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행 안의 짧은 여행들 그리고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
*2019년 2월 2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오월이 되면 아내와 함께 짧은 휴가를 다녀오기로 했다. 우리는 그 기간을 온전히 휴양에 할애하기로 했다. 고양이 용이가 떠나고 이제 우리도 이런 휴양이 가능해졌다. 아내에게는 쓰지 못한 항공 마일리지가 있다. 나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많다, 는 아니지만 어쨌든, 동남아의 리조트를 섭렵한 동생으로부터 몇 개의 유알엘을 넘겨받았다. 동생은 어제 아내 그리고 조카와 함께 하와이로 떠났다.
“(A) 나는 일상생활에서는 대체로 야무지지 못하고 뭐든 적당히 하는 성격이다. 그 때문에 뭔가 불편을 겪어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되지 않을 때는,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B) 아내는 일상생활에서는 신경질적이고 조금만 뭐가 흐트러져 있어도 신경을 쓰는 편이다.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을 생각하고 사전에 준비해 두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 성격이다.
(C) A와 B의 차이가 너무나 커서 그 중간에 때때로 정신적 무인지대 같은 것이 생겨난다.“ (p.80)
휴가를 결정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 이후부터가 문제다. 그 날짜에 누군가가 우리를 슬쩍 집어 올려서 그대로 휴양지로 데려다 놓아주면 좋겠다. 내가 말하자 아내도 크게 수긍했다. 나는 하루키 A에 가깝지만 아내는 하루키의 아내 B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무인지대는 하루키의 그것만큼 넓지는 않다. 어쩌면 내 생각만일 지도 모른다. 숙소는 알아보고 있는 것인지 아내가 몇 차례인가 물어보았다.
“... 그리스인들은 고양이에게 꽤 관대하며 때로는 친절하기까지 하다. 우리 집 앞에는 자그마한 공터가 있어 근처 고양이들의 집회장 같은 역할을 하는데, 거기에 종종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물을 두고 간다. 그러면 고양이들이 모여들어 아주 소중한 음식이라는 듯 우물우물 먹는다... 그들은 특수한 고양이를 제외하면 애완동물로서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본 바로는 딱히 괴롭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귀여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고양이를 그저 단순히 거기에 존재하는, 거기에 살고 있는 것으로밖에는 보지 않고 있다. 새나 꽃이나 풀이나 벌과 마찬가지로, 고양이 또한 ‘세계’를 형성하는 한 존재인 것이다. 그들의 ‘세계’는 그런 식으로 매우 너그럽게 성립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리스의 시골에 고양이가 많은 진짜 이유는 그들의 세계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pp.106~107)
어쨌든 이번 휴가는 고양이 용이가 우리에게 허락한 시간이 있어 가능해졌다. 용이가 떠났다, 시간이 생겼다, 우리는 떠날 것이다. 논리의 전개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한 고양이가 차지하고 있던 세계의 문이 닫혔는데, 그제야 열리게 되는 어떤 쪽문 같은 여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애도는 우리가 쉬는 동안 쉼 없이 이어지게 될 수도 있다.
『저녁식사를 끝내면 밖은 이미 새까맣게 어두워져 있다. 나는 거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아내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거나 일기를 쓰고 또는 가계부를 정리하거나, “아아, 나이 좀 안 먹을 수 없을까”라는 등 영문을 알 수 없는 푸념을 하기도 한다. 추운 밤에는 난로에 불을 지핀다. 난롯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은 조용히, 그리고 기분 좋게 지나간다. 전화도 걸려오지 않고 마감 날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눈앞에서 타닥타닥하고 불꽃이 튈 뿐이다. 기분 좋은 침묵이 사방에 가득하다. 포도주를 한 병 비우고 위스키를 한 잔 스트레이트로 마시면 슬슬 잠이 온다. 시계를 보니 이제 10시다. 그대로 포근하게 잠 속으로 빠져든다. 뭔가를 열심히 했던 하루 같기도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하루 같기도 하다.』 (p.125)
책의 머리말에서 하루키는 스스로를 ‘나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문장을 써나가는 상주적 여행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먼 북소리》는 짧은 휴양이 아니라 긴 여행에 대해 적어 내려간 에세이집이다. 간간이 일본에 돌아오곤 하지만 다시 떠나기를 반복하면서 하루키는 로마와 아테네, 그리스의 스펫체스 섬과 미코노스 섬, 시실리, 크레타 섬, 헬싱키와 레스보스 섬, 잘츠부르크와 알프스에 이르는 장소들을 섭렵했다.
“매일 계속해서 소설을 쓰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때때로 자신의 뼈를 깎고 근육을 씹어 먹는 것 같은 기분조차 들었다(그렇게 대단한 소설은 아니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쓰는 쪽에서는 이런 느낌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쓰지 않는 것은 더 고통스러웠다.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글은 써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그 세계에 자신을 몰입시키는 집중력, 그리고 그 집중력을 가능한 한 길게 지속시키는 힘이다. 그렇게 하면 어느 시점에서 그 고통은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 것. 나는 이것을 완성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p.186)
하루키는 긴 여행의 내부에 속하는 짧은 여행들을 제외한다면 그리스와 로마에 임시 거처를 잡아 놓은 상태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일에 집중시켜다. 이 시기, 장편소설 《상실의 시대》를 ‘그리스에서 쓰기 시작하여 시칠리아를 거친 후 로마에서 완성’하였고, 장편소설 《댄스 댄스 댄스》의 ‘대부분을 로마에서 쓰고 런던에서 완성’하였다. (이외에도 단편집 《TV 피플》과 몇 권의 소설을 번역했다) 그리고 ‘서른 일곱에 떠나 어느덧 마흔’이 되어서야 여행을 끝냈다.
무라카미 하루키 / 윤성원 역 / 먼 북소리 (遠い太鼓) / 문학사상 / 507쪽 / 2004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