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의 공포가 우리의 이타利他를 북돋아주길...
“이유는 물론 돈이다. 공무원 신분이었을 적에는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하지만 70세가 되어 정년퇴직을 했고, 공무원연금은 쥐꼬리다. 연금에서 아내의 요양원 비용을 제하고 나면 하루 두어 번 김밥천국에 갈 정도의 돈이 남았다.” (p.15)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년에 발표된 국내 작가의 소설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좋은 소설이라는 평을 읽었는데, 뭐야, 기본적인 사항조차 어긋나 있는 건가, 70세 정년퇴직에 공무원연금이 쥐꼬리라니, 투덜댔다.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는 반리얼리즘 소설인 건가, 의구심을 잠시 가졌다. 하지만 이 아무 말로 느껴지는 설정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소설은 그로테스크한 근미래 사회파 소설의 형태를 띠어가기 시작한다.
“... 송 씨의 바로 이웃집에는 94세의 할머니가 122세의 부친을 간호하며 산다. 학계에 보고된 모든 성인병을 장착한 그 부녀가 매달 받는 국가노령연금, 생필품 공제쿠폰, 최저생계 보조비, 가사도우미 보조비, 의료비 및 약제비 할인은 어지간한 젊은이 셋의 월급을 합친 것보다 많다. 시스템에 구멍이 나면 가끔은 이런 케이스도 발생하는 법이다.” (p.30)
그러니까 사실 《당신의 노후》는 현재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도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 혹은 이십 년 길게 잡으면 삼십 년쯤 후라면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닌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늙으면 소설 속의 주인공인 장길도가 되어 허겁지겁 뛰어다니게 될 수 있고, 장길도의 아내 한수련이 되어 자신의 밑천이 자신의 목숨줄을 죄는 아이러니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적색 리스트에 오른 과다 수급자를 처리할 때 노령연금TF팀의 외곽 공무원들은 주로 ‘가능성을 높인다’고 표현한다. 어차피 인생은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사람의 목숨이란 참으로 질긴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 보면 피로 가득 찬 풍선과 다를 바 없다. 자그마한 바늘 하나에 숨이 끊어지는 경우가 그토록 많은 것이다. 장길도의 팀은 풍선 주위에 압정을 몇 개 슬그머니 놓아둠으로써 조기 사망의 가능성을 높이는 작업을 해왔다...” (pp.55~56)
소설은 ‘노령연금TF팀의 외곽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그들이 말하는 적색 리스트, 많은 세금을 수령하게 되는 노인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업무를 담당하였던 장길도가 어느 날 자신의 아내 한수련이 바로 그 적색 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이 장길도는 퇴사를 한 다음이고, 장길도는 남아 있는 국희라는 인물의 도움을 받아 한수련을 구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한다.
“저 멀리 인형술사가 추락한 화단 주변에 예닐곱 명의 늙은이들이 모여들어 웅성대고 있었다. 평일 저녁에 그러고 있는 걸 보니 다들 은퇴하고 연금이나 받아먹으며 사는 모양이었다. 터지고 짜부라진 주검 주위에 초승달 모양으로 둥글게 서서는 다름 아닌 저희들의 노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p.92)
그리고 틈틈이 소설은 장길도와 그의 팀이 처리하였던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 그들의 죽음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고 어떤 식으로 은폐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소설에 실려 있는 이야기들은 충분히 염세적이지만 이 이야기들이 리얼하지 않다고 옆으로 밀쳐놓을 수 있는 호기로움이 생기지 않는다. 소설은 괴기스럽고 공포에 가득한 리얼리티를 충분히 수반하고 있다.
“연금이 저축해둔 돈 찾는 게 아닌 거 알잖아. 생산인구 소득을 거둬 비생산인구들에게 나눠줘는 거야. 요새 청년 세 명이 노인 일곱 명을 부양하고 있어. 청년들이 100만원씩을 벌면 너희 늙은이들한테 쪽쪽 빨려서 집에는 대략 50만 원씩 가져간단 말이야. 그 돈으로 애인 만나 찻집에 가고 결혼을 하고 애도 낳아 기르고 월세도 내야 돼. 나머지 50만 원은 당신 같은 늙은이들한테 갖다 바치고 말이야... 왜 안 죽어? 응? 늙었는데 왜 안 죽어! 그렇게 오래 살면 거북이지 그게 사람이야? 요즘 툭하면 100살이야. 늙으면 죽는 게 당연한데 대체 왜들 안 죽는 거야! ...” (pp.125~126)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이 이 소설을 추켜세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인간 수명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출산율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가족 공동체의 붕괴는 가시권에 들어섰고, 이를 보완해야 할 사회 시스템은 개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재가 소설 속에 그려지고 있는 가까운 미래를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음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공포가 우리의 이타利他를 북돋기 보다는 우리의 이기利己를 더욱 부채질 할 것도 알고 있으므로...
박형서 / 당신의 노후 / 현대문학 / 158쪽 / 2018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