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의 '숭숭 난 구멍들'에서 느껴지는 이토록 투박한 삶의 진심...
단편들의 연작으로 이루어진 책에 실린 첫 번째 소설 <약국>을 《일은 소설에 맡기고 휴가를 떠나요》라는 편집 소설집에서 읽은 적이 있다. 삼년 전 쯤의 일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크게 감응하거나 감흥하지 못했던 듯하다. 나는 매우 건조하게 그 소설집 전체에 대해 평하는 것에서 그쳤다. 그리고 삼년이 지났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집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는 동안 자꾸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음 날 그와 데니즈는 친밀한 침묵 속에서 일했다. 그녀는 계산대에 그는 안쪽 조제실에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데니즈가 그에게 기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녀가 슬리퍼스가 된 듯, 또는 그가 고양이가 된 듯 두 사람의 내면은 서로에게 부비대고 있었다...” (p.47, <약국> 중)
책에 실린 소설들은 뉴잉글랜드 지역에 있는 메인 주의 바닷가 마을인 크로스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뉴욕에 사는 아들을 찾아가서 겪는 일을 그리는 소설이 한 편 들어 있기는 하다) 그곳에는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의 수학 선생님인 올리브 키터리지와 소심하고 상냥하며 고지식한 약사인 헨리 키터리지 부부가 살고 있다. 이들에게는 크리스토퍼라는 아들이 있고, 이웃이라 할만한 이들이 있다.
“어떤 나이가 되면 어떤 것들을 예측하게 된다. 하먼도 그걸 알았다. 심장발작, 암, 대수롭지 않은 기침이 심한 폐렴이 되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 등을. 어쩌면 중년의 위기를 겪을지 모른다고도 예측하게 되지만 하먼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 땅 위로 솟아오른 투명한 플라스틱 캡슐에 넣어져 발사되어 날아간 다음, 캡슐이 호되게 흔들려 지나온 인생의 일상적인 기쁨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만 같았다. 그는 이것만은 결코 원치 않았다...” (p.176, <굶주림> 중)
소설에는 첫 번째 작품 <약국>에 이어서, <밀물>, <피아노 연주자>, <작은 기쁨>, <굶주림>, <다른 길>, <겨울 음악회>, <튤립>, <여행 바구니>, <병 속의 배>, <불안>, <범죄자>, <강>이라는 작품이 연이어 실려 있다. 모든 작품에서 올리브 키터리지가 주연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직간접적으로 등장하여 각각의 작품의 인물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영향을 받기도 한다.
“두 사람은 한 번도 키스하거나 서로를 만진 적이 없었다. 도서관 옆의 조그만 칸막이 사무실로 각자 들어가면서 가까이에서 나란히 걸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날 그 말을 한 후로, 올리브는 어떤 공포심과 때때로 참기 힘든 열망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힘들어도 참는 법.” (p.383, <불안> 중)
한 두 사람만 거치면 대부분 아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크지 않은 마을에는 올리브 키터리지에게 배운 제자들이나 그들의 부모가 있다. 그들은 마을을 떠나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착실히 교회에 나가는 헨리 키터리지는 <약국>에서를 제외하면 다른 소설들에서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오랜 세월 부부로 살았던 그들은 모호한 신뢰의 카테고리 안에서 작동한다. 동시에 상대방에게는 드러낼 수 없었던 감정의 울렁거림 또한 하나쯤 가지고 있다.
“... 아들 뒤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올리브는 때로 이 모든 일 속에서도 깊은 외로움을 느끼던 때가 있었던 걸 기억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몇 해 전, 충치를 때우면서 치과 의사가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돌리는데, 외로움이 너무 깊어서인지 그것이 마치 죽도록 깊은 친절인 것처럼 느껴져 올리브는 샘솟는 눈물을 숨죽이며 삼킨 적이 있었다...” (p.403, <불안> 중)
소설들 안에서 두 사람은 희미하거나 완전히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하기를 거듭한다. 하지만 그들이 희미한 이야기이든 그들이 뚜렷한 이야기이든 모두 그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이 소속된 공동체는 장소로, 시간으로 끊임없이 그들과 엮인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실하게 우리는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하나의 인물을 완성시켜 나아갈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투박하고 까칠하여 좀처럼 정이 가지 않는 이 인물을 향하여 소설들은 성실하게 접근해 간다.
“그렇기에, 지금 그녀 곁에 앉은 이 남자가 예전 같으면 올리브가 택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한들, 무슨 상관이랴. 그도 필시 그녀를 택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지금 둘은 이렇게 만났다. 올리브는 꼭 눌러 붙여놓은 스위스 치즈 두 조각을, 이 결합이 지닌 숭숭 난 구멍들을 그려보았다. 삶이 어떤 조각들을 가져갔는지를.” (pp.483~484)
소설에 특별하게 뽐을 내는 주옥같은 문장들이 즐비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떤 문장을 앞에 두면 깊은 떨림을 느끼게 된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요양원에서 몇 년을 보낸 남편 헨리도 죽고, 이제 온전히 홀로 남겨진 올리브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을 향하여 품게 된 어떤 감정을 말할 때, 독자들은 이미 소설 전체를 통하여 올리브의 ‘숭숭 난 구멍들’을 알고 있으므로 함께 떨릴 수 있게 된다. 이 투박한 진심을 앞에 두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Elizabeth Strout / 권상미 역 / 올리브 키터리지 (Olive Kitteridge) / 문학동네 / 495쪽 / 2010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