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하면서도 건조하게 그러나 감정선을 놓치지 않고...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최근 젊은작가상 수상집에 실린 동성애 소설에 대해 물었고, 친구는 짧은 대답과 함께 내게 《아름다움의 선》을 알려줬다. 로맨스 소설과 같은 장르물이냐고 묻자 지적인 동성애 소설쯤이라고도 했다. 지적인 동성애 소설, 이라는 것에 대해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소설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을 떠올렸다. (이 떠올림이 영 엉뚱한 것은 아니었는지, ‘앨런 홀링허스트는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와 더불어 우리 시대 영국 최고의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는 설명이 들어 있다.)
“... 그는 초저녁 켄징턴파크 가든스로 귀가하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태양이 나무 한그루 없는 넓은 거리를 갈퀴로 긁는 듯했고, 두 개의 흰 테라스는 부유한 이웃들 간의 반드르르한 아량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윤나는 짙은색 나무에 비친 그림자처럼 희미한 자신의 모습과 동행했다... 응접실 벽난로 위에는 괴르디의 그림, 로꼬꼬풍 액자에 담긴 베네찌아의 까쁘리초가 있었고, 그 맞은 편에는 테두리를 금도금한 거울이 두 개 걸려 있었다...” (p.15)
소설은 현대 영국(이라고는 해도 대처 시대인 1983년에서 1987년까지)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으면서, 그들이 살고 있고, 그들이 파티를 열고, 그들이 정치를 하고, 그들이 가식을 떨고, 그들이 조롱을 하는 저택을 주로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아마도 나는 그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치밀한 묘사들에서 가즈오 이시구로를 떠올렸을 것이다.
“닉은 언제나 친구의 어머니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참한 젊은이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 도한 공격적이지 않은 나이 지긋한 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나름대로 즐겼다. 그는 매력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즐거웠고, 흥분한 나머지 자신이 약간 가식적으로 되는 것도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편 긴장 상태, 짐짓 무심한 태도, 친구를 데려오는 것, 또 꺼내지도 말아야 할 화제에는 유쾌한 태도로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대화를 망가뜨리고 엉뚱한 곳으로 이끄는 그런 불가피하고 곤란한 상황을 삼십초, 일분, 혹은 십분 정도 앞서서 탐지해야 하니, 늘 대화에는 다소 산만하고 적절치 못한 방식으로 참여해야 했다.” (pp.211~212)
그리고 그런 공간 안에서 닉은 이방인의 시선을 지닌 인물로 존재한다. 켄징턴파크 가든스에 있는 페든가 저택의 꼭대기에 위치한 방 한 칸을 거점으로 삼고 있지만, 닉은 내부자라고 할 수 없다. 페든가의 아들인 토비의 옥스퍼드 동문이라는 지위, 그리고 페든가의 딸인 캐서린을 친구처럼 돌볼 수 있는 인물이라는 역할이 그를 1980년대의 한 시절, 내부자로 만들었지만 결국 그에게 그 공간들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거나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어떤 곳으로 남게 될 운명이다.
“... 물론 그의 성기는 이 밤의 숨은 관념이자 이 작고 기묘한 장면에 감춰진 전제였다. 질질 끌다가 싼값에 거래되고 끝내 커다랗고 멍청한 실체가 되어 일어선 관념.” (p.524)
주인공인 닉이 동성애자이고, 그가 소설의 첫 번째 챕터에서는 가난한 흑인 리오와 두 번째 챕터에서는 중동 출신 거부의 아들인 와니와 관계를 맺지만 그 묘사가 포르노를 닮아 있지는 않다. 중요한 순간 건너뛰는 방식의 시퀀스가 사용되기도 하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묘사로 은근슬쩍 넘어가기도 한다. 대신 그들이 나누는 관계의 전체적인 감정선을 만들고 유지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 그의 시선을 텅 빈 거리를 바라보는 아침의 시선이었지만 또한 훨씬 먼 미래, 몇십년 뒤에나 올 지금 같은 오후 그들의 일이 만들어낼 먹먹한 소란을 내다보는 시선이었다. 그 감정이 그를 놀라게 했다. 짧은 생의 모든 단계에서 경험함 감정들, 홀로서기와 그리움과 선망과 자기연민 등이 모여 이룬 일종의 공포. 그러나 이러한 자기연민은 더 큰 연민, 충격적일 만큼 가차없는 세상에 대한 사랑의 일부이리라. 그는 페든가의 저택을 뒤돌아본 뒤 몸을 돌려 더 걸어나갔다. 리본 휘장의 치장벽토로 장식한 마지막 집, 24번지의 집을 그는 현혹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의 빛 속에서 그렇게 아름답게 보인 것은 그 길모퉁이만이 아니라, 그것이 길모퉁이라는 사실이었다.” (p.670)
소설 속에서 닉은 문화 비평을 공부하며 헨리 제임스를 전공하고 또한 헨리 제임스를 흠모하는 학생이기도 하다. 위키백과에 나온 소설가 헨리 제임스 항목에는 ‘근대 사실주의 문학의 지도자이며, 이상한 환경 · 처지와 그러한 관련 밑에 놓인 일반인의 심리를 다루는 데 뛰어났다.’라는 설명이 등장하는데, 《아름다움의 선》이라는 소설 자체가 이런 헨리 제임스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다.
“... 닉은 ‘오지’라는 이름이 괜찮다는 확신을 다졌다. 처음에는 공작부인, 다음으로는 캐서린, 이어서 와니가 아닌 다른 애인이 오지 곡선에 대한 그의 설명을 인상 깊게 들었다. 그 이중의 곡선은 호가스의 ‘아름다움의 선’, 뱀 같은 본능의 번뜩임, 하나의 움직임이 펼쳐지는 가운데 합쳐지는 두 충동의 명멸이었다. 그는 손으로 와니의 등을 쓸어내렸다. 호가스는 ‘아름다움의 선’의 가장 아름다운 사례인 이것,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부풀어오르는 이 선을 보여주지 못했다...” (p.275)
소설에는 문학을 비롯해 오페라를 비롯해 고전적인 예술에 대한 품평들이 등장하곤 한다. (작가의 이름 때문인지, 시리 허스트베트의 소설들이 떠오르곤 했다) 모르는 채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런가하면 페든가의 주인인 제럴드가 (대처 시절 보수당의) 하원의원인 탓에 정치적인 블랙 유머도 아무렇지 않게 튀어 나온다. 닉 보다도 더 외부자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었는데, 지적인 동성애 소설의 형체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앨런 홀링허스트 Alan Hollinghurst / 전승희 역 / 아름다움의 선 (The Line of Beauty) / 창비 / 678쪽 / 2018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