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메드 사다위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어쩌면 모든 기록은 잊혀지지 않기 위한 무명씨들의 사투...

by 우주에부는바람

‘이라크전쟁 이후 13년간 폭탄테러와 군사 공격 등으로 숨진 이라크 민간인은 약 16만명에 달하며, 2016년 들어 불과 6개월간 숨진 민간인과 군인은 5000여명에 이른다.’ 검색하여 얻은 이라크와 관련한 뉴스이다.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라크전쟁은 사담 후세인의 검거와 재판, 사형 집행으로 이어졌고, 2011년 미국은 종전을 선언하고 이라크에서 철수하였다. 이 소설은 2013년 출간되었다.


“가족은 탈진한 채 집에 돌아가, 하시브가 옷가방을 어깨에 메고 귀가하는 꿈을 꾸었다. 모두가 하시브의 꿈을 꾸었다. 누군가의 꿈은 다른 사람이 놓친 이야기를 채우고, 작은 꿈하나하나가 커다란 꿈의 퍼즐조각이 되었다. 그렇게 퍼즐을 맞추자 하시브의 영혼이 타고 갈 꿈이 완성되었다. 하시브의 영혼은 모두의 머리를 떠돌며 잃어버린 몸을 찾아다녔다...” (p.44)


이라크 바그다드 출신의 작가는 바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초현실주의적을 다루고 있다. 영혼이 없던 시체에 시신을 잃어버린 영혼이 스며들어, 프랑켄슈타인 박사에 의해 만들어진 창조물과도 같은 무명씨가 되어 도시를 돌아다니며 살인을 일삼는다는 설정도 초현실적이지만, 어쩌면 매일매일 죽음을 근거리에 두고 살아가는 이들이 이 시간에도 지구의 어느 곳에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지금 이곳의 우리들에게는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렇게 여러모로 초현실주의적이다고 말해야겠다.


“... 안보사건과 참사는 원인이 하나입니다. 바로 두려움이죠. 사람들이 다리에서 죽은 이유는 죽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을까봐 두려워 매일 매일 죽음을 맞이합니다. 알카에다를 숨겨주고 지원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다른 그룹을 무서워하죠. 시민군을 창설하고 모병하는 이유도 알카에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아닐까요?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죽음의 기계가 엉뚱한 방향으로 작동하는 겁니다. 정부와 점령군이 두려움을 제거해야 합니다. 살상의 사이클을 멈추고자 한다면 두려움부터 막아야 합니다.” (p.133)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잠시 멈칫했다. 매일매일 전쟁 소식이 활자와 영상으로 실시간되던 것이 이미 오래전이었고, 그곳의 뉴스도 뜸해진 다음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소설의 시작에 앞서 붙어 있는 서른 네 명의 등장인물에 대한 간단한 설명 때문이기도 했다. 입에 잘 붙지 않는 아랍권의 이름들을 헷갈리지 않고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물론 그것은 기우였다. 어떤 편견도 허락하지 않는 소설은 사회정치적 배경과 맞물리면서도 흥미진진한 스릴러 미스터리물의 맥락 안에서 재미있다.


“청년이 보기에 나는 시민의 이상적인 모델이다. 파이살 1세 이후 이라크 정부가 한 번도 양성해내지 못한 시민이다... 각 신체부위의 원래 주인의 출신과 배경이 다양하므로(민족, 부족, 인종, 사회계급까지) 내 존재는 과거에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불가능한 통합을 상징한다. 고로 이라크의 진정한 제1시민이라는 논리다.” (p.157)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폐품업자 하디는 도로에 흩뿌려진 시체들의 일부분을 집으로 가져와 그것들을 한 조각씩 기워갔다. 벽을 맞대고 살아가는 노파 엘시바는 이십 년 째 전쟁터에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시브는 테러 차량에 총을 쏘다가 사망했고 시체는 산산조각났다. 하디는 하시브의 코 조각을 집으로 가져와 하나의 온전한 시신을 완성했고, 시신이 없어 떠돌던 하시브의 영혼이 그 시신으로 들어갔다. 살아 있는 시체가 된 무명씨는 바로 옆집인 엘시브의 집으로 스며들었고, 엘시브는 무명씨를 돌아오지 않던 아들 대니얼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내 얼굴은 매일 바뀐다. 나한테서 영속적인 것은 살아남아야겠다는 욕망뿐이다. 살상을 하는 이유는 그래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날 밤 무명씨는 점성술사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의 유일한 변명이었다. 꼭 죽어야 한다면 왜 죽어야 하고 죽은 다음에는 또 어디로 가게 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삶에 집착했다. 다른 사람들, 심지어 생명과 신체 부위를 제공한 사람들보다도 더 죽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다. 요컨대 두려움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았으므로 자신이 더 살 가치가 있다는 논리였다. 승산이 없다고 해도 적어도 저항은 했어야 했다. 항복은 영예롭지 못한 처사다...” (p.283)


소설은 ‘100프로 피해자도 없고 100프로 가해자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시신으로 종합된 무명씨의 이야기이면서 무명씨로 대변되는 도시 괴담의 흔적을 따라가는 한 언론인의 기록이기도 하다. 지금 이곳에서는 짐작할 수 없는(이제 뉴스에서도 이곳의 소식이 뜸해진지 오래이다) 이야기인데, 여전히 그곳에서는 횡행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모든 기록은 잊혀지지 않기 위한 무명씨들의 사투에 불과하다.



아흐메드 사다위 / 조영학 역 /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in Baghdad) / 더봄 / 303쪽 / 201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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