들은, ‘디얼리 빌러비드(참으로 사랑하는)’라고 한 목사의 말(사실 목사가 한 말은 그게 다였다)을 전부 아기의 묘비에 새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중요한 한마디만을 새겨넣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p.16)


소설은 124번지에 살고 있는 세 여인의 이야기이다. 소설의 시작 즈음에는 그곳에 베이비 석스와 며느리인 세서, 그리고 세서의 딸 덴버가 살았다. 그리고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유령이 살고 있었다. 베이비 석스가 죽고 폴 디가 나타나 유령을 쫓은 다음에는 세서와 딸 덴버 그리고 빌러비드라고 불리우는 처녀가 함께 살았다. 그러다가 폴 디가 떠나야만 했고 124번지의 집에는 다시 세 여인이 남았다.


“옷을 모두 차려입은 한 여자가 물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녀는 시냇가 마른땅으로 겨우 올라와 털썩 주저앉더니 뽕나무에 몸을 기댔다. 여자는 아무렇게나 머리를 기댄 채 밀짚모자의 챙이 갈라질 때까지 하루 밤낮을 꼬박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온몸이 쑤셨고, 특히 허파가 가장 아팠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몸으로 가쁜 숨을 쉬며, 여자는 어떻게든 무거운 눈꺼풀과 타협을 보려고 기를 쓰며 몇 시간을 보냈다. 한낮의 산들바람은 여자의 옷을 말려주었고 밤바람은 옷을 구겨놓았다...” (p.89)


빌러비드가 세상을 모습을 드러내는 위의 문장을 눈여겨 보았다. 토니 모리슨의 문장들은 들뜨지 않고 차분하다. 하지만 그 차분함 속에 도사리고 있는, 이 소설의 기원이 될 수도 있을만한 사건을 직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렵사리 탈출하여 자신의 시어머니가 있는 12번지의 집에 도착하여, 이제 막 태어난 덴버를 비롯한 두 딸과 두 아들과 보낸 짧은 시간이 끝나고 벌어진 그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렵다.


“... 피부가 희기만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하기 위해 흑인의 인격을 모두 빼앗을 수 있었다. 일을 시키거나 죽이거나 사지를 절단할 뿐 아니라, 더럽혔다. 완전히 더럽혀서 더는 자신을 좋아할 수 없게 했다. 완전히 더럽혀서 자기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생각해낼 수도 없게 했다. 그녀와 다른 이들은 그 일을 겪고도 살아남았지만, 자식만큼은 절대 그런 일을 겪게 할 수 없었다. 자식들은 그녀의 보배였다. 백인들이 그녀 자신은 더럽혀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녀의 보배만큼은, 마법처럼 놀랍고 아름다운 보배만큼은, 그녀의 순결한 분신만큼은 그렇게 되게 할 수 없었다...” (p.409)


세서는 자신을 잡으려고 도착한 백인들에게 딸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기를 죽였다. 그 아기의 묘비를 만들어주기 위해 백인에게 몸을 맡겨야 했다. 덴버는 죽은 언니의 피가 섞인 젖을 먹어야 했다. 흑인 공동체 안에서 세서는 따돌림을 당했고 두 아들은 집을 떠났고 덴버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어느 날 빌러비드가 나타났다. 덴버는 빌러비드가 죽은 언니라는 사실을 알았고, 세서는 빌러비드가 죽은 딸이라는 것을 알았고, 빌러비드가 다시 떠날까봐 두려워했다.


『... 베이비 석스는 녹초가 되어 침대에 누워버렸고 그 커다랗고 오래된 심장이 멈출 때까지 거기서 나오지 않았다. 이따금 색깔을 갖다달라고 할 때 말고는 사실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생의 마지막날 오후, 침대에서 빠져나와 방문 앞까지 느릿느릿 걸어가더니, 노예로 육십 년 자유인으로 십 년을 살며 배운 교훈을 세서와 덴버에게 남겼다. 이 세상에 불운은 없다. 백인들이 있을 뿐이다, 라고. “그놈들은 그만둘 때를 모른다.” 베이비 석스는 이렇게 덧붙이고 침대로 돌아가더니 누비이불을 끌어당겨 덮고는 영원히 그 생각을 떨치지 못할 두 사람을 남겨둔 채 떠났다.』 (p.176)


소설은 철저하게 유린당한 인간이 다시금 인간으로 서고자 할 때 치러야 할 대가들로 가득하다. 그 대가들은 그들이 치러야 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작가는 이 참혹한 인간 회복의 과정을 소설로 그려내기 위하여 좋은(?) 농장주, 유령, 흑인 공동체 내부의 균열 등 다양한 요소들을 활용한다. 이 모든 인간 상실과 인간 회복의 시간들이 좋은 문장 위에서 흘러간다.



토니 모리슨 Toni Morrison / 최인자 역 / 빌러비드 (Beloved) / 문학동네 / 469쪽 / 2014, 2018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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