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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8. 2024

김영하 《여행의 이유》

복기의 과정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정리되는...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는 여행을 다룬 산문집이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어딘가로의 여행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이 산문집은 여행을 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이면서 본의 아니게 많은 여행을 하게 된 자가 생각하는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행지가 아니라 여행 자체 그리고 여행 자체와 긴밀하게 관계 맺고 있는, 여행하는 자의 상념과 느낌에 대한 서술로 채워져 있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p.51)


  그러니까 ‘여행의 이유’라는 제목은 매우 구체적으로 책이 원하는 바의 형체를 드러내고 있으며, 첫 번째 챕터의 마지막 문장은 그 이유를 무척이나 간명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많은 이유로 여행을 떠날 것이고, 작가는 이런 이유로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각자의 여행의 목적이나 각각의 여행의 성격과는 상관없이 대부분의 여행이 작가의 저 문장으로 귀결될 수도 있겠다 싶다.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p.109)


  여행을 떠나기에 적당한 그러니까 여행을 만류하는 족쇄가 적은 더불어 자신의 여행을 합리화하기에 좋은 (게다가 TV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되어 반드시 여행을 떠나야 하기도 하는) 전업 작가를 업으로 삼고 있지만 그의 여행이 언제나 흥미진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다른 많은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과거와 진하게 연계되어 있고, 미래와 연결되기에는 희미한 여기로부터의 벗어남을,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로 거론하기도 한다.


  “...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어 기호화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트레오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 즉, 특별한 존재somebody가 되는 게 아니라 그저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자’, 노바디nobody일 뿐이다.” (p.155)


  그러가 그가 작가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그 여행 자체를 단순히 복기할 뿐만 아니라 그 복기의 과정을 통하여 또 다른 철학적 성찰로 건너가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을 아내와 함께 빼놓지 않고 보았는데,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자신을 되돌아보며 ‘비여행’이나 ‘탈여행’을 떠올리는, 여행을 중심에 놓고 이루어지는 방송 관계자와 출연자와 시청자의 시선을 다루는 작가를 보며 그렇게 느껴졌다.


  “... 여행이 길어지면 생활처럼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충분한 안정이 담보되지 않으면 생활도 유랑처럼 느껴진다.” (p.193)


  《여행의 이유》는 아주 대중적인 여행지와 여행경로 중심의 여행 산문집은 아니면서 그렇다고 떠남과 돌아옴의 거창한 철학으로 얼버무린 인문서도 아니다. 자신의 다양한 여행 경험을 적당한 수준에서 일단락하며 써머리 한 결과물 정도로 보면 좋겠다. 유쾌하고 발랄하며 감각적인 여행기 같은 것을 써주면 좋겠다 싶지만, 위트는 유지하되 점잖게 나이 들어가기로 작정한 듯한 작가에게는 무리일 수도 있겠다 싶다.



김영하 / 여행의 이유 / 문학동네 / 214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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