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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0. 2024

이유 《커트》

끝내 일어나고야 마는 불가지의 일들...

  「낯선 아내」

  18페이지에 이런 대화 부분이 있다. “당신은 나를 몰라.” 아마 내가 말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걱정 마, 당신도 나를 모르니까.” 아마 결혼 전의 아내인 그녀가 답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여기서 만약 아내인 그녀가 “걱정 마, 당신도 나를 모르니까.“ 라고 말하는 대신 ”걱정 마, 나도 당신을 모르니까.”라고 답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아마 그랬다면 소설 속의 그녀 혹은 아내는 전혀 다른 성격이 되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당신은 나를 몰라.” 라는 말에 “당신도 나를 몰라.” 라고 대답하는 것과 “나도 당신을 몰라.” 라고 대답하는 것 사이를 한차 생각했다. 여튼 소설은 흥미롭다. 인식 장애를 일으킨 형사인 나에게 아내는 어떻게 인식될 것이가, 하는 어려운 문제를 담아내고 있다.


  「지구에서 가장 추운 도시」

  이유의 소설들은 심리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에 위치해 있다. 현실이라고도 비현실이라고도 할 수 없는 어느 지점에 인물들이 존재한다. 등장인물의 심리가 그러한 지점에 서 있는 것은 등장인물이 실제로 위치하는 공간의 모호함에서 때때로 기인하기도 한다. 이번 소설에서의 야츠, 가 그런 곳이다.

  「깃털」

  “류가 쓰러진 골목은 시간이 지나며 잊혀갔다. 스프레이 흔적도 사라졌다. 대기가 바뀌고 햇볕이 들어오는 각도가 달라졌다. 골목 감자탕집 들통에는 돼지뼈 국물이 끓어올랐다. 감자탕집 앞에는 전봇대가 있고 뒤쪽에 미용실과 부동산이 있었다. 세입자들이 부지런히 영업을 하고 돈을 버는 안마당에서 외발 비둘기는 사람들의 토사물을 쪼아 먹다 도둑고양이에게 머리가 깨끗하게 잘렸다. 희고 눈부신 깃털이 뿜어졌다...” (pp.85~86) 소설에서 ‘걔’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걔’는 인칭대명사는 사용되지 않거나 사용되더라도 대화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 소설의 ‘걔’는 그렇지 않다. 낯선 시도이다.

  「빨간 눈」

  나는 나를 주문한다. 너는 나에게 와서 내가 된다. 나는 처음에는 너였던 나를 알지만, 너도 나를 정확히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디스토피아적인 근미래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저 불안정한 현대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꿈꾸지 않겠습니다」

  꿈을 꾸면 곧바로 현실이 되는 세상이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꿈을 꾸어야 하고, 그것도 제게 이익이 되는 꿈을 꾸어야 한다. 작은 이익이 생기는 꿈도 있고, 큰 이익이 생기는 꿈도 있다. 말이 되는 꿈도 있고, 말이 되지 않는 꿈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위해서는 꿈을 꾸어야만 한다.

  「가방의 목적」

  ‘모든 가방에는 목적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뻔선생은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의 가방을 뒤지는 버릇이 있다. 그냥 살짝 뒤지고 마는 것도 아니다. 그는 가방에 들어 있는 모든 물품을 바닥에 촤르륵 풀어 놓고는 그것들을 살핀다. 그런 행위에는 어떤 결과가 따름이다. 뻔선생은 그 결과에 나름의 책임을 진다. 그러한 버릇의 연원도 등장한다, 불명확하지만...

  「밤은 후드를 입는다」

  우체국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우편물을 아예 보내지 않는 것으로 감당했다. 아버지는 이제 우체국에서의 일을 그만두었고 집에 있다. 그런 집에 자꾸 후드를 입은 누군가가 찾아든다. 나는 후드를 쫓지만 번번이 놓치고 만다.


  「커트」

  “... 미용실에 풀어놓으면 아이는 커트 가위를 들고 설쳐댄다. 가운이나 수건을 조각조각 잘라놓는다. 언젠가는 코드선을 싹둑싹둑 잘랐다. 제 손가락을 한 마디씩 잘라 바닥에 핏물 오선을 그려놓은 적도 있다. 원래 통각이 없는 건지 어쩌다 상실된 건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미용실을 다 뒤져 네 마디를 찾아냈지만 새끼소가락 한 마디는 끝내 찾지 못했다. 방을 나오지 못하게 한 뒤로는 시시때때로 쪽문을 흔들어댔다.” (p.207) 나는 나중에 그 새끼손가락 한 마디를 찾아내는데, 바로 ‘내 목구멍에서 튀어나왔다.’ <머리치장>이라는 이름의 미장실에서 벌어진 그리고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유 / 커트 / 문학과지성사 / 251쪽 / 20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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