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여러 국면들이 차근차근 모습을 드러낼 때...
「착한 여자의 사랑」
“... 누구의 삶이든 똑같다. 우리가 잠든 사이 악의 힘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고통과 몰락이 잠복하고 있다. 동물적인 공포, 그건 당신이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끔찍하다. 침대의 편안함, 소들의 숨소리, 밤에 별들이 그려내는 무늬 -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전복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바로 이니드가 자신은 그렇지 않은 척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p.90) 마을의 호수에서 발견된 자동차와 그 안의 시체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차근차근 원을 그리며 나아간다. 이야기의 처음으로 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야기의 끝으로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의 다른 국면이 펼쳐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은 같은 국면이기도 하다. 어쩌면 또 다른 국면을 잉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미 이야기 안에 잉태되어 있던 국면이기도 하다. 표제작으로 삼을만큼 좋은 소설들 중의 좋은 소설이다.
「자카르타」
“... 그들은 전진하고 물러나고 원을 그리며 돌고 서로 몸을 살짝살짝 피하면서 서로를 위한 쇼를 펼쳤고, 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빛은 이 쇼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벌거벗은 몸으로 벌일 수 있는 격렬한 몸짓에 비하면 이 쇼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선언하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가까워졌을 때 파트너가 자기 몸을 보호하려는 듯 팔을 들고 손등을 움직였다. 그 순간 그의 드러난 손목과 팔뚝이 정전기를 일으키는 양모 스웨테 속 그녀의 뻑뻑한 젖가슴을 스쳤다. 그 순간 그들은 휘청하며 춤을 마칠 뻔했다. 하지만 그들은 춤을 멈추지 않았다...” (p.177) 앨리스 먼로의 에로틱한 순간에 대한 묘사는 대략 이런 식이다. 이런 식이 마음에 든다. 얼마 전 읽은 장편 《소녀와 여자들의 삶》에서는 그의 손가락과 그녀의 손가락과 우리의 손가락에 대해서 반 페이지 분량의 묘사가 등장한 적도 있다.
「코테스섬」
“배, 부두, 해변의 돌멩이, 하늘을 찌를 듯하거나 웅크린 나무들, 혹은 물 쪽으로 몸을 내민 나무들, 주변 섬들의 복잡한 윤곽선, 어둑하지만 뚜렷이 구분되는 산들은 자연의 혼란스러움 속에서, 내가 꿈꾸거나 창조해낼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더 화려하면서도 더 평범하게 존재하는 것 같았다. 당신이 거기 있거나 없거나 계속 존재할 장소, 사실은 지금도 그곳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어떤 장소처럼.” (p.244) 앨리스 먼로가 장소와 사람을 연결시키는 방식은 즉각적이기도 하지만 이약기의 구깃구깃한 속내에 감춰져 있기도 하다. 고리 씨의 오래된 기사 스크랩북에서 보았던 ‘코테스섬’은 어느 순간 내 앞에 불쑥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고리 씨보다는 고약한 고리 부인이 더 기억에 남기는 하지만...
「추수꾼들을 제외하고는」
“오늘은 아니더라도 내일 밤에는 모두 떠나간 이 텅 빈 집에서, 이브는 종이 같은 합판 벽의 껍데기에 둘러싸인 채 동그마니 누워 결과에서 놓여나 가벼워지려고 애쓸 것이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지금은 성장을 멈추었지만 날이 저문 뒤에는 아직 생명의 소리를 내는, 뿌리를 깊이 내린 키 큰 옥수수의 사가거리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pp.302~303) 할머니와 손주들과 할머니의 과거와 손주들의 현재와 딸과 사위와 현재의 집과 과거의 집이 조금씩 뒤섞이면서 은은한 공포감을 자아낸다.
