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절충하는 동시에 시대를 깨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소설의 마지막 챕터 ‘에필로그: 사진사’에는 아래와 같은 대목이 나온다. 십대 초반의 소녀 델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며 성장하여 이제 성인이 되었다. 델은 자신이 살아온 그 작은 고장의 구석구석을 거쳤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쓸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내내 소설을 쓴 다음에 작중의 델로 하여금 소설을 쓸 작정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니까 소설은 현실의 성장이 있은 다음에 시작된 과거 그리고 미래의 산물이다.
“나 스스로도 이 사실이 주는 암시를 다 이해한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 사실은 다양하고 강렬한 암시를 담고 있는 듯 느껴졌다... 모든 사진들. 어떤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나는 막연히 알 것 같았지만 설명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모든 일이 나중에는 더 분명해지기를 바랐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실이 아니었음에도 내게는 진실로 느껴졌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그런 사람들과 그런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 아니라 발견해낸 것 같았고, 그 타운도 내 가까이에, 내가 날마다 통과하는 타운 뒤에 있는 것 같았다.” (pp.443~444)
앨리스 먼로의 소설을 아주 좋아하지만 내 좋아함의 포인트가 어딘지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위의 문장에서 작으나마 단서를 발견했다. 작가 자신도 정확히 설명하기 힘든 어떤 다양하고 강렬한 암시의 풍요로움은 소설을 모두 읽고 나서도 한참동안 여운을 만들었고, 진실이 아니어도 진실로 느껴지고마는 사실 등의 총합이 바로 앨리스 먼로의 소설이었다. 설명할 수 있음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음에 기대고 마는 일상에서 발견되는 작가의 진심을 나는 좋아하고 있었다.
“... 그가 다른 풍경 - 차, 광고판, 공장 건물, 도로, 잠긴 대문, 높은 철조망, 철도 선로, 석탄재가 뒹구는 가파른 제방, 양철로 만든 헛간, 갈색 구정물이 고인 배수로, 깡통, 짜부라진 판지상자, 막혀서 아예 혹은 거의 흘러가지 않는 온갖 종류의 폐기물 - 에 대해 말하자,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기억해내는 그의 일정한 목소리에 의해 그 모든 것이 창조되어 우리 주변에서 자라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 느낌을 알 것 같았다. 그곳에서 길을 잃는다는 게 어떤 건지, 뭔가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어떤 건지, 계속 찾아다녀야 한다는 게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p.52)
끊임없이 서술되는 자잘한 풍경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땅 속의 실뿌리 같은 것이기도 하였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단단한 몸통이고 울창한 가지와 이파리 그리고 간혹 열매들이지만, 작가는 그것들을 보여주기 위하여 보여주지 않아도 좋을 땅 속의 미로 같은 형태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독자는 가끔 삐죽이 모습을 드러낸 뿌리에 발이 걸려 휘청거릴 때야 비로소 그 존재를 느낀다.
“... 내게는 봄이 아니라 겨울이 사랑을 위한 시간 같았다. 겨울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크게 축소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그 작고 닫힌 공간에서 환상적인 희망이 피어난다. 하지만 봄은 장소에 대한 평범한 지리적 사실을 드러낼 뿐이었다. 길게 뻗은 갈색 길, 금이 간 발밑의 오래된 보도, 겨울 눈보라에 부러져 마당에서 치워야 하는 나뭇가지. 봄은 정확히 사물 간의 거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p.255)
소설은 소녀의 성장기이면서 소설이 품고 있는 많은 여성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델에게 친절하지 않으며 당시 여성에게 씌어진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으나 그 안에서 자유를 갈망하였을 델의 엄마는 또다른 주인공일 수도 있다. 델과 한 집에 살았던 펀 도허티나 친구인 나오미, 엘스퍼스 대고모와 그레이스 대고모도 그 시대의 여성상의 여러 측면을 담당하고 있다.
“평범하게 산다는 게 뭘까? 그건 유제품 공장 사무실에 취직한 여자들의 삶을 의미했다. 결혼과 출산 때의 선물 파티, 리넨과 냄비와 팬과 은제 포크, 그런 복잡한 여성적인 질서를 의미했다. 그 질서를 전복시키려면 케이라 댄스홀의 삶이 되었다. 밤중에 컴컴한 길에서 술에 취한 채 드라이브를 즐기고, 남자들의 노담을 듣고, 남자들을 참아주면서도 경계심을 잃지 않은 채 그들과 싸워 그들을 붙잡는다 - 그런 삶의 한쪽 면이 존재하려면 반드시 반대쪽이 존재해야 했고, 그 양쪽 면을 모두 취하고 익숙해짐으로써 여자는 결혼에 이르는 길에 올라서는 것이다. 다른 길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절대. 샬럿 브론테가 되는 편이 더 나았다.” (p.349)
《소녀와 여자들의 삶》은 작가의 유일한 장편 소설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일종의 연작 소설집으로 보아도 무방하게 느껴진다. 여덟 개의 챕터는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은 여덟 편의 단편으로 읽힐 수도 있다. 장편 소설로 읽든 아니면 연작인 단편 소설로 읽든, 시대와 절충하는 많은 여성들의 삶을 밀어내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 시대를 깨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한 소녀의 삶을 읽어내기에 충분하다, 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앨리스 먼로 Alice Munro / 정연희 역 / 소녀와 여자들의 삶 (Lives of Girls and Woman) / 문학동네 / 471쪽 / 2018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