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현역인 소설가가 보내는 노년을 향한 소소한 시선...
1932년생인 현역 작가 최일남의 소설집이다. 작가의 말에서 스스로 ‘노년소설’이라고 밝히고 있듯, 소설의 인물들은 상당한 노인들이다. 오래 전 홀로 자취 중인 나를 방문한 어머니께 박완서의 《저문 날의 삽화》라는 소설집을 읽어 보시라 들려드린 경험이 있다. 아직 환갑이 되기 전의 어머니는 잠이 오지 않는다며 뒤척이시는 중이었고, 한참을 그렇게 아들이 건넨 소설을 읽었다. 《저문 날의 삽화》가 어머니께 들려드리고 싶은 책이라면 최일남의 《국화 밑에서》는 잠 못 이루는 아버지께 들려드리고 싶은 책이다.
「국화 밑에서」
책을 읽으며 모르는 단어를 발견하는 것을 즐거움이라고 여긴다. 그래도 이 정도면 힘겹다. 한자어가 무시로 튀어나오고, 별다른 설명 없는 단어들 중에도 음, 멈칫거리게 되는 단어들이 많다. 두 곳의 상갓집을 거치며 주인공이 나누는 두서없는 대화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소설이고, 오래된 단어들은 그 대화들 안에 진득하니 붙들려 있다. 여하튼 앞의 상갓집의 간격 넓은 대화들 보다는 뒤의 상갓집의 봉수 엄마에 대한 기억에 더욱 마음이 간다.
「메마른 입술 같은」
해방 공간에 뿌려진 전단지들, 그 전단지들을 정리한 책을 읽고, 그 책의 일부를 가지고 나를 찾아온 한 살 터울 먼 친척 동생과의 대화를 통해 진행되는 소설이다. 해방 당시에 국민학교 졸업반과 중학교 1학년이었던 두 사람의 기억과 당시에는 알지 못했으나 지금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도 있는 적나라한 혼란의 상황이 옛날 그대로의 문구로 표현되어 있다.
「물수제비」
“한 사람이 죽었을 뿐인데도 주부는 이렇게 엄청난 것들을 남기는가, 겁도 안 났다. 남편이 죽으면 간단하다. 옷가지와 책 무더기 등속을 치우면 그만인데, 집을 형성하는 오만 가지 물건을 온몸으로 떠메고 살던 안사람이 세상을 뜨면 그녀에게 딸린 유물이 이토록 굉장한가 싶다.” (p.85) 아내를 앞세우고 남겨진 박 교장의 일상이 그저 건조하게 그려지고 있다. 생각한 것보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살고, 떠나기 전 그것을 암시하는 병을 실컷 앓고, 그러고 난 다음의 남겨진 자는 이럴 수도 있겠다 싶다. 아내가 끓여주던 수제비를 이제 자신이 끓이는 장면은 참 심난하다.
「밤에 줍는 이야기꽃」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에 몇몇의 웃음이 푸푸 터졌다. 아이들마냥 선생님은? 재밌어하는 낌새가 역력했다. 생애 막판에 교실 맛을 본 안노인네들의 해낙낙한 오전이 아뿔사 접질린 셈이다.” (p.130) 새벽이면 외국 축구 리그를 보거나 외국에 진출한 우리 선수들이 출전하는 메이저 리그를 보는 것으로 소일하는, 낮에는 인터넷 강좌에 나가 어렵사리 더블 클릭을 배우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그는 소설의 마지막 즈음 자신이 간사 격인 모임의 친구들과 함께 짧은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아침바람 찬바람에」
아내가 일본의 오빠에게 다녀와야 하는 일이 생긴 것과 낮 시간 동안 손주를 돌보아야 하는 일정이 겹쳤다. 할애비는 뭔가 그럴싸한 거리를 만들어 손주와 자신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려고 하지만 그것도 손쉬운 일은 아니다. ‘셋셋세’, 손주가 할머니와 손뼉을 맞추며 놀았던 노래 놀이의 구절, ‘셋셋세 / 아침바람 찬바람에 / 울고 가는 저 기러기 / 우리 선생 계실 적에 / 엽서 한 장 써주세요 / 구리구리 멍텅구리 가위바위보’ 이 정겹다. 나도 아직 잊지 않고 있는 이 노래가 일본 동요라는 사실은 또 뜨악하기도 하지만...
「스노브 스노브」
“이제 와서 뚱딴지같이. 자네도 쥐 밑살 같은 의미 없는 소리 좀 작작하게. 걸핏하면 들고 나오던데 세상일에 어찌 의미만 있던가. 그랬다간 숨이 막혀 삶이 더욱 고단할 것이네. 기회 닿는 대로 써야 돼. 유서를 쓰듯 우리 이야기를 쓰라구.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 의미니깐.” (pp.222~223) 스노브라면 그러니까 스노비즘의 그 스노브일테고, 그러니까 속물쯤 되는 것인데, 소설은 스노브를 입에 달고 살던 지역에서 활동하던 정 시인에 대해 쓴 책의 원고를 앞에 두고 나누는 선후배간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말이나 타령이나」
“여러 차례 얘기했듯이 나는 우리나라 노래를 국민학교 6년 내내 하나도 배우지 못했다. 만발한 개나리, 진달래를 바라보면서 일본 동요 「하루가 기타(봄이 왔다)」를 불렀다.” (p.246)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일본어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의 한 사람으로 비망록(備忘錄)을 적듯이 썼다.’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말이 튀어나오면 패널티를 받아야 했던 그 시기에 학교를 다닌 주인공의 일화는 어쩌면 작가 자신의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소설 <스노브 스노브>에서 주인공의 후배는 소설의 말미에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 선배를 뜨악하게 만든다. “요전에 간 어떤 자리에서였는데요. 말끝에 아무개 지명 인사가 화제에 오르자 누군가가 ‘그 사람 아직 살아 있다고?’ 이러면서 깜짝 놀라지 뭡니까. 당자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면서. 누가 죽었다는 소식에 부질없이 놀라는 이는 많아도 살아 있는 것이 의외인 양, 아직 안 죽은 것이 잘못인 양 실색하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제가 다 황당합디다.” (p.224) 어쩌면 팔십 세를 훌쩍 넘긴 현역 작가인 작가 자신이 실제로 듣고 뜨악해져버린 삽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여전히 쓰고 책을 내고 있는데 말이다.
최일남 / 국화 밑에서 / 문학과지성사 / 271쪽 / 2017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