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는 구약성서의 한 편이다. 모두 42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욥이라는 인물을 통해 욥기가 주장하는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고통은 인간이 창조자를 기억하고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끔 만든다 (1장 21절). 2. 욥처럼 훌륭한 자조차 조물주의 훈육이 필요없을만큼의 겸손을 갖추지 못한다 (23장 10절). 3. 인간이 창조자에게 변명하는 것은 자신이 신보다 더 잘 알고 더 의롭다고 믿는 교만에서 시작된다 (40장 8절). 위키백과에서 옮겨 온 바에 따르면 그렇다.
“... 아이 참, 이 양반 답답하시네······ 여기는요, 목양면이에요, 목양면. 서울이나 인천이 아니라구요. 여기 사람들은요, 다 막걸리 마시고 경운기 몰고, 막걸리 마시고 트랙터 몬다구요. 막걸리를 안 마시고 이앙기를 몰면요, 그럼 오히려 모가 삐뚤삐뚤해진다니깐요. 그게 목양면이라고요. 뭘 알고 말해야지······.” (p.33, 최상우, 목양면 119 지역대 소방교)
소설은 목양면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을 조사하는 보이지 않는, 아마도 소설가 본인일 조사원의 질문에 응답하는 인물들에 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하나님을 포함하여 열한 명의 인물이 조사에 응하고 있으며, 욥기의 욥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최근직 장로, 의 간증 내용이 중간에 소개되어 있다. 이와 함께 작가의 말에서는 이기호 자신이 어째서 욥기 43장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 그거 알아요? 애들은요, 아빠가 없어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구요, 문제가 생긴 다음부터 아빠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구요. 그게 어떤 차이인지 잘 모르시죠? 하여간 좆같은 세상이란 뜻이에요.” (p.68, 서수민, 우리쌀전통한과 직원)
최근직 장로는 오래 전인 마흔일곱에 두 아들과 딸 그리고 아내를 사고로 잃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작정을 하고 산에 올라 나무에 줄을 걸어 놓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기도를 드렸다. 닷새째 되는 날 드디어 목을 줄에 건 순간 목소리를 들었다. 이후 최근직은 손순녀를 만나 재혼하였고, 아들 최요한을 낳았으며, 최요한은 자라서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목양면의 최요한 목사는 이번 화재 사고로 죽었다.
“... 원래 목사라는 직업이요, 어쨌든 다 우리 같은 영업직 아니겠습니까? 영업적 마인드가 있어야지 하느님도 팔고, 예수님도 팔고, 신앙심도 팔고, 복도 팔고, 하는 거죠... 자본주의적 마인드로 보자면 다 마찬가지예요. 열심히 하나님 믿고 신앙생활 하면 복 받는다, 그게 우리나라 교회에서 하는 말 아니에요? 아니, 뭐 막말로 우리 말 믿고 여기 상가 분양받으면 사장님 큰돈 버시는 거예요, 그 말하고 다른 게 뭐 있습니까? 다 같은 거죠. 제가 우리 영업 사원들한테도 늘 그렇게 말한다니까요, 전도하는 마음으로 영업해라, 고객을 네 이웃이라고 생각하며 사랑하고 접대해라. 교회에서도 늘 그렇게 말하잖아요? 다 같은 거죠......” (p.117, 조원효, 나주곰탕 주인)
최근직은 자신을 살린 것이 하나님의 목소리라고 간증하였다. 그는 이후 포도 농장을 통해 큰 재산을 일궜고, 그 재산을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았다. 그러나 뒤늦게 얻은 그의 아들은 다시 죽었다. 인과 관계를 설명할 길이 없는 고통의 연쇄라고밖에 할 수 없다. 아마도 구약성서의 욥과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번 고통 이후에 최근직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최근직이 목을 메려는 순간, 누구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것이 나의 목소리 같더냐? 무슨 소리! 나는 그렇게 한가한 이가 아니니라... 네가 그것을 알더냐? 가족을 다 잃어도 제 목숨을 스스로 끊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니라. 슬픈 것은 슬픈 것이요,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 최근직은 자기 의지로 산 사람이니라.” (pp.154~155, 하나님, 무직)
성서에 대한 문외한으로 소설 속 고통의 서사가 낯설다. 어린 시절 한동안 교회를 다녔고 성경 공부를 한 바 있지만 이제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지금 내게는 종교가 없고 아이도 없다. 그래서 비롯되는 교만이나 고통이나 후회도 가질 것이 없다. 이 어둡고 무거운 정통의 주제를 작가는 비정통의 가볍고 훤한 방식으로 써내려가고 있다. 이기호라는 작가이기에 가능한 방식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