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후 다른 세상에서 또다른 삶이 이어진다면...
무척 슬픈 이야기이지만 마냥 슬프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애초에 죽음이라는 것이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죽으면 그것으로 그냥 끝, 이라는 데에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이쪽의 세상이 있듯이 죽고 나면 저쪽의 세상, 이를테면 상상이 불허된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해보는 것으로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수도 있다.
“... 리즈가 아는 한 죽은 사람들은 거의 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니까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한테는 죽음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자기 또래의 사람들을 만날 가능성도 높고, 자신보다 먼저 죽은 친한 사람들을 만날 가능성도 높고, 자신보다 먼저 죽은 친한 사람들을 다른 세상이라는 여기서 만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리고 나이가 정말 많다면 아는 사람 중에서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을 테니 죽는 것이 신나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이고(거의 열여섯에 가까운), 자신과 이 배에 함께 탄 사람들 말고는 아는 사람 중에 죽은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니 리즈에게 죽는다는 것은 말도 못할 정도로 외로울 게 분명했다.” (p.54)
만약 쉰 살의 내가 지금 죽었다고 치자. 죽은 나는 거대한 배에서 깨어난다. 나는 내 죽음의 원인이 되는 외상이나 내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다른 세상에서의 삶, 그러니까 죽음 이후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흉터는 시간이 지나면 (죽은 다음에도 시간은 흐른다) 사라지게 될 것이고, 나는 이쪽 세상과 같은 단위의 시간에 따라 조금씩 젊어지게 될 것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죽는 그 순간부터 나이를 거꾸로 먹는단다. 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때 난 쉰 살이였어. 그런데 여기 온 지 16년이 되었고 지금 나는 서른네 살이야...” (p.85)
리즈는 열여섯 살에 가까운 열다섯 살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처음에는 그 교통사고의 흔적인 흉터가 사라지는 것마저 슬프다. 그 흉터가 죽음 이전의 세상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세상에서 만난 외할머니, 살아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할머니 베티에게 한없이 못되게 굴기도 했다. 하지만 리즈는 조금씩 다른 세상에 적응해가기 시작한다.
“다른 세상에서의 삶을 이렇게 도중에 끝내버리면 나는 어떤 인생을 살 수 있었는지 영원히 알 수 없어. 지금처럼 거꾸로 나이를 먹는 말도 안 되는 인생이라도 인생은 멋진 거야, 라고 리즈는 생각했다. 나이를 먹고 늙어 가는 과거의 삶에 연연하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과거의 삶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 나이를 거꾸로 먹고 어려지는 이 삶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일을 경험할 수 있다.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삶이나 여기서의 삶이나 다를 게 없다...” (p.267)
그곳에도 사람들이 있고, 리즈는 그 사람들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천직이라고 부르는 일을 찾아서 직장에 다니고, 이승에 대한 관심이 지나쳐 우연히 만나게 된 오웬에게 사랑이라고 부를법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친구들도 사귀게 되고,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을 여럿 갖게 되기도 한다. 죽음의 시간을 건너뛰어 곧바로 환생을 시도하려다 그만두는 것은 이들 때문이다.
“... 지혜로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승에서 나이를 먹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세월에 맞서 젊음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 쓰는 것이 오히려 헛된 일이다. 마찬가지로 나이를 거꾸로 먹어 어려지는 것도 슬픈 일은 아니다. 리즈는 한때 어려져서 자신이 알던 것을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고 두려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알던 것을 차츰 잊어버리게 되자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까지 잊어버리게 되었다. 인생은 참 친절해, 라고 아기 리즈는 생각했다.” (pp.332~333)
소설을 읽으며 죽음을 떠올린다. 나의 죽음을 떠올리기에는 아직 여유가 있지만 고양이 용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소설 속에서 리즈는 자신이 키우던 반려견 루시를 다른 세상에서 만나 행복감을 느낀다. 소설의 셈법으로 하자면, 고양이 용이가 죽고 나 또한 고양이 용이의 나이에 이르기 전에 죽게 된다면,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는 잘만 하면 서로의 말로 의사소통을 할 수도 있다. 행복한 상상이다.
가브리엘 제빈 Gabrielle Zevin / 서현정 역 / 다른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lsewhere) / 대교베텔스만 / 2006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