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어둑하고 기묘하게 느껴지는' 일련의 소설들...
「렉싱턴의 유령」
“눈을 떴을 때, 나는 공백 속에 있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잠시 동안 시들어빠진 채소처럼 무감각했다. 마치 어두운 찬장 깊숙이 오랫동안 처넣어진 채로 잊힌 채소처럼...” (p.21) 렉싱턴에 있는 케이시의 집에서 묵을 때 나는 유령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의 파티를 느꼈다. 케이시의 집에서 여러 날을 보냈지만 그 파티는 딱 하루 뿐이었다.
「녹색 짐승」
짐승이라고 해서, 그것이 녹색이라고 해서, 그것이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무서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그 무서움은 내 안에 있고, 내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 짐승은 내게 찾아오기도 하고 냉큼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침묵」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 그와 아오키 사이에 벌어졌던 단 두 차례의 맞섬,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평생에 걸쳐 남긴 것... “내가 무서운 건 아오키 같은 인간은 아닙니다. 아오키 같은 인간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고, 그 점에 대해선 이미 체념하고 있습니다... 내가 정말 무섭다고 생각하는 건, 아오키 같은 인간이 내세우는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믿어버리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입맛에 맞고 받아들이기 쉬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놀아나 집단으로 행동하는 무리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 무의미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고는 짐작도 하지 못하는 무리들이지요.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아무런 책임도지지 않습니다. 정말 무서운 건 그런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pp.92~94) 물론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말을 들은 소설 속의 내가 ‘맥주가 마시고 싶은 기분’이 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다.
「얼음사나이」
“... 내가 울면, 얼음사나이는 내 뺨에 입을 맞춘다. 그러면 내 눈물은 얼음으로 변한다. 그러면 그는 그 눈물의 얼음을 손으로 떼어내어 혀 위에 올려놓는다. 저 말이야, 난 당신을 사랑해, 하고 그는 말한다.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건 잘 알고 있다. 얼음사나이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서인지 불어닥친 바람이 하얗게 얼어붙은 그의 말을 과거로 과거로 계속 날려버린다. 나는 운다. 얼음 눈물이 계속 뚝뚝 떨어진다. 머나먼 남극의 얼음 집 안에서.” (p.120) 그러니까 소설은 얼음사나이와 결혼한 내가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얼음사나이에게 남극으로의 여행을 제안하였다가 결국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짐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토니 다키타니」
다키타니 쇼자부로는 아들을 얻었지만 아내가 죽었고, 아들은 토니 다키타니가 되었다. 토니 다키타니는 돈을 벌었고 아내를 얻었다. 아내는 옷에 집착하는 여성이었고 그들의 집을 옷으로 가득 채웠지만 그 옷을 제대로 다 입어 보지 못하고 죽었다. 토니 다키타니는 여성을 고용하여 아내의 옷을 대신 입는 일을 의뢰한다. 그녀는 가난하였으므로 제안받은 일을 수행하기로 작정한다. 하지만 육일치의 옷을 받으러 간 날 그녀는 그 앞에서 운다. 토니 다키타니는 중고업자를 통해 옷을 처분하기로 한다. 아내가 죽고 이 년이 지난 다음 그의 아버지 다키타니 쇼자부로가 간암으로 죽었다. 아버지가 남긴 레코드를 처분하고 나서 토니 가키타니는 ‘진짜 외톨이가 되었다.’
「일곱 번째 남자」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의 인생에서 정말 무서운 건, 공포 그 자체는 아닙니다... 공포는 확실히 내부에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서 때로는 우리의 존재를 압도해버립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것은 그 공포를 향해 등을 돌리고 눈을 감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 안에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무엇인가에 줘버리게 됩니다. 내 경우에는 - 그것은 파도였습니다.” (pp.199~200) 소설은 이 일곱 번째 남자의 공포의 연원이었던 파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감당할 수 없는 태풍이 몰아치던 날, 일곱 번째 남자는 바닷가에서 친구였던 K가 파도에 삼켜지는 동안 뒤돌아섰다. 그는 그곳을 떠났고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그곳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1984년에 발표된 단편집 《반딧불이》에 이 소설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가 실려 있었다. 나는 이렇게 감상했다. “‘아주 옛날에 지금과 똑같은 풍경을 본 적이 있는 기분이 들었다’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한 때 모든 소설들이 ‘기시감’을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면 그 맨 앞줄에 하루키가 있었던 것도 같다. 그 기시감 속에서 떠오른 오래 전 친구의 여자 친구를 병문안 갔을 때 그녀에게서 들었던 ‘장님 버드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와 함께 현재의 나 그리고 함께 병원을 가는 사촌동생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물론 그것이 아주 평행하게 달라 붙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해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잘 듣지 못하는 사촌동생과 나의 대화는 역시나 과거시제로 신선해 보인다.” 이번 소설집에 이 소설을 다시 실으며 작가는 원고량의 약 4 퍼센트를 줄였다 제목도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로 바꿨다. “나는 의식을 현실로 되돌리고, 벤치에서 일어섰다. 이번에는 제대로 일어설 수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오월의 그리운 바람을 다시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로부터 아주 짧은 몇 초 동안, 어둑어둑하고 기묘하게 느껴지는 장소에 서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그러 장소에. 그렇지만 이윽고 눈앞에 현실의 존재인 28번 버스가 멈추어 서자, 그 현실의 문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나는 버스에 올라타, 어딘가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다.” (p.236) 어쩌면 이후 많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입구가 이 문장이 탄생하는 벤치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 임홍빈 역 / 렉싱턴의 유령 (レキシントンの幽靈) / 문학사상 / 250쪽 / 2006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