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명의 소설가에게 듣는 비의랄 것 없는 비의...
『... 마라톤을 한다는 사실로 널리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가 “긴 소설을 쓰는 것은 서바이벌 훈련과 비슷해요. 신체적인 강함이 예술적인 감수성만큼이나 주요하거든요.” 라고 말한다면 놀랄 사람이 많지 않겠지. 그러나 다음과 같이 마르케스의 말을 들을 때도 과연 그럴까?
그 자신에게 글쓰기란 권투와 같다는 헤밍웨이의 글이 제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건강을 잘 돌보았지요. ······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작가는 글을 쓰는 매 순간 절대적으로 제 정신이어야 하며 건강해야 합니다. 글 쓰는 행위는 희생이며, 경제적 상황이나 감정적 상태가 나쁘면 나쁠수록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낭만적인 개념의 글쓰기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작가는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주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학작품 창작은 좋은 건강 상태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며, 미국의 ‘잃어버린 세대’ 작가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소설가에게 건강과 체력이 이토록 중요한 까닭은 소설가란 임시의 직업, 과정의 지위를 뜻하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정의하자면, 소설가란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말하겠다... 소설가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 소설을 쓴다. 결국 그는 매일 소설을 쓰게 될 텐데, 그러자면 건강과 체력은 필수적이다... 소설가는 불꽃이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뒤에도 뭔가를 쓰는 사람이다. 이때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다 타버렸으니까. 이제 그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소설을 쓸 때만 그는 소설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 권 이상의 책을 펴낸 소설가에게 재능에 대해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그들에게 재능은 이미 오래전에, 한 권의 책으로 소진돼버렸으니까. 재능은 데뷔할 때만 필요하다. 그다음에는 체력이 필요할 뿐이다.』 (pp.6~7)
얼마 전 《글쓰는 여자의 공간》이라는 책을 읽으며 한 가지 눈여겨 본 것이 있다. 거론된 작가들의 생몰년도였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69년을 살았고, 크리스타 볼프는 82년을 살았고, 시몬 드 보부아르는 78년을 살았고, 토니 모리슨은 1931년생으로 그리고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1946년생으로 아직 살아있고,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82년을 살았고,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74년을 살았다, 는 사실이었다.
작가라고 하면 퍼뜩 떠올릴 수 있는 일종의 신경증적인 기질과 파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상의 습관 등을 고려한다면 언급되고 있는 작가들의 수명은 이상하리만치 길기만 하였다. 그리고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김연수의 글을 읽고 그 비밀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 그 중에서도 소설가, 특히나 우리가 좋은 소설가라고 입을 모아 호명하는 이들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처럼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거나 (술을 마시더라도 글을 쓰는 동안은 마시지 않았고) 아예 마시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애쓴다.
“어떤 문맹인 사람이 가령 현재의 제 나이에 죽는다면 단지 한 개의 삶만을 사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저는 나폴레옹, 카이사르, 달타냥의 삶을 살았지요. 언제나 젊은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데, 책을 읽으면 기억력이 좋아지고, 엄청나게 다양한 개성을 계발할 수 있답니다. 삶의 마지막에 가서는 수없이 많은 삶을 살게 되는 거예요. 그건 굉장한 특권이지요.” (pp.53~54)
‘당신의 생에에 지식과 문화가 어떤 이익을 가져다 주었습니까?’라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움베르토 에코는 위와 같이 답한다. 물론 에코는 텔레비전에 관심을 갖고 계시냐는 질문에 “진지한 학자들 중에서 텔레비전 보는 걸 즐기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단지 그걸 고백하는 유일한 사람일 뿐이지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글과 사상이 겨냥하는 다방면성을 추측할 수 있다.