「자식들은 안 보내」
“그들은 평소와는 다르지만 완전히 낯설지는 않은 방식으로 생각을 이어가며 편안하게 논쟁을 해나갔다. 그들은 결혼해 살면서 아주 가끔씩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 신에 대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건지에 대해, 돈이 중요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밤이 깊도록 대화를 나누었다. 마침내 그들은 너무 피곤해서 더 말해봤자 제대로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했고, 동지 같은 자세로 누워 잠이 들었다.” (pp.335~336) 오르페우스의 변형된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려는 남자와 그 무대에 배우로 서게 되는 한 여자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가, 변형된 불륜의 이야기가 되어 등장한다. “이건 극심한 고통이다. 만성적인 고통이 될 것이다. 만셩적이라는 말은 영원하긴 하지만 한결같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그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벗어날 수는 없어도, 그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 매 순간 느끼지는 않겠지만, 고통 없는 상태가 여러 날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얻은 그것을 파국으로 몰아가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그 고통을 무디게 하거나 유배시키는 요령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가. 그 일이 그저 가슴 아픈 과거로만 남고 더는 현재의 것이 될 수 없을 때까지 그걸 끌어안고 살면서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 (pp.357~358)
「돈냄새가 진동할 만큼 부자」
앨리스 먼로의 소설을 읽는 일은 무척 설레고 흥미로우면서도 독자들의 집중도 요구한다. 앨리스 먼로의 소설이 집중을 요구하는 것은, 그러니까 등장인물을 순서를 지키며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카린이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데릭이 로즈메리가 등장하고, 앤이 불쑥 튀어나오고 테드가 나오고 그레이스가 나온다. 앨리스 먼로의 소설에는 한 사람과 두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세 사람이나 네 사람이 나온다. 그들은 혈연이거나 혈연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이이거나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이웃이다. 외국어로 된 이름을 한꺼번에 머릿속에 넣어놓고 관계도를 그리는 일은 언제나 힘겹다.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나는 스키를 타고 자갈 채취장으로 갔는데, 거기 비탈엔 세월과 더불어 풀이 무성히 자라 있었고 지금은 눈까지 덮여 있었어요. 개들이 지나다닌 흔적, 새들이 지나다닌 흔적, 날쌘 들쥐가 남긴 희미한 동그라미의 흔적. 하지만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내려갔다 올라왔다, 다시 내려갔다 다시 올라왔어요. 처음에는 조심조심 사선으로 내려갔지만 곧 더 가파른 각도로 내려갔어요. 이따금 넘어질 때도 있었지만, 새로 내린 눈이 충분히 쌓여 있어서 안전하게 넘어질 수 있었어요. 그렇게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는 그 짧은 순간에 문득 나는 뭔가를 깨달았어요.” (pp.490~491) 아버지의 죽음과 아버지가 하던 일, 아버지가 하던 일을 돕던 B 부인, 그리고 B 부인이 자리를 비웠을 때 내가 하던 일과 내가 신학대학을 다니던 한 남자의 아이를 가졌을 때 해야만 했던 일들이 겹친다. 사실 깨달음은 한달음에 오는 것은 아니다. 무수한 길과 그 길의 무수한 흔적과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난 다음에야 오는 것이다.
「우리 엄마의 꿈」
“아기 울음소리가 당신 존재의 안팎에 정립된, 당신이 따르는 질서를 깨부술 만큼 강력한 건 어째서일까? 그 소리는 폭풍 같다 - 집요하고 극적이지만 한편으론 순수하고 꾸밈없다. 뭔가 간청한다기보다는 책망하는 소리다 - 달래질 수 없는 분노, 사랑이나 연민과는 무관하게 출생 때부터 품고 나온 분노, 당신의 두개골에 감싸인 뇌를 언제라도 부숴버릴 수 있는 그런 분노에서 나오는 소리다.” (p.543) 아버지는 죽고 엄마의 뱃속에는 내가 있다. 그런 ‘나’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다. 내가 세상으로 나오기 전과 나온 후까지를 아우르는 엄마와 나의, 엄마와 아빠의 가족들과 나의 치밀한 관계들이 이어진다.
앨리스 먼로 Alice Munro / 정연희 역 / 착한 여자의 사랑 (The Love of a Good Woman) / 문학동네 / 585쪽 / 2018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