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웨이롄 《책물고기》

현재의 중국의 현대의 작가가 꾸려나가는 이야기의 세계...

by 우주에부는바람


「소금이 자라는 소리를 듣다」

“나는 그녀의 말이 내 시보다 훨씬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한동안 깊은 감동에 휩싸여 거의 어린 소녀를 보는 듯한 연민으로 그녀를 대했다. 우리는 한때 그렇게 서로 온기를 나누며 살았다. 하지만 끝내 그 미증유의 황량함에 패해 우리도 그 황량함의 일부가 되었고 그러고서 서로 적이 되었다.” (p.34) 나는 아내인 샤링과 함께 소금 호수와 소금 광산이 있는 곳에 살고 있다. 그곳에 예전의 친구인 샤오딩이 자신의 여자 진징과 함께 찾아온다. 나는 두 사람을 데리고 소금 호수를 찾는다. 소금 호수에서 배를 몰고 있는 샤오마는 젊은 시절 샤링을 함께 쫓아다닌 사이이고, 결국 샤링은 나의 아내가 되었다. 흘러간 시간들이 소금 호수로 모여든 듯, 이들 모두의 시간이 짜게 느껴진다.


「책물고기」

응성충 應聲蟲 이라는 말이 있다. ‘남의 의견에 따라 부하뇌동하는 사람을 흔히 응성충이라고 경멸해 부른다, 라는 사용례에 따라 소설 속의 나도 모르지 않는 이름이다. 그런데 내 몸에 바로 이 응성충이 기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응성충의 다른 이름이 바로 서어, 그러니까 책물고기이다. 이 벌레가 보통 책 속에 서식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응성충이 내 속에 있는 동안 내가 하는 말에는 메아리가 생긴다. 내가 하는 말을 누군가가 곧바로 따라하는 것 같은 증상을 띤다. 그리고 이 응성충을 사라지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본초강목》에 나오는 약재 이름을 큰 소리로 읽어나가면 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메아리가 사라지는 약재 이름을 깨닫게 될 터인데, 그것은 ’뇌환‘이라는 약재였고, 그것을 우려먹고 난 다음 내 몸 속의 응성충은 사라진다.


「아버지의 복수」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러, 드디어 나를 상처 입힌 그 광저우 놈들보다 내가 더 광저우를 사랑한다는 걸 증명했다! 오늘 나는 드디어 복수를 했다!” (p.135) 북방에서 광저우로 흘러 들어와 광저우 여자와 결혼을 했고, 광저우의 곳곳을 발품하며 세일즈 맨을 했고, 그 후에는 택시 기사가 되어 또 광저우의 곳곳을 샅샅이 훑고 지나다녔던 나의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광저우의 일원이 된다. 지방에서 올라와 진지하게 서울내기가 되고자 했던 우리의 선조 누군가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 하나쯤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걸림돌」

“언어는 유동적인 것이기는 하지. 하지만 그것은 언어의 가장 표면적인 특징일 뿐이야. 네가 정말로 언어를 이해하게 되면 언어에도 바닥이 있고 거기에 역사의 기억이 침전되어 있음을 알게 될 거야. 그것이 바로 언어의 초안정적인 면이고 나는 거기에 내 영혼을 맡겼지.” (p.156) 기차에서 만난 외국인 할머니의 조상 중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살던 유대인이 있었다. 학대를 피하여 달아난 할머니의 엄마와는 달리 할머니의 아버지는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할머니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할머니는 본 적이 없다.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또한 내게는 보지 못한 먼 사람이다. 그들은 홍콩에 넘어가기를 시도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고, 실패했다. 떠나려는 자라는 모호한 부분에서 공유되는 이 외국인 할머니와 나의 기억이 있고, 이제 할머니는 걸림돌 그러니까, 학대당한 유대인에 대한 기록물을 가지고 오스트리아로 가는 길이다.


「베이징에서의 하룻밤」

“... 기억이 추위에 얼어붙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재와의 관계도 끊어지고 그 완전성과, 심지어 예술성까지 보존된다면 그것은 삶 그 자체에 대한 초월일 것이다...” (p.202) 대학에 다닐 때 처음 만나 사랑을 느낀 ‘루제’와 나는 마지막으로 만나고 난 다음 십여 년이 흐른 지금, 다시 만나기로 한다. 나는 ‘루제’의 호출로 베이징에 왔고, 호텔에 짐을 푼 다음, 십여 년 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 그녀와 처음 손을 잡거나 입을 맞춘 것, 그녀와 함께 여관에서 보낸 하루를 고스란히 기억해낸다. “... 그들이 처음 사귀었을 때부터 그는 루제가 확실성이 높은 것을 갈망하는 데 반해, 자신은 늘 자기도 모르게 가능성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이 그 가능성의 세계 안에서 루제는 어떤 튼튼한 손잡이를 붙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p.250) 하지만 두 사람은 그때 제대로 된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친구로 지냈고 졸업식이 있던 날, 하룻밤을 또 함께 하였지만 그리고 헤어졌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만나는 두 사람은... 마음을 간질거리게 만드는 이야기 끝에 문학도 있다.



왕웨이롄 / 김택규 역 / 책물고기 (書魚) / 글항아리 / 287쪽 / 2018 (2015)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개브리얼 제빈 《비바, 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