“제가 사유하는 방식에서는 책 한 권을 여러 장으로 나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소설을 쓸 때 줄거리 전체를 미리 생각하고 있다면 - 대개는 미리 알고 있지요. - 전체 줄거리를 각 장으로 나누어서 각각의 장에서 일어나게 하고 싶은 세부 사항들을 생각하지요. 그렇지만 반드시 1장에서 시작해서 순서대로 써 나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글이 막히게 되더라도 별로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지요. 생각이 가는 대로 계속 쓰면 되니까요. 첫 장부터 다섯 번째 장까지 쓰고 나서 재미가 없으면 15장으로 넘어가서 거기서부터 계속 쓸 수도 있답니다.” (p.75, 오르한 파묵)
“1970년대에 저는 제 침실의 작은 책상에서 일하곤 했습니다. 만년필로 작업을 했지요. 타자기로 초고를 만들고, 초고에 수정을 하고, 다시 타자기로 쳤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저는 다행스럽게도 컴퓨터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워드프로세싱은 내면적이어서 생각하는 것 그 자체에 더 가까웠어요. 돌이켜보면 타자기는 엄청난 기계적 방해물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컴퓨터 메모리에 저장된 인쇄되지 않은 자료의 잠정적인 상태를 좋아합니다. 마치 아직 말하지 않은 생각처럼 말이에요. 저는 문장이나 문단이 끊임없이 수정되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믿을 만한 기계가 당신이 적어놓은 사소한 것들까지 모두 기억해서 알려주는 그런 방식을 좋아합니다...” (pp.204~205, 이언 매큐언)
“... 아무도 저에게 작가가 되라고 요구한 적은 없어요. 그러나 살아내고, 공과금을 내고, 식구들을 먹이고, 동시에 자신을 작가로 생각하고 글쓰기를 배우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 해 동안 쓰레기 같은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글을 쓰려고 애쓰면서 제가 빨리 끝낼 수 있는 걸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한 권에 2~3년이 걸리는 소설을 쓸 방법이 없었어요. 다음 해나 3년 후가 아니라 당장 보수를 지급받을 수 있는 것을 써야 해습니다. 그래서 단편이나 시를 썼지요...” (pp.322~323, 레이먼드 카버)
“... 아이작 디네센은 매일매일 희망도 절망도 없이 조금씩 쓴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마음에 듭니다. 소설이나 희곡, 시집 한 권이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대한 생각이나 자신에 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시대는 - 그런 시대가 설혹 있었다 해도 - 이미 지나가 버렸어요. 특정한 삶을 사는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쓰면 어떤 분야의 삶을 전보다 약간 더 이해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저 자신에 관한 한 예술의 역할은 딱 그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p.347, 레이먼드 카버)
“책이나 이야기를 쓸 때, 저는 매일 아침 동이 트자마자 쓰기 시작합니다. 아침에는 저를 방해할 사람이 없으며, 날이 시원하거나 차갑긴 하지만 작업을 하게 되면 곧 더워집니다. 이미 썼던 것을 다시 읽어보고,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게 될 때 글쓰기를 멈춥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바로 그 부분에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지요. 여전히 쓸 것이 있으며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는 그런 곳에 이를 때까지 글을 쓰다가 멈추고는, 다음 날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살아 있으려고 애를 씁니다. 아침 여섯 시에 글쓰기를 시작해서, 정오 무렵까지 아니면 정오 전에 글쓰기를 끝냅니다...” (pp.400~401, 어니스트 헤밍웨이)
“예술가가 필요로 하는 유일한 환경은 평화, 고독, 너무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즐거움뿐입니다. 나쁜 환경이란 혈압이 올라가는 상황, 즉 좌절하고 분노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상황이겠지요. 제 경험으로는, 제 직업에 필요한 것은 종이, 담배, 음식과 약간의 위스키뿐입니다.” (p.440, 윌리엄 포크너)
“... 예술가는 비평가 위의 계층입니다. 왜냐하면 비평가는 예술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감복시킬 무엇인가를 쓰는 반면에, 예술가는 비평가를 감탄시킬 무엇인가를 쓰기 때문입니다.” (p.460, 윌리엄 포크너)
《작가란 무엇인가 1》은 인터뷰 전문 잡지인 <파리 리뷰>에 실렸던 소설가의 인터뷰를 모아서 만들었다. 소설가들의 면면은 이렇다. 움베르토 에코, 오르한 파묵,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 이언 매큐언, 필립 로스, 밀란 쿤데라, 레이먼드 카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E.M. 포스터... 이들을 인터뷰한 것은 라일라 아잠 잔가네, 앙헬 귀리아-퀸타나, 존 레이, 마이클 우드, 에덤 베글리, 허마이오니 리, 크리스티앙 살몽, 모나 심슨 & 루이스 버즈비, 피터 H 스톤, 조지 플림턴, 진 스타인, P.N. 퍼뱅크 & F.J.H 해스캘...
인터뷰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작가들은 내가 좋아하거나 아주 좋아하는 소설가들이다. 몇몇 소설가의 작품은 번역되어 출간된 것들은 대부분을 읽었다고 자부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학 일반에 대한 생각이나 자신의 작품에 대한 생각을 읽는 일은 무작정 즐거웠다. 그들의 창작에 커다란 비의가 숨겨져 있지 않았고, 그저 쓰는 일에 집중하다보니 그 결과로 이렇게 되었으며, 심지어 자신에게 주어진 ‘명성’을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실토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움베르트 에코, 오르한 파묵,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 이언 매큐언, 필립 로스, 밀란 쿤데라, 레이먼드 카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E.M. 포스터 / 권승혁, 김진아 역 / 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PARIS REVIEW Interview Anthology : Volume 1 <Work 1>) / 다른 / 495쪽 / 2014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