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차근 세상과의 접점을 확인해가다 보면...
박민정 「세실, 주희」
여러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는데, 그것들을 잘 풀어내는 일이 쉽지 않다. 해외 여행 중 J와의 헤어짐 후에 내가 당하였던 성추행 사건, 나와 함께 일을 하는 일본인 세실이 전해주는 할머니 이야기... 과거 그리고 현재, 여기 그리고 거기를 가리지 않고 여성으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일의 복잡다단한 힘겨움에 대한 이야기라고 여긴다.
임성순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미술품 거래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큰손, 이들 큰손의 거래를 주선하였던 브로커를 주인공으로 삼아 예술이 거래되는 실상을 다루고 있다. 실패한 브로커는 이제 뉴욕에서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퍼포먼스를 확인하고, 그 퍼포먼스가 다시 서울로 수입되어 예술이 되어버리는 순간, 이것은 일종의 아수라장이다.
임현 「그들의 이해관계」
“... 사람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어느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게 되면 결국엔 경로를 벗어나버리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이 자꾸 좋아진다라는 것은 누군가 나쁜 쪽을 떠안게 된다는 것 아니겠습니다. 본래는 공평하게 나눠서 나쁜 일을 상쇄시킬 수 있는 문제인데도 누군가 한쪽만 너무 갖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pp.115~116) 운과 불운이 갈리는 어떤 지점이 있다. 그로 인해 어떤 이는 죽음을 맞이하고 남은 이는 그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떤 이는 죽음을 맞이하는데 또 다른 이들은 그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난감해진다. 이 작가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 나쁘지 않다.
정영수 「더 인간적인 말」
정영수는 임현과 함께 주목할 만한 작가이다. “나는 복순이에게 완벽한 삶을 주고 싶었어. 고양이는 신피질이 없어서 과거도 미래도 모른다는 거 아니? 고양이에겐 현재밖에 없어. 나는 복순이가 매 순간 완벽한 시간을 보냈으면 했어. 어떤 고통도 없이. 아마 그랬을 거야.” (p.161) 죽음을 선택하려는 이모와 그 선택에 딴지를 걸고자 하였으나 결국 승복할 수밖에 없었던 조카가 있다. ‘더 인간적인’ 죽음이 아니라 그저 죽음을 대하는 방식의 다원화라는 현대적인 현상이 있을 따름이겠지...
김세희 「가만한 나날」
블로그 마케팅이라는 것이 있었다. 살펴보면 지금도 여전한 것 같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을 부르는 상품을 블로그로 소개하였던 내가 겪는 혼란스러움이 이야기되고 있다.
최정나 「한밤의 손님들」
나와 일영, 그리고 나의 엄마인 오리와 나의 동생인 돼지가 있다. 나와 오리와 돼지가 만나는 식당에서의 일화가 주욱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일영이 그 자리로 툭 떨어진다. 불합리한 관계가 비현실적인 장면 삽입으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전 동성애 영화 찍은 거 아니고 그냥 연애하는 영화 만든 건데요.’ 오래전 술집에서 나는 퀴어 영화가 취해야 할 어떤 지점을 끊임없이 나불거리는 이를 향하여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난 그 이후 더 이상 영화를 찍지 못하고 있다. 자이툰 부대에 파견되어 있을 때, 벽화 그리는 분대에서 연애 감정을 느꼈던 왕샤와 함께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 아니라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박민정, 임성순, 임현, 졍영수, 김세희, 최정나, 박상영 / 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문학동네 / 366쪽 / 2018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