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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7. 2024

안희연 《당신은 나를 열어 바닥까지 휘젓고...》

통제되어 있지만 자유로운, 그 괴리의 거침없음으로부터...

  피나 바우쉬는 자신이 이미 비범한 무용가였고, 서른 세 살의 나이에 부퍼탈 무용단의 예술감독이 되어 안무가로서 춤(Tanz)과 연극(Theater)을 결합한 탄츠테아터, 라는 새로운 창작 무용 장르를 대중적으로 안착시켰다. 2009년 타계하였지만 빔 밴더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피나>를 통해 그녀와 그녀의 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에는 <봄의 제전>, <카페 뮐러>, <콘탁트호프>, <보름달>과 같은 피나 바우쉬의 대표작이 등장한다.


  “...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춤이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 춤이다. 자주 가는 카페의 2층 창가, 책으로 빨려들어갈 듯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여인의 어깨, 춤이다. 목줄에 묶인 개에게 질질 끌려가는 인간, 춤이다. 홀로 늦은 저녁을 해결하려고 만두를 포장해가는 남자의 검은 비닐봉지, 춤이다. 꽃다발을 들고 기둥 뒤에 숨어 연인을 기다리는 남자, 춤이다. 이삿짐 트럭이 떠나고 전봇대 아래 홀로 남겨진 커다란 곰돌이 인형, 춤, 춤, 춤이다!” (p.19)


  글을 쓴 안희연은 2012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이다.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이라는 시집 그리고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이라는 산문집을 냈다. 시인의 장래희망은 ‘알록달록해지는 것’이다. 글과 함께 책에 실린 그림을 그린 윤예지는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다’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있다. 


  “마음이 너무 어려워 찾아간 곳에서 나는 세 개의 원을 그려볼 것을 요청받았다. 아무렇게나 그리는 것은 아니고 안에서부터 차례로 세 개의 동심원을 그린 뒤 가장 안쪽 원에는 ‘나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의 이름을, 그다음 원에는 ‘나는 사랑하지만 나를 사랑해주는지는 모르겠는 사람’의 이름을, 맨 마지막 원에는 ‘나도 사랑하지 않고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야 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몇몇 이름들을 적었다. 그건 마치 잘린 나무 둥치의 나이테 같기도 했는데 그걸 바라보는 마음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나의 인간관계를 이렇게 도식화할 수 있다는 것에 한 번 놀라고 그렇게 쓰인 이름들이 너무나 내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어서 두 번 놀랐다고나 할까.” (p.38)


  시인과 그 시인이 스스로에게 합당한 이유로 선택한 예술가가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이인삼각의 모양을 지닌 ‘활자에 잠긴 시’라는 알마 출판사의 시리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에서 시인 안희연이 선택한 것은 안무가 피나 바우쉬이다. 시인은 피나 바우쉬의 무용극을 빔 밴더스가 영화로 만든 <피나>를 일종의 교본으로 삼아 시를 쓰는 인간인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다. 


  “마음이 이렇게까지 흘러온 데에는 태생적인 성격의 영향이 크다. 워낙에 대충이 안 되는 데다 고집까지 센 인간이라(첩첩산중 진퇴양난이다) 스스로를 벼랑 위에 세우지 않고는 못 견디는 성미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사랑하기란 쉽지 않다. 나라는 사람은 언제나 내 이해의 영역을 벗어나 있고 나로부터 자주 소외된다.” (p.84)


  중간중간 시인은 피나 바우쉬에게 편지 형식의 글을 쓴다. 보낼 수 없는 편지이지만 마음껏 보낼 수 있는 편지이기도 하다. 모두 일곱 편의 부칠 수 없는 편지 중 여섯 번째 편지에서 시인은 ‘당신은 그냥 피나 바우쉬예요. 여성 무용수가 아니라 피나 바우쉬,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아닌 피나 바우쉬. ’춤, 춤이 아니면 우리는 길을 잃는다 Dance, dance, otherwise we are lost'라고 말했던 사람, 피나 바우쉬.“ 라고 말한다.


  “... 쓰는 자로서 나는, 혼자 성급하게 앞서가려a는 시의 목덜미를 낚아채 삶의 곁에 놓아둘 필요가 있다. 물 위에 둥둥 뜬 기름같은 문장을 걷어내고 삶의 깔때기를 통과한 진액 같은 시를 한 편 써내려갈 의무가 있다. 나의 시가 누군가의 ‘삶’ 앞에 놓인다는 생각을 하면 어깨가 무거워지고 겁이 날 때가 많다... 때로 한 줄의 문장은 한 사람의 시간을 지배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시간을 지배하는 문장이라니, 참으로 아름다운 구속이다... 나는 그런 문장을 꿈꾼다. 삶으로부터 와서 삶으로 되돌려지는 시를 꿈꾼다.” (p.144)


  책을 읽기 전에 영화 <피나>를 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시인이 발견하여 시인으로 흘러들어간 피나 바우쉬의 어떤 면모를 보다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 유튜브를 통해 파편처럼 몇몇 무용극의 몇몇 장면들을 보았다. 거침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통제되어 있지만 자유로운데, 그 괴리가 만들어내는 부조리로부터 비롯된 느낌이었다. 



안희연 / 윤예지 그림 / 당신은 나를 열어 바닥까지 휘젓고 - 피나, 당신의 카페 뮐러 / 알마 / 159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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