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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8. 2024

임이랑 《아무튼, 식물》

식물로부터 위로를 받고, 식물을 통해 욕심하는 삶...

*2019년 4월 1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기 이전까지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에서 주로 살았다. 엄마는 그 발코니에서 식물을 키웠다. 꽃을 피우면 나를 불러 세우고 그 꽃을 바라보게끔 했다. 나는 건성건성 호응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집을 비워야 하는 일이 발생한 어느 때 엄마는 ‘2틀에 한 번만 물을 줄 것’ 이라고 손수 적은 쪽지를 남겼다. 엄마가 집을 비운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2틀’이라고 적은 ‘이틀’이 재미있어서 그 표현만은 종종 떠오른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보다 젊었던 엄마의 ‘2틀’...  


  “가드닝도 자기를 알아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이다. 내 집에 맞는 식물, 나에게 맞는 흙, 내가 좋아하는 수형,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질감이 존재한다. 각자의 기질에 가장 잘 맞는 흙과 화분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키울지 결정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스스로를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돌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시도 때도 없이 흙을 만지고, 한낮의 햇살 아래 매일같이 물을 주러 나가 있다 보니 팔다리는 새까맣게 그을었지만 마음은 훨씬 더 비옥해진다. 식물들이 내 정신건강에 비료 같은 존재가 되어준다.” (pp.41~42)


  엄마의 쪽지처럼, 책을 읽고 나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문구는 ‘원래 사람이 안 키우는 식물이 제일 잘 커.’라는 지은이의 친구의 말일 것 같다. 식물을 키우는 일에 대한 지은이의 고민을 향하여 지은이의 친구가 던진 말이라는데, 꽤나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그 말 앞뒤로 붙어 있는 지은이의 글을 읽으며, 어떻게 맥락이 연결되는 거야, 툴툴대기는 했지만 여하튼 기억에 남는 말이다.  


  “모든 씨앗에는 의지가 있고 모든 이파리에는 이유가 있다. 아스팔트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풀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누군가 내다버린 몰골이 형편없는 식물을 보면 구하고 싶다...” (p.48)


  세 자리를 넘어선 숫자의 식물을 키우고 있다는 지은이의 일상 공간에 대해서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백 개가 넘는 화분으로 가득한 집이라니, 대략의 화분들의 위치가 그려진 배치도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 화분들을 이끌고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그 이사의 풍광들, 그 이사가 가지고 있었을 희노애락에 대한 글이 있었다면, 싶기도 하다.


  “... 식물을 건강하게 잘 키워내는 공간들은 커피를 아주 잘한다. 돌보는 마음과 커피를 내리는 마음이 같은 것일까. 식물의 변화를 눈치채는 섬세함을 지닌 바리스타라면 핸드드립도 더 섬세하게 만드는 걸까? 그냥 단순히 이파리가 더 건강하고 통통한 식물을 키우는 카페의 커피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마시는 커피가 제일 맛있는 법이니까.” (pp.128~129)


  위의 문장을 읽으면서는, 까페 여름의 후배가 떠올랐다. 후배는 끊임없이 몇 가지 식물을 키우는 것 같았고, 까페 여름의 커피는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지금 우리집에 식물은 없다. 얼마 전 드라이 플라워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긴 하다. 꽃을 닮은 것을 받아본 것도 실로 오랜만이어서 조금 당황했다. 식물로부터 위로를 받는 삶이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엄마가 식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이제껏 나는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는 삶에 지쳐 있었다.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지 않으려고 방어기제를 쌓아두고 염세적인 태도로 살아왔다. 별다른 다짐 없이 어영부영 살아지는 안락함을 좋아했다. 기대하지 않고 실망도 하지 않는 쪽이 훨씬 편하다. 그런 염세적인 삶의 태도를 유지하려면 무엇도 쉽게 좋아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지만 식물들이 마음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높게 쌓아둔 방어벽이 무너졌다... 매일 기다려지는 것들이 있기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옷을 대충 챙겨 입은 채로 테라스에 나가 식물들 곁에 한참을 앉아 구경하는 삶이 지금의 나를 충족시키는 삶이다...” (pp.142~143)


  이번 아무튼 시리즈의 지은이는 디어 클라우드라는 모던락 밴드의 베이시스트이다. 밴드의 노래를 유튜브에서 찾아 듣는 중인데, <얼음 요새>라는 곡을 좋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지은이는 http://imelang.com/ 라는 웹 페이지를 가지고 있다. 그중 다이어리라는 카테고리는 최근까지 업데이트가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포토라는 카테고리에 있는 오래된 사진들이 보기에 좋았다.



아무튼, 식물 / 임이랑 / 코난북스 / 146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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