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자연과 일상의 소리를 최초로 악보에 옮기게 된 속내...

by 우주에부는바람

“... 그의 이름은 ‘시미언 피즈 체니’였다. 제네시오의 외딴 사제관 - 뉴욕 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 에서 살았고, 1890년에 사망했다.

체니 신부는 - 내가 아는 바로는 - 사제직에 있을 때, 즉 1860~1880년에 자신이 들었던 새소리, 즉 사제관 정원에 와서 지저귀던 새들의 모든 노래를 기보한 최초의 작곡가이다.

그는 심지어 꽉 잠기지 않은 살수 장치에서 마당의 포석 위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도 기보했다.

겨울바람이 트렌치코트나 케이프 안으로 휘몰아칠 때 복도의 옷걸이에서 나는 독특한 소리까지도 옮겨 적었다.“ (pp.10~11)

시미언 피즈 체니는 그리고 이렇게 자신이 들은 소리들을 악보로 변환시킨 《야생 숲의 노트 (Wood Notes Wild)》라는 책을 남겼다.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이 거절되었던 책이다. 그의 사후 그의 아들이 (이후 진행되는 파스칼 키냐르가 창조한 이야기에서는 그 역할을 딸이 대신한다) 출간한 것이다. 1893년 이 책을 드보르자크가 읽었고, 현악 4중주 제12번을 썼다.

“그녀의 정원에서 내가 정말로 행복해지는 / 이유는 심지어 이렇게 말할 수 있어. / 아내가 사랑했던 정원에 있으면 나 자신이 / 그녀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 때문이라고. / 살아 있는 / 그녀의 내면에 / 살아 있는 나.” (p.30)

책은 희곡에 가깝다. 내레이터가 있고 등장인물들이 있다. 다만 그들이 구술하는 것들은 일상의 문장이 아니라 일종의 시에 가깝다. 공연되는 것을 염두에 둔 열린 텍스트라고도 할 수 있다. (역자가 작가를 만난 이후 한국에서 공연이 계획될 경우 당부하고 싶은 말을 전한 내용을 보더라도 그렇다. 작가는 세 가지 당부를 하였는데, 두 번째 당부는 ‘연출자와 배우들이 함께 리딩 작업을 하면서 잉마르 베리만 식으로 자유롭고 과감하게 작품을 손질해서 만들어 가기를 권한다’는 것이었다.)

“날 봐라, 로즈먼드! 아비를 좀 쳐다봐! / 네가 느끼는 건 망상이 아니야. / 나란 존재가 피아노란다. / 피아노, 사실 그건 바로 나의 인생 전부라 / 할 수 있지. 하느님이 선사하시는 저녁마다, / 황혼 녘마다 난 피아노를 쳤거든. / 피아노, 그건 나의 내면일기란다. 널 충분히 / 사랑해 주지 못했구나. 네 엄마는······” (p.125)

책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사제인 시미언과 딸 로즈먼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시미언의 아내 에바는 로즈먼드를 낳고 곧바로 죽었다. 에바는 담배를 즐겼고 무엇보다 정원 가꾸기를 좋아했다. 아내를 잃은 시미언의 슬픔은 딸에 대한 사랑으로 옮겨가지 못하였다. 오히려 딸이 성장하고 그 모습에서 아내를 연상하는 것을 마다하며 딸에게 멀리 떠나갈 것을 종용할 정도이다.

“우리가 자연을 관조할 때 우리를 위로하는 / 것은 우리의 원천입니다. / 잃어버린 나의 여인을 나는 원천에서, / 자연의 거대하고 창백한 두 다리 사이 / 안에서, / 깊은 샘에서 다시 만납니다. / 그 누가 기원으로 숨어들지 않을까요? / 하느님의 진짜 이름은 / 태초commencement랍니다. / 태초는 하느님 당신보다 앞서 시작······” (p.152)

그 대신 시미언은 아내가 남긴 정원에 집중한다. 시미언은 정원을 통해 아내가 남긴 자연이자 하느님에 앞서는 태초에 가까운 무엇을 발견한다. 그는 정원에 날아드는 새를 비롯해 정원을 배경으로 한 일상의 소리들에 집중한다. 그 소리들을 그저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소리들을 악보에 옮긴다. 그 행위들로 인해 신도들로부터 배척되어도 괘념치 않았고, 사제관을 떠났던 딸이 돌아올 때까지 그렇게 살았다.

“어느 날 핑거레이크스의 작은 마을에서 / 한 사제가 한가한 시간에 새들의 노래를 / 기보합니다. 아내가 가꾸고 심고 상상하고 / 꿈꾸던 정원에 남겨진 추억이 너무도 / 소중해서죠. 그러자 신도들이 자신들의 죄와 / 두려움보다 작은 꽃들과 죽은 아내에게 빠져 / 있는 사제에게 냉담하게 등을 돌립니다...” (p.181)

시미언의 책에 기보되어 있다는 ‘새들의 노랫소리’, ‘바람 소리, 갈대 소리, 나무에 떨어지는 소낙비 소리’, ‘뜨개바늘이 내는 따닥따닥 소리, 맥박 소리’, ‘우산이며 외투 같은 사물에서 나는 독특한 소리’ 등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드보르작의 현악 4중주 12번을 들어도 소용이 없다. 영재 발굴 프로그램인가에서 절대음감을 가진 소년이 일상의 소리를 듣고 거기에 계이름을 매치시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 것일까...

파스칼 키냐르 Pascal quignard / 송의경 역 /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Dans ce jardìn qu'on aìmait) / 프란츠 (Franz) / 222쪽 / 20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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