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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9. 2024

임현 《목견》

'무엇이 중요한가'가 아니라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가'를 살피려는 태도.

 

   <목견>은 미메시스 출판사에서 나오는 소설가의 소설과 그림 작가의 콜라보 시리즈인 테이크아웃 중 한 권이다. 시리즈의 다른 책들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 테이크아웃이라는 시리즈의 명칭을 염두에 두자면 다른 것들도 아마 비슷하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단편 정도 분량인 소설이 있고, 그 소설 중간중간 그러니까 대략 십여 페이지 정도에는 그림이(올 컬러는 아니고, 흑과 적의 2도로 이루어진) 실려 있다. 


  “사람들이요, 다들 이상한 것 같아요. 화가 나 있다고 할까, 억울해한다고 할까,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진지해져서 시비를 겁니다. 문제는 그걸 다 나한테 한다는 거예요. 나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타입이 아닙니다. 그런 상황을 처음부터 만들지 말자는 쪽에 더 가깝거든요...” (p.9)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사람들을 향해 억울해하는 것 같다고 하지만 실상 억울한 것은 소설 속의 나, 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억울함을 피력하기에는 지극히 소극적이다. 원래 그런 사람일 수도 있고,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의 처지가 그렇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머리를 다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머리가 다친 이후에는 그림 속의 개와 고양이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이다.


  “나는 머리를 다쳤습니다. 이후로 이렇게 되어 버렸거든요. 그날은 들어온 물건이 많아 일손이 부족했는데 매니저도 일을 거들다가 턱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뒤따르던 나도 같이 구르는 바람에 거기서 머리를 다쳤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라면 내가 화를 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넘어진 것은 난데 머리가 깨진 것도 나고 그것 때문에 이렇게 개와 고양이도 구분하지 못하는 장애를 앓는 것도 모두 나인데, 매니저란 놈이 뭐라는 줄 압니까. 자기도 다쳤다는 거예요. 보라고 무릎을 내밀며 자기도 아프다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왜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나요. 머리와 무릎. 어디가 더 아프겠습니까...” (p.39)


  그러고 보니 최근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동네 사람들>의 마동석이 하는 이런 대사) 아니 이 동네 사람들은 왜 이렇게 화가 나 있대, 라는 류의 대사를 듣고는 웃었다. 그때는 웃었지만 그게 꼭 웃기기만 한 대사였을까 싶다. 어쩌면 우리는 억울함 과잉의 사회를 살고 있다. 피해자로서의 억울함을 제대로 제때 토로하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억울한데, 가해자의 억울함에 대한 피력까지 실컷 들어줘야 하는 판이다.


  “... 나는 아버지를 잃었고 장애를 얻었습니다. 내 말의 무게감은 남들의 그것과는 달라요. 울고 있는 여자에게 내 사정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나의 장애에 대해서,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연에 대해. 그게 어떤 식으로든 그 여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나 생각했던 겁니다. 나는 여자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함께 아프다. 그러나 여자는 그것을 완고하게 거절하더군요.” (p.49)


  모두의 모두를 향한 억울함으로 들들 끓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제대로 된 억울함을 구분해내는 일이 여의치 않다. 이런 사회에서는 서로를 향한 연민과 연대도 만만치 않은 일이 되고 만다. 오랜 시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가해자들의 연대는 곤고한데, 얼마 되지 않은 피해자들의 연대의 전통은 허약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소설은 희망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절망조차 희미하게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살면서 중요한 일들은 수두룩하다. 중요한 것은 말 그대로 중요한 것들이라, 돈이거나 건강이거나 안전, 환경도 될 수 있고 아무튼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다만, 중요한 것들만 자꾸 중요해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덜 중요한 것들을 소외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 그게 중요한 대화 중에는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일 수도 있고, 맥락이거나 장면 아니면 아직 따로 뭐라 이름 붙이기 어려운 잡다한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는 좀처럼 알기 어렵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가>를 살피는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왜 그토록 많은 소설들이 쓰여졌는지를 생각하면, 어쩌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pp.64~65, 작가 인터뷰 중)


  아파트 경비원과 대형 마트의 직원은 가장 쉽게 소비되는 뉴스 속의 피해자들이다. 그러니 어쩌면 소설 속에서도 그만큼이나 자주 소비되는 등장인물이 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작가는 ‘<소설>은 현시대에 어떤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 위와 같이 대답하였다. ‘무엇이 중요한가’가 아니라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가’를 살피려는 작가의 태도에 동의한다.



임현 / 김혜리 그림 / 목견 / 미메시스 / 70쪽 / 20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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