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고독이나 챙겨갈 수도 있을 나중의 여행 따위...
오래된 아이돌 그룹의 맴버들이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중이었다. 아내는 십오 년 근속이 되는 몇 년 후 이 주 정도의 유급 휴가를 따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저 길을 형과 함께 걸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도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고양이 용이를 바라보았다. 여행의 가능성 여부와 고양이 용이의 죽음이 맞물리자 더 이상 이야기를 진척시키지 못했다.
“... 솔직히 고백한다면 나는 확고하기보다는 오히려 흐느적거리는 인간이며, 항구적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인간이며, 정확하기보다는 부정확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여행이지 ’다른 사람의 여행‘이 아니다 나에게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강요할 권리도 자격도 없다. 게다가 사물의 인상이라는 것은 언제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완전히 달라져 버릴 수도 있다...” (p.60)
그리고 오늘 카페 크문의 젊은 사장님이 내게 올여름 여행에 대해 물어왔다. 지금으로서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여행은 가능하지 않다, 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일언지하에 대답하고 났더니 마음이 조금 쓸쓸해졌고, 아마 날씨 탓도 있겠지, 대신 《하루키의 여행법》을 마저 읽었다. 제목만 놓고 보자면 하루키만이 가지고 있는 여행 비법 같은 것이 있으려나, 넘겨짚게 되는데 딱히 그렇지는 않다.
『고향 마을에서 도시로 나온 한 인디오 청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청년은 고향 마을에 살고 있던 때는 한 번도 굶은 적이 없었다. 가난한 마을이기는 했지만 굶주림이란 걸 그는 모르고 지냈다. 왜냐하면 그 마을에서 혹시 그가 끼니를 굶어야 할 일이 생긴다면, 누군가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하면 상대방은 그 목소리를 듣고 “아이구, 넌 배가 고픈 것 같구나.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으렴” 하고 말하면서 밥을 먹여주는 것이었다. 그 “안녕하세요?” 하는 말소리만 듣고도 상대방이 밥을 먹었는지 굶었는지, 건강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까지 금세 다 알아차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이심전심의 분위기에서 그는 자라났던 것이다.
그래서 도시에 나온 지 아직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는 그 인디오 청년은 배가 고프면 이 사람 저 사람을 향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며 돌아다녔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밥을 먹여 주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그래, 잘 있었지?” 하고 인사를 받아 줄 뿐이었다. 그는 배가 고파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안녕하세요?” 하면서 돌아다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어라”라고 말해 주지 않았다. 그제야 그는 겨우 여기서는 아무도 말의 울림이란 걸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pp.101~102)
하루키가 다녀온 곳들은 뉴욕 근처인 듯한 (하루키가 글을 쓴 1990년대까지는) 작가들이 많이 살았다는 이스트햄프턴, 일본 세토나이카이에 있는 무인도 까마귀 섬, 멕시코의 도시와 인디오 지역 등 여러 곳, 우동으로 유명한 일본의 가가와 현의 여러 우동집들, 일본에서는 노모한 전쟁 그리고 몽고에서는 하루하 강 전쟁이라고 불리우는 전쟁이 있던 몽고의 노모한 지역, ‘루트 66’이 아닌 북부 순회 코스로 감행한 아메리카 횡단 여행의 여러 도시, 대지진 후 니시노미야에서 고베까지의 도보 여행길에 들른 도시 들이다.
“... 이 식당은 거의 논바닥 한가운데에 있다. 간판도 걸려 있지 않다. 입구에 ‘나카무라 우동’이라고 쓰여 있지만 그것도 일부러(라고 생각되는데)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안쪽까지 빙 돌아 들어가지 않으면 우동집임을 전혀 알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주인이 상당히 비뚤어진 마음씨를 가진 우동집이다... 가게는 무척 작았다. 우동집이라기보다는 건설 현장의 자재 창고처럼 보인다. 대충 주워다 놓은 것 같은 작은 탁자 몇 개가 늘어서 있을 뿐이다... 내가 식당에 갔을 때는 나카무라 씨도 그의 아들도 없었다. 끓는 물이 들어 있는 커다란 가마솥 앞에서 한 아저씨가 혼자서 우동을 열심히 삶고 있을 뿐이었다... 이 식당에서는 늘어 놓은 우동 사리를 손님이 마음대로 삶아 다시 국물이나 간장 등을 넣어서 먹고, 돈을 두고 나가는 것이다. 정말 파격적인 곳이다... 우동 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가게 안이 너무 좁았다) 돌 위에 걸터앉아 후루룩 후루룩 우동을 먹었다. 아침 아홉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날씨도 좋고 우동도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아침부터 돌 위에 걸터앉아서 우동을 정신없이 먹고 있으니, 점점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건 말건 내가 알 바 아니다’라는 기분이 드는 것이 아주 이상했다...” (pp.112~114)
멕시코 여행과 아메리카 횡단 여행 등은 꽤 긴 시간이 투여된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산출된 글의 분량이 길지는 않다. 이 장소들 중 많은 곳을 사진 기자인 마스무라 에이조 군과 동행하는데 책에는 사진이 많지 않아 아쉽기도 하다. 위에 실린 나카무카 우동집(을 비롯한 여행 중의 우동집들) 순례에는 안자이 미즈마루 씨가 동행한 탓에 삽화가 몇 장 들어가 있기는 한데, 그것만으로는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 나는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 그만큼 자꾸만 고독해져 간다. 모두가 그렇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인생은 고독에 익숙해지기 위한 하나의 연속된 과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태여 불만을 토로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불만을 털어놓더라도 도대체 누구를 향해 털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pp.216~217)
미루어 두었다 한꺼번에 하는 여행 같은 것이 가능할 리가 없는데, 지금은 일단 그렇게 계속 미루고 있다. 아내는 영어 공부에 열심이고 운동도 쉬지 않는데, 나중에 여행을 할 때를 대비하는 것이라고 밝히고는 한다. 나도 덩달아 무언가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인가 자문하고는 하는데, 나중의 여행을 위해서 지금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자칫 고독이나 챙겨가게 되려나...
무라카미 하루키 / 김진욱 역 / 하루키의 여행법 / 문학사상사 / 228쪽 / 1999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