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9. 2024

박산호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나이들며 필요한 마음의 가벼운 스트레칭 방법들이 가득...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나야말로 어른이 필요한 어른인 게라고 간혹 생각하곤 했으니까. 당신에게 조언을 해줄만한 사람이 있느냐고 아내가 물었을 때, 나는 까페 여름의 형을 생각해냈다. 나와 한 살 차이이지만 이십대 초반에 그로부터 학습당한(?) 경험이 있다. 나는 그때의 형보다 지금의 형이 훨씬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그를 어른이라고 생각함으로써, 그를 어른으로 만드는 데 한몫 하고 있다는 생각도 가끔 든다. 


  『무엇보다 “가능성의 폭을 좁히는 경험이라면 차라리 풍부해지지 않는 편이 나지 않은가?”라는 문장에는 밑줄을 백 번이라도 긋고 싶었다. 흔히 경험은 풍부하고 많을수록 좋고, 우리가 해온 경험이 우리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삶을 더 깊이 있게 해줄 거라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일 뿐이다. 세상에는 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경험이 허다하며 내가 겪은 경험을 전체로 확장할 수도, 일반화활 수도 없다... 경험이 풍부할수록 좋다는 통념이 위험한 이유는 그런 믿음을 본인 한 사람의 삶에 적용시키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 특히 자식이나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 히사이시 조는 또 다시 아주 퉁쾌한 말을 했다. 그는 돈을 주고 사서라도 고생을 하라는 어른들의 말은 거짓말이며, 자진해서 고생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누구나 하는 고생은 인간의 폭을 넓혀주지도 않으며 그렇게 하고 싶으면 지성을 연마해서 삶의 진정한 아수라장을 빠져나가라고 따끔하게 조언한다.』 (pp.17~19)

  - 책에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전복시키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모든 경험은, 그 경험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결과적으로는 나를 풍부하게 만들게 될 것이므로, 좋은 것이라고 여겼다. ‘가능성의 폭을 좁히는 경험’도 가능하다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경험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우리들의 가능한 생각의 품을 넓히는데 일조한다. 


  『어느 날 어린 아들과 아빠가 길을 가는데 꽤 큰 돌 하나가 길 한가운데 있었다. 아빠가 장난으로 아이에게 저 돌을 들어서 치워보라고 했다. 아이는 아빠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으려고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힘을 쓰지만 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아이가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못하겠다고 하자 아빠가 물었다.

  “네가 가진 힘을 다 쓴 거 맞아?”

  억울해진 아이가 그렇다고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아빠가 말했다.

  “넌 아빠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잖아.”』 (pp.34~35)

  - 책에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작가가 날것으로 느끼는 감정들이 고스란히 등장하고는 한다. 아이를 낳고 키워보지 않아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간혹 조카를 통해서 경험해볼 수 있는 것들일 뿐이다. 얼마 전 조카의 학생회장 선거 출마 소식을 들었고, 어제 조카를 만났을 때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를 하라고 말해주었다. 큰아버지가 해줄 도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르고 조카도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성실’하다는 말에 울컥하지 않는다. ‘성실’이 재능이란 말에 전적으로 동의는 못하지만 성실한 생활 덕분에 비뚤어지지 않았으니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어쩌면 노력은 우리를 배신할지 몰라도 성실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노력이란 순간의 열정과도 비슷하지만 성실이란 그야말로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태도니까...” (pp.57~58)

  - 그림 그리던 후배에게 매일매일 몇 시간이라도 이젤을 앞에 두고 앉아 있다 보면 무언가 만들어지지 않겠느냐고 조언한 적이 있다. 후배는 내게 그렇게 몇 시간씩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재능이라고 말해서 나를 무안하게 했다. 나는 지금까지 그 대화를 잊지 못하고 있고, 필요할 때마다 나의 부족한 재능을 떠올리고는 한다. 떠올릴 때마다 나의 태도가 조금씩 교정되었다고 생각한다. 


  『... 나이 먹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젊었을 때 뭘 몰라서 고수하던 편견과 고정관념을 많이 버리고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사회학자인 우에노 지즈코가 이런 말을 했다. “젊었을 때가 유연하다는 것은 거짓말. 젊을수록 머리는 굳어 있고, 억측이 심하고 고정관념에 지배당하고 있다. 그것이 점차 풀어져 유연하게 되는 것은 나이를 먹은 덕분이다.”』 (p.202)

  -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유연해질 리는 없지만, 그런대로 위안이 된다. 옛 선조들의 현명한 노인 운운하는 나이라고 해봐야 고작 사십대이다. 그 사십대도 이미 지나가 버렸다. 현명하지는 못하여도 나름의 노력으로 유연해질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게 되었다. 책에는 그렇게 나이 들어가면서 유연해질 수 있는 마음의 가벼운 스트레칭 방법들이 들어 있다. 눈여겨 볼만 하다. 



박산호 /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 북라이프 / 235쪽 / 2018 (2018)   

매거진의 이전글 구달 《아무튼, 양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