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바깥에서'인 듯 몽롱함으로 일관하는...
「서울-북미 간」
처음 계간지에 실렸을 때의 제목은 <닥터 K의 경우>였다. 그것이 소설집에서 <서울-북미 간>으로 바뀌었다. ‘K 씨께서는 현상의 역동이 아니라, 그 안에 전해 내려오는 풍속까지 욕망하시는군요. 무엇이 K 씨를 그렇게 만든 걸까요’ (p.13) 아마도 알 듯 모를 듯한 대화를 주고 받은 K와 H는 캐나다, 그러니까 북미에서 만났다. K는 대학교에 진학한 딸을 잃은 적이 있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이 있었다. H는 오래 전 남편을 잃은 후 캐나다로 떠나 그곳에 정착하였다. 남편은 그때 그 시간 무너지던 삼풍백화점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과 북미 사이라는 건, 세월호와 삼풍백화점 사이라는 의미일 터이다. 그러니까 어떻든 유지되고 있었던 사건 그리고 시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다.
「나이아가라」
계간지에 실렸을 때의 제목은 <눈물>이다. 조부모 댁에 머물던 시절 내가 만났던 삼촌에 대한 이야기이다. 친삼촌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그들은 무언가를 나누었다. 그 삼촌이라는 이는 이후 집을 떠났고, 나도 그곳을 다시 찾지는 않았다. 시간이 흘러 그의 부음을 들었고 나는 머나먼 대륙에서 그 삼촌의 행적을 복기하는 중이다. “그곳에서 돌아 나올 때 나는 뿌연 물보라 속에서 낯이 익은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 나와 함께 횡단 열차를 타고 왔던 그들, 일본인 남녀였다. 그들은 폭포를 앞에 두고 허리를 구부린 채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물줄기 소리에 가려 내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p.75) 나와 삼촌 사이의 흐릿하지만 아예 끊이지는 않은 관계가 중심에 있는데 느닷없는 일본인 커플의 등장에 눈이 간다. 일종의 맥거핀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경옥의 노래」
오래전, 상욱의 친척인 재순을 통해 만난 적이 있던 경옥, 두 사람은 많은 시간이 흘러 다시 재순을 사이에 두고 제주에서 만났다. 재순이 떠나고도 며칠을 제주에서 더 지낸 두 사람은 이제 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하지만 경옥은 상욱을 두고 자꾸 떠나려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그렇게 자꾸만 떠나던 경옥은 아예 상욱을 떠나고, 상욱은 경옥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를 배낭에 넣고, 두 사람이 함께 한 장소를 찾아가 한 줌씩 뿌린다.
「총」
가부장적인 아비와는 이미 오래 전 연을 끊다시피 한 사이인 명기는 그러나 누이의 부탁으로 아비를 찾아간다. 명기와 아비 사이의 불화를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데, 느닷없이 총을 꺼내는 부분은 조금 뜬금없다.
「밤의 흔적」
죽은 이들의 흔적을 지우는 청소 업체에서 함께 일하는 장호와 현수... ‘숲속의 웅덩이’라는 어떤 꿈 속의 개념에 의지하여 소설은 진행이 되고, ‘암리타’라는 범어의 개념에 의존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고양이 새끼를 한 마리 키운 적이 있어요. 근데 어느 날 냉장고를 열어보니 그 안에 싸늘하게 죽어 있더군요... 고양이가 제 발로 냉장고 안에 들어간 걸까요?” (p.211) 별 의미 없이 고양이를 죽여 못마땅하다. 집을 거래하는 일을 하는 희숙과 집의 거래를 위하여 희숙과의 관계를 시작한 성희 사이에서 조금씩 무르익어가는 워맨스 Womance 라고 해야 할까...
「생의 바깥에서」
“그가 담배를 연거푸 피워대는 동안 아까 그녀가 타고 간 버스와 같은 번호의 버스가 도착했다. 그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그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잠시 후 기적이 일어났다... 그녀가 다음 정류장에 내려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p.226) 개연성의 부족은 윤대녕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불현듯 발생하고 불현듯 알아채고 불현듯 느끼는 일들이 수도 없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천태만상이 채워지는 것은 아닌데...
「백제인」
20년 전 헤어진 남편으로부터의 연락을 받고, 이제 두 자식과 함께 그를 찾아가는 혜진의 마음에 충분히 젖어들기 힘들다. 그러한 헤어짐의 원인이 되었던 ‘여인상’에 대해서도 납득이 쉽지는 않다.
윤대녕 /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 문학과지성사 / 282쪽 / 2019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