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으로 기억되는 기억과 삼인칭으로 서술되는 기억...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라고 싶은 소녀의 욕망과 다음과 같은 기억의 부재뿐이다 : 타원형의 거무죽죽한 똑같은 사진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누군가 소녀에게 방석 위에 셔츠를 입고 앉아 있는 아기의 사진을 가리키며 《이게 너야》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자신을 사라진 시간 속에서 미스테리한 삶을 살았던, 포동포동한 살을 가진 타인처럼 바라봐야만 했다.” (pp.42~43)
기억은 발굴되어 마땅한 무엇일까, 아니면 그 자리에 그대로 두어 보존함으로써 변형을 막아야 하는 무엇일까, 라고 묻는다면 아니 에르노는 무어라고 대답을 할 것인가. 어쩌면 그녀는 일인칭으로 서술할 수 있는 기억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는 것이 마땅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고) 대신 수면으로 떠올린 기억이라면 일인칭이 아니라 삼인칭으로 서술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태어나서부터 2차 세계대전을 거쳐 지금까지 분리되고 조화가 깨진 그녀만의 수많은 장면들을 서사의 흐름, 자신의 삶의 이야기로 한데 모으고 싶어 한다. 개인의 것이지만 세대의 변화가 녹아 있는 삶. 그녀는 시작하는 순간, 늘 같은 문제에 부딪친다. 어떻게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과 사물들, 생각들, 관습들의 변화와 이 여자의 내면의 변화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45년의 프레스코화와 역사 밖 자아의 탐구, 고독이란 시를 썼던 스무 살의 일시 정지된 순간들의 자아를 동시에 만나게 할 수 있을까, 등등.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나》와 《그녀》 사이의 선택이다. 《나》 안에는 너무도 확고부동한 것들, 편협하고 숨 막히는 무언가가 있고, 《그녀》 안에는 너무 많은 외재성과 거리감이 있다...” (pp.224~225)
철저하게 자전적인 글쓰기로 일관하는 작가가 《세월》에서는 작심을 하고 자신의 전 생애를 고스란히 옮겨 놓고 있다. 1940년생인 작가가 2008년에 출간한 책이니 칠십 년 가까운 세월이 펼쳐지고 있다. 기억할 수 있는 것과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혼재되어 있고, 몇몇 문장은 작가의 눈앞에 있는, 작가가 포함된 사진들을 설명하는 데 할애된다.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그러나 분리될 수 없는 오브제에 대한 설명 같은 구절들이다.
“16살이 행동하고 존재하는 데 필요로 하는 기억의 가난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일종의 컬러가 있는 무성영화로 본다. 거기에는 탱크의 잔해, 사라진 옛날 사람들, 어머니의 날을 위한 장식과 감사 편지, 베카신 만화책, 성체 배령 행렬과 벽에 공 던지기 놀이가 등장하며 서로 섞여 있다. 최근 몇 해 역시 기억하고 싶지 않다. 뮤직홀 무도회 변장과 파마, 짧은 양말, 모두 어리숙하고 부끄러운 것들뿐이다.” (p.80)
동시에 작가는 자신의 사적인 세월의 바로 옆에 역사적인 순간들을 두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다. 세계대전이라는 커다란 전쟁이 마무리 되기 전에 태어났으나 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전쟁이 끝난 뒤였지만, 그래서 작가는 어른들이 계속해서 언급하는 전쟁의 이야기에 대해 모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녀와 함께 성장하고 쇠락해가는 드골이니 미테랑이니 시락이니 하는 정치인들도 책의 곁에 있다.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고, 일하고,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기 : 우리는 많은 것을 시도해도 아무것도 잃을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1968년은 세상의 첫해였다.“ (p.134)
작가의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가 가장 궁금해했던 것은,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가 맞이하게 될 68혁명의 장면이었다. 이십대 후반에 아이를 가르치는 일을 하던 작가는 위와 같이 1968년을 정리했다. 그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혁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여기지 않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떻든 그것이 어떤 시작이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 어쩌면 언젠가는 사물들과 그것의 명칭이 불일치를 이루고 그녀가 현실을 명명하지 못하게 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실재만이 남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바로 지금, 글로서 미래의 자신의 부재를 형태로 만들어 놓아야 하며, 20년째 자신의 분신이자 동시에 앞으로 점점 더 긴 시간을 보내게 될, 아직 미완성인 수천 개의 메모 상태에 불과한 이 책을 시작해야만 한다.” (p.298)
책의 마지막 즈음에 이르러서야, 그러니까 작가의 현재에 다다랐을 즈음에야 책을 쓰게 된 이유가 밝혀진다. 예순을 넘긴 작가는 아직 애인을 두고 있고, 여전히 글을 쓰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이 사라진 다음을 위해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나보다. 그리고 독자인 나는 아직 가보지 않은 세월인 예순, 예순 하나, 예순 넷, 예순 여섯을 슬쩍 넘겨짚어 보게도 되는데, 나의 메모는 아직 머릿속에서도 꺼내놓지 못한 상태이니 불안하기도 하다.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 신유진 역 / 세월 (Les Années) / 1984BOOKS / 2019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