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무엇이든 가능하다》

삶의 모든 시간에서 찾아낼 수 있는 촘촘한 진실로서의 순수함...

by 우주에부는바람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계시」, 「풍차」, 「금 간」, 「엄지 치기 이론」, 「미시시피 메리」, 「동생」, 「도티의 민박집」, 「눈의 빛에 눈멀다」, 「선물」이라는 아홉 편의 단편 소설로 채워진 소설집이자 연작 소설집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이미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훌륭한 연작 소설집을 발표한 바 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내처 두루두루 읽기 시작한 곳이 바로 그 연작 소설집이었다.


“진입로로 접어들던 패티는 나갈 때 켜두었던 불빛을 보았고, 그 순간 루시 바턴의 책이 패티를 이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랬다. 책이 그녀를 이해한 것이다. 입안에 노란 캔디의 달콤한 맛이 남아 있었다. 루시 바턴에게는 자신만의 수치심이 있었다. 오, 세상에. 그녀는 정말로 자신만의 수치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떨치고 일어나 곧장 빠져나왔다...” (pp.79~80, <풍차> 중)


작가의 여러 소설들을 관통하는 것은 완벽하지 않은 인물들이다. 아니 그저 완벽하지 않다는 말로는 부족한, 부족한 인물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사실 이번 소설집의 소설들을 잉태시킨 것은 작가가 이미 발표한 장편 소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주인공인 루시 바턴이다. 일리노이 주 앰개시라는 작은 고장에서, 그 고장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안의 막내 딸이었던 루시가 작가로 성장한 이후, 여전히 그 고장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 그것은 그의 실수였다 - 그는 늘 자신의 실수였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그가 착유기 전원이 꺼졌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화재가 시작된 곳이 바로 거기였기 때문이다. 불길은 일자마자 맹렬한 기세로 번져 그곳 전체를 집어삼켰다. 그들은 거실에 있던 황동 거울만 빼고 모든 것을 잃었는데, 그는 다음날 잿더미 속에서 그것을 찾아냈고, 발견한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pp.9~10, <계시> 중)


<계시>에서 토미 거프틸은 화재 사건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느끼고 그 책임감으로 루시의 오빠인 패티를 찾아간다. <풍차>에서 패티 나이슬리는 루시의 책을 읽고, 루시의 조카인 라일라 레인으로부터 뚱보라는 비난을 듣는 인물이다. <금 간>의 린다는 패티 나이슬리의 언니인데, 부자 남편을 두고 있지만 그 생활을 버리지 못해 그 남편의 비이성적인 행태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관객이 필요해요. 우리가 뭔가를 하는데 아무도 우리가 그걸 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음, 나무가 혼자 숲에서 쓰러졌다면 쓰러지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겠죠.” (p.329, <선물> 중)


<엄지 치기 이론>의 찰리 매콜리는 패티 나이슬리가 남편을 잃은 이후 눈여겨 바라보는 나이든 남자이지만 아내를 속이고 만난 창녀로부터 돈을 요구받는다. <미시시피 메리>의 메리는 남편을 떠나 연하의 이탈리아 남편과 이탈리아에 살고 있지만 병에 걸린 남편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동생>에서 드디어 루시 바턴이 등장하지만 루시는 오빠인 피트, 언니인 비키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는 못한다.


“... 셸리는 삶에서 느낀 실망들을 전환시켜 집이라는 형태로 만들었다. 적당한 건축가들을 영리하게 활용하여 법률에 위배되지 않으나 셸리의 욕구만큼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린 그 집으로. 그녀는 딸이 비만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눈물을 터뜨리지 않았다. 그랬다. 눈물이 솟구친 것은 그녀의 허영이 공격당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그녀는 ‘집의 전쟁’에서 남편에게 이겼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도티가 - 그녀가 그런 말을 할 입장이 아니었기에 - 셸리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셸리에게는 근처에 모르는 사람들이 앉은 아침식사 자리에서 함께 노래를 불러주는 남편이 있다는 사실, 그것은 결코 작은small - 실례지만, 도티는 생각했다 -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p.280, <도티의 민박집> 중)


<도티의 민박집>에서 도티가 듣게 되는 셸리의 이야기는 허위에 가득한 인물이 딛고 서있는 거대한 집을 그녀의 페니스로 짐작한다. <눈의 빛에 눈멀다>의 엘긴 애플비는 동성애자였고, 그의 아이들 중 일부는 그런 애플비가 가졌던 숨겨진 열정을 끝끝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선물>의 에이블은 이제 부유한 사업가이지만 어린 시절 겪은 가난의 일부를 여태 지니고 살 수밖에 없다.


“에이블에게 삶이 수수께끼인 부분은, 사람들은 많은 것을 잊어버린 후에도 그것을 지닌 채 살아간다는 사실이었다 - 환각지幻覺肢 같은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솔직히 그때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발견했을 때 자신이 느낀 게 어떤 감정이었는지 더 이상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p.335, <선물> 중)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최근 윌리엄 트레버, 켄트 하루프 등과 함께 열심히 찾아 읽은 작가이다. 작가의 소설을 앨리스 먼로나 줌파 라히리의 단편을 좋아하듯이 좋아하고 있다. 기름지지 않은 순수함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문장에서 오롯이 느껴져 좋다. 물론 그 순수함은 시간을 역행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삶의 모든 시간에서 찾아낼 수 있는 촘촘한 진실이라는 의미에서의 순수함에 가깝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Elizabeth Strout / 정연희 역 / 무엇이든 가능하다 (Anything Is Possible) / 문학동네 / 359쪽 / 20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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