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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7. 2024

이광호 《너는 우연한 고양이》

'한없이 고양이가 되어가는 시간'의 한없는 증식...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한없이 고양이가 되어가는 시간이다.‘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이 들어 있는 꼭지의 제목은 ’침묵‘이다. 나는 어느 만큼 이 말에 동의한다. 모든 고양이는 유별하지만 또 모든 고양이는 최소한의 삶으로 서로를 동반한다. 유별하지만 동반하는 고양이의 시간에 나를 겹쳐놓고 싶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도 고양이와 말하는 시간에 대해 조금 안다.


  “... ‘함께 산다’라는 사건은 가볍지 않다. 그 몸과 촉감과 냄새와 움직임에 완전히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하나의 몸이 다른 몸과 함께 있다는 것은, 자기 몸의 냄새를 견딜 수 있는가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다른 몸과 함께 있는 것을 수락할 때, 그 수락만큼 중요한 사건은 삶에서 찾기 어렵다.” (p.16)


  작가는 보리와 일다라는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하고 있다. 보리는 터키시앙고라이고 일다보다 먼저 작가와 함께 살았다. 일다는 크게 다쳐 길에 있는 것을 작가가 구조하였다. 그렇게 작가는 보리와 일다라는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을 선택했다. 그것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고양이를 키우는 많은 이들은 이 경우 선택했다고 말하기보다 선택 당했다, 라고 말한다.


  “네가 그 무료한 시간에 무엇을 하고 보내는지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너는 ‘하지 않는다’. 인간은 늘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움직이고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괴롭지만, 고양이는 되도록 하지 않는 방식으로 삶을 유지한다. 컴퓨터 키보드에 올라가 방해하는 너의 습성은 ‘왜 굳이 하고 있니’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p.30)


  고양이를 말하는 책을 읽고 그 책을 말하는 참인데,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들풀의 끊임없는 훼방이 있다. 들풀은 노트북과 나 사이에 제 작은 몸을 집어 넣는다.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내 손가락을 깨물고 내 눈을 향해 제 눈을 던진다. 나는 참다 못해 방울이 달린 천으로 만든 오뎅 꼬치를 힘껏 집어 던지고, 들풀은 그것을 내게 가져온다. 웅크렸다가 집어 던지듯 몸을 활짝 펴고 날 듯이 뛰어 오르고 팽개쳐지듯 방향을 바꾼다. 


  “너는 많은 것이 ‘있다’. 노란 눈 속의 여전한 경계심과 공포, 새끼 고양이 특유의 발랄한 호기심, 길고 날렵한 꼬리의 파동과 선명한 얼룩무늬. 무심히 걸어가다가 갑자기 옆으로 몸을 누일 때, 스스로 몸을 무너뜨리는 장면은 돌발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목표물을 정해 나아가다가 갑자기 단념하듯 너의 몸이 쓰러질 때의 미묘한 각도를 흉내낼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이런 너의 ‘있음’은 너의 ‘없음’들과 다르지 않다. 조금 잘려 나간 너의 오른쪽 귀는 결핍에 해당하지만, 그런 귀를 가진 고양이는 거의 없기 때문에 그것은 너의 ‘있음’이다. 조금 잘려 나간 너의 귀가 잘 보이지 않을 때 오히려 너의 고유한 아름다움은 감추어진다. 너의 ‘없음’들이 너의 ‘있음’이다.” (p.38)


  들풀과의 놀이는 들풀이가 지칠 때가 되어야 끝이 난다. 나는 집어 던지고, 물어 오는 사이에 얼른 키보드를 두드린다. 멀리 집어 던지면 조금 더 많이 쓸 수 있고, 쓰느라 얼른 집어 던지지 못하면 나는 깨물린다. 들풀은 큰 사고로 왼쪽 다리의 뼈가 단절되어 있고, 그 단절에도 불구하고 힘껏 연결되느라 여념이 없다. 나는 보잘 것 없는 행위로 그 연결을 돕고, 들풀은 내 행위에 기민하게 연결되어 있다.


  “... 고양이는 에피소드에 대한 기억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고, 고양잇과 동물들은 몇 년 후에도 특정한 냄새를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보리와 일다가 헤어진 가족에 대한 기억이 있는지, 그전에 머물렀던 공간에 대한 기억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고양이의 기억력이 인간보다 높지 않은 것은 오히려 현명한 것일지도 모른다. 보리와 일다의 기억력은 지극히 현재적이어서 지금의 숨을 공간, 지금의 동거인 냄새, 지금의 사료 접시에 대해서만은 아주 정확하다. 고양이의 기억력이 선택적이라는 것은 경이로운 장점이다.” (p.117)


  내게는 지금 들녘과 들풀이라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고, 내게는 아직 용이라는 이름의 한 마리 고양이가 있었다. 연거푸 고양이에 대한 책을 두 권, 《고양이 생태의 비밀》과 《너는 우연한 고양이》를 읽었다. 들풀이의 조카뻘인 고양이 심바는 동생네서 연희동 식구들의 보살핌 속에 자라고 있다. 부엉이라고 불리우는 들풀이의 누이가 낳은 새끼 고양이가 드디어 둥지를 벗어나 뛰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없이 고양이가 되어가는 시간’이 증식하고 있다. 



이광호 / 너는 우연한 고양이 / 문학과지성사 / 139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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