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철에서 아비바로, 그리고 제인 영에서 루비로 이어지는 여인 삼대...
『... 나는 딱히 남편 생각은 없다. 남편들은 손이 많이 간다. 그렇다고 여생을 홀로 보낼 생각도 없다. 내 말은, 강좌를 같이 들을 정도의 사람만 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온라인 미팅은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로즈 왈, 아니란다. “아니 그게 맞는다고 쳐도, 레이철, 넌 앞으로 살 날 중에 지금이 제일 젊잖아.”
그래서 나는 로즈한테 뭔가 조언할 게 없냐고 물었고, 그녀는 현재 모습보다 더 어려 보이는 사진은 올리지 말라고 충고했다. 인터넷에서는 다들 거짓말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에서 가장 나쁜 짓이 거짓말이란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로즈, 그게 실제 삶하고 도대체 뭐가 다른데?”』 (pp.11~12)
작가의 다른 책 《섬에 있는 서점》을 읽었을 때 닉 혼비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번에 《비바, 제인》을 읽으면서 또 닉 혼비를 떠올렸다. 가령 위와 같은 구절에서였다. 소설을 진행시키는 작가의 청산유수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가볍게 정곡을 콕 찌른다. 웃지 않을 수 없다. 뻔하게 들여다보이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이 작가의 손을 거치면 아하, 탄식 가능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남편의 정부한테서 닭고기 수프를 얻어먹고 싶은지 아닌지 헷갈렸지만, 갑자기 온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녹초가 됐다. 최의 아파트틑 작지만 깨끗하고 아늑했다. 언제부터 여기 살았을까. 나는 내 남편과 데이트하러 나갈 준비를 하는 최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를 위해 립스틱을 바른다. 잔뜩 힘주어 치장한다. 젊은 그녀, 아비바가 얼른 자라서 마이크가 나와 이혼하길 기다리는 그녀를 상상했다. 우리 모두가 가여웠다.” (p.91)
소설은 길지 않은 여인 3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을 그저 하나의 선상에 두지 않았다. 소설 속의 여인 3대는 레이철에서 아비바로, 그리고 제인 영에서 루비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레이철 - 아비바 또는 제인 영 - 루비로 연결되는 여인 3대라고 할 수 있다. 그 여인들이 거치는 남자들은 겉은 번드르르 할지 모르나 속은 퀭할 뿐이다. 그 남자들은 이야기의 전면으로 나설 자격이 없다, 그러니까 이 작가에게는 그렇다.
“우리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쉰두 해 동안 함께 사셨다. 할머니는 불행한 결혼이란 다시 좋아질 시간이 충분히 없었던 결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쉴리가 플로리스트라고 빗대어 말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나의 ‘초보자용’ 난초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죽어버린 듯하여 다시는 꽃을 피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난을 라디에이터 위에 올려놓고 그대로 여행을 가버리는 바람에 이파리가 하나도 남김없이 죄 떨어져버렸다. 나는 일 년 동안 빈 화분에 물을 주었고, 처음에 뿌리가, 그 다음에 잎새가 하나둘 살아나더니, 이태쯤 지나서 짜잔! 다시 꽃을 피웠다. 그것이 결혼과 난에 대해 내가 아는 바이다. 둘다 의외로 죽이기 힘들다. 그것이 내가 슈퍼마켓 출신의 우리 난을 사랑하는 이유이고, 유부남을 사랑하지 않는 이유이다.” (p.133)
스포일러가 잔뜩 끼어들 수 있지만 사건의 발단은 어느 하원의원 선거 사무실의 인턴으로 들어가는 아비바로부터 비롯된다. 아비바의 부모는 이 하원의원과 옆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고, 아비바의 엄마 레이철은 아비바와 이 하원의원을 연결시키는 데 역할을 했다. 이제 아비바와 하원의원의 관계는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아비바는 그렇게 되었고, 사건은 세상에 드러났으며, 아비바는 그곳을 떠나 이름을 바꾼 채 살기로 작정했다.
“엠베스는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따랐다. 끊어야 했지만, 커피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녀가 보기에, 살아가는 것은 나쁜 습관을 들이는 과정이다. 죽어가는 것은 그것들을 없애는 과정이다. 죽음은 습관이 없는 땅이었다. 커피도 없고.” (p.231)
아비바의 다른 이름은 제인 영이고, 제인 영에게는 루비라는 딸이 있다. 루비는 영리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제인 영이 운영하는 결혼 기획사의 업무 일부를 맡아서 처리할 정도이다. 하지만 제인 영이 작은 도시의 시장 선거에 나서기로 하고, 그 과정에서 루비는 하원의원의 존재 그러니까 아비바의 과거에 대해 눈치를 챈다. 십대 중반의 소녀가 된 루비는 이제 하원의원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루비를 맞이하는 것은 하원의원의 아내인 엠베스이고, 처음 보는 그녀의 할머니 레이철이다.
“만약 당신 인생이 <끝없는 게임> 시리즈 중 하나라면 - 『인턴!』이라고 해두자 - 지금쯤 <끝>이라고 떴을 것이다. 이야기가 나쁜 결말에 도달하고도 남을 만큼, 형편없는 선택을 이미 잔뜩 해버렸다. 그것을 만회하는 유일한 방법은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인데, 당신의 경우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당신은 인간이지 <끝없는 게임>의 등장인물이 아니니까... 이 시리즈의 문제점은, 몇 번쯤 나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엄청나게 지루하다는 점이다. 항상 착하게 살고 언제나 올바른 선택을 하면, 이야기가 무척 짧아진다.“ (pp.359~360)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여 나아가는 여인 3대를 그려나간다는 점에서 소설은 여성주의적이다. 여인 3대 이외에도 하원의원의 아내인 엠베스나 시장선거 상대 후보의 아내인 프래니와 같은 여인들 모두 크게 작게 남성들로부터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소설은 이 모든 피해를 갑옷처럼 두른 제인 영이 시장 후보로 출마하며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만들고 있다. 그것도 자그마치 경쾌하게...
개브리얼 제빈 Gabrielle Zevin / 엄일녀 역 / 비바, 제인 (Young Jane Young) / 루페 / 397쪽 / 2018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