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구석들과 개인의 내면들에 거듭되는 충돌들을 총화하는...
“... 카운터 뒤에는 피부색이 검은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눈이 크고 검었다. 아직 잠이 덜 깬 그에게 그 여자는 마치 인도에서 온 듯 그곳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셜리폴스의 편의점 점원은 항상 백인이었고 거의 항상 뚱뚱해다. 밥이 예상한 것은 그런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곳 풍경은 누구라도 점원이 될 수 있는 뉴욕의 작은 스냅사진을 끼워넣은 것 같았다...” (p.124)
작가의 처녀작인 《에이미와 이저벨》의 배경이 되는 메인 주의 셜리폴스라는 공간이 다시 등장한다. 공간의 재등장을 의식한 것인지 작가는 책의 앞 부분에 프롤로그를 통해 한 모녀를 (어쩌면 에이미와 이저벨일 수 있는) 등장시킨다. ‘버지스 형제’는 그들 모녀의 대화를 통해 희미하게 모습을 나타내고, 이어서 짐 그리고 쌍둥이 남매인 밥과 수잔이라는 구체적인 형상으로 발전한다.
“수전이 개를 밖으로 보내려고 일어섰다. 열린 입구에 서서 문손잡이를 잡은 채로, 그녀는 아직 멀지만 서서히 다가오는 봄의 촉촉한 기운을 희미하게 느꼈다. 그리고 잠시, 그렇게 문을 열어두면 그들이 계속 자유로울 것 같다는 느닷없고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문을 꼭 닫은 뒤, 그녀는 부엌으로 돌아갔다...” (p.366)
소설이 진행되는 시점이 되면 이제 셜리폴스에 남아 있는 것은 수잔 뿐이다. 짐과 밥은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지 오래이고, 셜리폴스에 자주 들르지도 않는다. 그들의 아버지는 아주 오래전 죽었고, 엄마도 죽었다. 수잔의 열아홉 살짜리 아들 잭이 라마단 기간에 모스크에 돼지 머리를 집어 던지고, 그것이 증오 범죄의 일환으로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다면 짐과 밥이 셜리폴스에 이처럼 자주 오게 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 생각이 분명해졌다. 형의 말은 사실이었고 또 중요했다. 짐이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밥을 밥의 삶이 아닌 다른 삶에 감금한 것이다...” (p.410)
뻔한 범죄자를 변호하면서 유명해진 짐은 유명 로펌의 잘 나가는 변호사이고, 그런 그는 조카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항소심 변호를 맡는 동생 밥을 일단 셜리폴스로 보낸다. 밥의 쌍둥이 누이인 수잔은 자신을 떠나 스웨덴으로 가버린 전남편 스티븐을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억하심정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들 잭도 평범하지는 않아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지만 이런 사건을 일으키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 그 책은 우익의 꿈 같은 책이야. 모르겠어? 이제 신문은 안 봐? 두 번째로, 난 잭의 공판이 열린 그 법정에서 소위 미쳤다는 그 사람들을 봤어. 그런데 그거 알아, 팸? 그 사람들은 미치지 않았어. 그들은 지쳤어. 그들이 지친 건 어디 북클럽에서 그들의 문화 중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부분만 가려내서 읽고 그것 때문에 그들을 싫어하는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이기도 해. 트윈타워가 무너진 뒤로 무지하고 나약한 우리 미국인들이 가슴 밑바닥에서 정말로 하고 싶어하는 게 바로 그거야. 그 사람들을 싫어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 것.” (pp.436~437)
하지만 사건은 벌어졌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세 사람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보다 본격적으로 서로를 드러내게 된다. 짐은 어느 날 동생인 밥에게 사실은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사건의 범인이 자신이라고 실토한다. 짐이 여덟 살, 밥이 네 살 때의 일이었다. 밥의 전처 팸과 자신의 만남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밥은 혼란스럽고 짐은 냉혹하다. 수잔은 자신을 구박하였던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고, 자신과 잭의 관계를 되짚는다.
“... 짐과 나는 말이지. 우리는 서로를 잘 알아. 줄곧 알고 있었어. 짐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날 고격해서 바보로 만들지. 짐은 관심을 갈구해. 관심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 훤히 보여서 역겨울 정도야. 불쌍한 헬렌이 그걸 견딜 수 있는 건 그 사실을 알아차릴 만큼 똑똑하지 않기 때문이야. 짐은 관심을 요구하면서도 일단 바라던 것을 얻고 나면 사람들이 더 이상 그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 관심을 바라는 것과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건 아무 상관이 없거든. 대부분의 사람이 바라는 건 관계지만...” (p.514)
소설에는 세 남매 뿐만 아니라 그들의 현재와 과거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미국 사회에 자리를 잡은 새로운 난민들과 그들의 문화 그리고 그들과 그들의 문화를 향한 미국 사회의 인식이 등장한다. 미국인들 내부에서도 엄연하게 존재하는 경제적 신분의 층위 또한 피해가지 않는다. 이 모든 충돌들이 버지스 형제 개개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자화상들과 또한 부딪치는 형국의 소설이다. 복잡하고도 뚜렷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Elizabeth Strout / 정연희 역 / 버지스 형제 (The Burgess Boys) / 문학동네 / 574쪽 / 2017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