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겨짚거나 그 너머를 보거나 하면서, 그저 에둘러...
작가의 말에서 황정은은 「d」의 전신은 「웃는 남자」이고, 「웃는 남자」는 「디디의 우산」을 부숴 만든 단편이라고 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의 수록작품 발표지면 소개에서는 『창작과비평』 2016년 겨울호에 「d」가 당시에는 「웃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의 2016년 단편집 《아무도 아닌》에는 2014년 가을호 『문학과사회』에 수록된 「웃는 남자」가 실려 있다. 두 「웃는 남자」가 다른 ‘웃는 남자’여서, 나는 「d」의 전신을 찾다가 조금 헷갈리고 말았다.
「d」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인간의 마음은 턱에 있다고 d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턱이 아팠으니까.
d는 종일 입을 다물고 있었고 때때로 피 맛을 느끼고 입을 벌렸으나 아무리 혀로 더듬어도 출혈은 없었고 다만 그때마다, 그때까지 자신이 얼마나 입을, 턱을 세게 다물고 있었는지를 알았다...“ (p.33)
d의 세계에는 이제 dd가 없는데도 어쩐지 d의 세계는 dd의 세계의 거울 속과도 같은 것은 아닌지 넘겨짚는다. d는 그저 d를 말하고 있을 뿐인데, 거기에는 항상 dd가 있는 것만 같다. 유지되고 있는 것과 이미 소멸하여 사라진 것 사이의 솔직하지 못한 유대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러고보니 소설을 읽는내내 딴 생각을 하였다. 나는 넘겨짚거나 그 너머를 보거나 하였을 뿐이다.
“내내 이어질 것이다. 더는 아름답지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삶이. 거기엔 망함조차 없고······ 그냥 다만 적나라한 채 이어질 뿐...” (p.134)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내게는 단편이 되다 만 열한개의 원고와 장편이 되다 만 한개의 원고가 있다. 어느 것도 완성하지 못했다. 나는 내 데스크톱에 폴더를 만들고 거기에 그 원고들을 담아두었다. 열두개의 원고. 모두 미완이므로 종합 열두번의 시도, 그 흔적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매번 그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단 한가지 이야기.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를.” (p.151)
묘하게도 직전에 읽은 폴 오스터의 《고독의 발명》이 그랬던 것처럼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에는 두 장편 소설이 실려 있고, 그 중 두 번째 장편에는 많은 인용들이 있다. 황정은 쪽이 보다 정치적이지만 산문체의 소설이라는 면에서, 심리적인 사변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닮았다. 소설이 씌어진 시기, 그러니까 박근혜 탄핵이 완성되고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된 후인 2017년 하반기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나름의 독해가 가능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툴을 쥐지 못한 인간 역시 툴의 방식으로······” (pp.189~190)
황정은 / 디디의 우산 / 346쪽 / 2019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