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레 요코 《세 평의 행복, 연꽃 빌라》

자신에게 주어진 무한정의 시간을 두고 쩔쩔매는 교코를 응원함...

by 우주에부는바람


미니멀 라이프가 여전히 유행 중인지 철지난 트렌드로 흘러가고 말았는지 잘 모르겠다. 웰빙, 슬로우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를 지나 소확행이 차례대로 회자되었다. 자본주의의 치열하기만 한 삶과 그것을 추동하는 무한정의 욕망으로부터 조금 비껴나 있도록 하자는 취지를 가진 태도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러한 트렌드조차 자양분으로 삼아버리는 괴물이 된지 오래이고, 우리는 여전히 또다른 삶의 태도를 꿈꾼다.


“세상에 연금 생활자들이 있다면 교코는 저금 생활자이다. 한 달에 생활비 10만 엔을 저금에서 꺼내 쓸 것이다. 예산만 잘 지킨다면 어찌어찌 여든까지는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이상 살게 된다면 돈이 바닥나겠지. 교코는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p.31)


소설의 주인공인 교코 또한 어쩌면 이러한 대안적인 삶(?)을 꿈꾸는 인물일지 모른다. 물론 거기에 어떤 커다란 이유나 신념이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나고 자라 알만한 광고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한 그녀는 마흔 다섯인 지금에서야 그 지쳤음을 인정할 뿐인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그녀의 새로운 생활에는 그때까지 함께 산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불편함,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은 그것으로부터의 도피라는 차원도 포함하고 있다.


“... 타인의 사소한 결점을 찾아냄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사람이다. 싫다 싫다 생각하면 할수록 몸이 굳어졌다. 한 귀로 듣고 흘리면 되겠지 싶어 그렇게 하려고 노력도 해 봤지만, 결국 저도 모르게 화가 나 반론을 하면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 된다. 한 지붕 아래에서 어머니와 단절된 생활을 했던 본가 시절에 비하면 아무리 방 안으로 웃풍이 들어오고 눈이 내리나 한들 마음 편한 이쪽 생활이 훨씬 좋다.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만 더 나은 방이면 좋겠지만.” (pp.239~240)


교코가 그렇게 지금까지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새롭게 둥지를 튼 곳이 바로 연꽃 빌라이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번화가와 멀지 않지만 월세 3만엔(그러니까 30만원 정도)의 아주 오래된 빌라, 세 평짜리 방과 반 평 남짓한 부엌 그리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세면실과 화장실로 이루어진 그곳은 이전의 교코가 누리던 생활 공간과는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교코는 씩씩하게 그곳에 스며든다.


“연꽃 빌라는 중개소에서 삼 분 정도 거리로, 주택가 안쪽 구석에 있었다. 넓은 부지에 지어진 오래된 대저택 두 채 사이에 끼어 있고 2층은 울창한 나무들에 가려, 정말이지 그 존재가 완전히 잊힌 듯한 정취를 풍겼다. 연갈색을 띤 외벽 여기저기에는 검은색 스프레이로 뭔지 알 수 없는 낙서가 돼 있었다...” (p.22)


그곳에 살면서 교코는 옆방의 구마가이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곤소곤 나누고, 사이토 군의 가게에서 그 주인의 폭력에 분개하고, 엄마의 엄청난 구박을 견뎌내고, 부동산 주인과 그 딸의 살가운 태도에 감명을 받고, 결혼한 친구인 마유 짱과 긴 통화를 하고, 조카의 방문에 기뻐하고,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져버린 시간들을 어찌해야 할 것인지를 계속해서 고민하는 중이다.


“... 너는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할 수 없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으니까 시간이 나서 뭔가를 생각해 보고 싶다면 앞으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건 어때? 생각하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거기서 또 생각을 해야 돼 하고 생각하면 정신적으로 부담이 되잖아.” (p.141)


《세 평의 행복, 연꽃 빌라》는, 영화 <카모메 식당>의 원작의 작가라는 데에 설득당하여 무레 요코의 책을 여러 권 샀고, 그 중 첫 번째로 읽은 소설이다. 밀도가 높은 문장에 용량이 꽉 찬 메시지 같은 것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은데, 그게 또 꿰어 맞춰 보자면 소설 속에서 교코가 택한 미니멀 라이프와 맞닿는 것 아닌가, 라고 억지를 부려 볼 수도 있겠다. 여튼 교코의 이 과감한 방향 전환을 응원하는 마음이다.



무레 요코 / 김영주 역 / 세 평의 행복, 연꽃 빌라 (れんげ莊) / 레드박스 / 279쪽 / 20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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