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이전과 지금은 알았으니, 이제 두 사람의 이후는...
나와 매기는 대학 동기였다. 학창시절 두 개의 계절 동안 연애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군대에 가고, 군대에서 받은 매기의 애매한 백한번째 편지 (“잘 지내, 미래는 현재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단지 긴 현재일 뿐이야.”), 그리고 이후 포스터에 적어 보낸 보다 확실한 메시지 (“나는 인간이니까 당연히 섹스를 하며 살아야 해...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와 함께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났다. 그러니까 그때는 끝난 줄 알았을 것이다.
“매기는 닭에 관해서는 취향이 확고해서 절대 날개는 먹지 않았다. 날개를 먹지 않는 자기가 이렇게 재훈 너를 만나고 있는 것만 봐도 ‘날개 먹으면 바람피운다’는 속설이 얼마나 들어맞지 않는가를 보여준다고 했다. 매기는 그런 미운 말을 잘도 했다. 나를 괴롭게 하려는 의도보다는 자기에게 퍼붓는 야유 같은 것이었다. 평소에도 냉소와 야유와 자조와 시니컬함이 온통 믹스되어서 어떤 스왜그를 만들어온 터라 그건 그냥 매기스러운 것이었지만 상처가 되었다...” (pp.19~20)
졸업을 하고 나는 출판사에서 일하고, 매기는 재연 배우가 되었다. 나는 닭을 튀기는 일층 위의 이층에 살고 있고, 동기 모임에서 재회한 매기는 제주도에 살지만, 일이 있어 올라올 때면 나의 집에서 자고 가는 사이가 되었다. 재회 이후 처음에 두 사람은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매기는 자신이 입을 옷가지 등속이 들어 있는 보스턴 백을 들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한 번도 대신 들어주지 않았다. 매기는 제주도에 남편과 어린 딸이 있었다.
“그런 날에는 주로 피로만 있을 뿐 섹스에 대한 열의는 없었는데도 우리는 이리저리 뒤척이다 결국은 하게 되었다. 하지 않을 수 있는데도 왜 하게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의미는 탈각되고 주고받아야 하는 반응만 남은 일종의 패턴 같은 관계였다...” (p.88)
나름 종교적이었고 혼전 순결주의자였던 나는 대학 시절에 매기와 섹스를 한 적은 없었다. 이제 나와 매기는 섹스를 하지만 때로는 섹스를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고 그럴 때도 섹스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상대방을 향한 어떤 기대가 없는 대신 철저히 현재에 충실하는, 혹은 그렇다고 서로를 합리화하는 보통의 불륜과는 확실히 다른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두 사람이다.
“... 나는 우리가 자꾸 어긋나고 상대를 향한 모멸의 흔적을 남기게 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고 매기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냥 그것은 시작과 동시에 숙명처럼 가져갈 수밖에 없었던 슬픔이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덜 사랑하거나 더 사랑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p.113)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은 이제 두 사람의 관계가 흐지부지 되어 가는 즈음 혹은 이미 끝났을 지도 모르는 즈음, 내가 찾아가는 매기의 모친상이 진행되는 장례식장의 주차장에서 펼쳐진다.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암호화 같은 동작, 그러니까 매기는 자신의 손목에 엑스자를 분명하게 그음으로써, 내가 장례식장에 입장하는 것을 불허한다. 그 안에는 매기의 남편이 있을 것이고, 매기의 딸도 있었을 것이다.
“... 나는 그것을 주고받았을 때의 느낌을 아마 긴 시간이 흘러도, 어쩌면 매기와 관련한 기억들 중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로 가져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어디에도 미뤄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p.124)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내가 매기의 남편이 제주도에서 운영하고 있는 유기농 매장에서 천혜향 몇 개와 감자 몇 알을 사는 장면이다. 나는 돈을 지불하고 그것들이 담긴 봉지를 매기의 남편에게서 넘겨받는다. 그리고 그것의 무게를 크게 가늠해보는 장면이다.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나는데, 두 사람의 이후가 궁금하기도 궁금하지 않기도 하다. 그러니까 소설을 읽고 나면 조금 복잡해지는 것이다.
김금희 / 나의 사랑, 매기 / 현대문학 / 149쪽 / 2018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