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빵가게 재습격》

실재는 온데간데없지만 지금 눈앞에 그려진 어떤 것인가에 홀리도록 만드는.

by 우주에부는바람

「빵가게 재습격」

새벽 두 시에 깨 느끼게 된 참을 수 없는 공복감이 발단이었다. 아니 어쩌면 오래전 감행하였던 빵가게 습격이 빵가게 재습격의 원인일 수도 있다. “... 그저 여러 가지 일이 그 사건을 경계로 천천히 변해갔을 뿐이야. 그리고 한 번 변해버린 것은 더는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았어...” (p.19) 이 새벽 나와 아내는 문을 열고 있는 빵가게를 찾지만 원활하지 않다. 결국 우리는 맥도날드를 습격하기로 한다. “빅맥 서른 개, 테이크아웃으로.” 점장은 이 습격이 번거롭다. “돈을 충분히 드릴 테니 어디 다른 가게에 가서 사드시면 안 될까요.” 우리는 맥도날드의 세 사람을 기둥에 묶어 놓고 나온다. 우리가 들어갈 때 테이블에 잠들어 있던 커플은 그때까지도 잠들어 있다. 우리는 적당한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나는 여섯 개 아내는 네 개의 빅맥을 먹는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스무 개의 빅맥이 남아 있다.


「빵가게 습격」

“신도 마르크스도 존 레넌도 모두 죽었다. 아무튼 우리는 배가 고팠고 그 결과 악으로 치달리려 하고 있었다. 공복감이 우리는 악으로 치달리게 한 게 아니라 악이 공복감으로써 우리를 치달리게 한 것이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꼭 실존주의 같다.” (p.38) 쉰이 넘은 공산당원이 사장인 빵가게를 우리는 습격한다. 우리는 이틀 동안 물밖에 마시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습격은 우리가 원한 것과는 다르게 진행된다. 빵집 주인은 우리가 바그너를 듣는다는 조건으로 빵을 실컷 먹게 해준다. 우리는 그렇게 한다. 바그너를 들으면서 빵을 먹는다.


「코끼리의 소멸」

나에게는 코끼리의 소멸과 관련한 기억이 하나 있다. 내가 살던 마을에서는 코끼리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다. 동물원이 문을 닫으면서 거처를 정하지 못한 코끼리를 마을에서 거두기로 한 것이었다. 축사도 있었고 관리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 코끼리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경찰이 나섰고 사냥꾼들과 자위대원, 소방대원까지 나섰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이 코끼리의 마지막 목격자일지도 모른다.


「하이네켄 맥주 빈 깡통을 밟는 코끼리에 관한 단문」

사라지기 전, 코끼리는 깡통을 밟는 일을 했다. 금요일이면 온 마을의 빈 깡통이 회수되어 코끼리 우리로 날라졌다. 코끼리는 사육사의 피리 소리에 맞추어 깡통을 밟았고, 그럴 때면 코끼리도 사육사도 무척 행복해 보였다.


「패밀리 어페어」

나는 여동생과 오 년 전부터 한 집에서 살고 있다. 그때 나는 스물두 살이었고, 여동생은 열여덟 살이었다. 우리는 사이 좋은 오누이이다. 하지만 여동생이 결혼을 원하는 남자, 와나타베 노보루에 대해서 나는 우호적이지 않다. 딱히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몇 차례 만남이 있고 노보루가 집에 왔고 노보루는 나의 오디오를 고치기 위해 땜질 인두를 직접 사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땜질 인두 하나쯤 있으면 편리하죠... 건전한 생각이야, 하고 나는 손수건으로 입을 닦으면서 생각했다. 네 덕분에 이제 우리집에도 땜질 인두가 하나 생겼다. 하지만 그 땜질 인두 탓에 그곳은 이제 내 집이 아닌 것 같다.” (p.128~129)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

나는 잡지의 한 페이지에서 내가 알고 있는 쌍둥이의 사진을 발견한다. 나는 와타나베 노보루와 동업을 하고 있는 사무실에서 사진을 찬찬히 살펴본다. 오래 전 나의 세계에 쌍둥이가 있었다. “... 결국 사람은 어떤 상황에든 스스로를 동화시킨다. 아무리 선명한 꿈도 결국은 선명하지 못한 현실 속으로 소멸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런 꿈을 꾸었다는 것조차 나는 떠올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p.166)


「로마제국의 붕괴 · 1881년의 인디언 봉기 · 히틀러의 폴란드 침입 · 그리고 강풍 세계」

목요일에 나는 여자 친구와 잤는데, 그녀는 눈가리개를 하고 섹스하는 걸 좋아한다. 나는 일기를 쓸 때 ‘80퍼센트의 사실과 20퍼센트의 성찰’이라는 방침을 따른다. 그리고 나는 일기를 쓰기 위해 종종 메모를 한다. 로마제국의 붕괴, 1881년의 인디언 봉기, 히틀러의 폴란드 침입과 같은 메모를...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그런 걸 메스로 절개해보고 싶어요. 사체 말고요. 죽음의 덩어리 같은 거요. 그런 게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소프트볼처럼 둔하고, 부드럽고, 신경이 마비된 것. 그걸 죽은 사람의 몸속에서 꺼내 절개해보고 싶어요. 늘 생각해요. 그 안은 어떨까 하고요. 마치 치약이 튜브 속에서 뭉쳐 있듯이, 뭔가가 마구 엉켜서 덩이져 있지 않을까요? ...” (pp.222~223) 이런 것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는 것의 실체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피와 뼈를 부여하고, 마음껏 변형시키면서도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처럼 설레게 만든다. 실재는 온데간데없고 지금 눈앞에 그려진 어떤 것인가에 홀리도록 만드는 것, 하루키의 변함없는, 타고난 전략이다.


「식인 고양이」

“이즈미는 나보다 열 살 어렸다. 그녀와는 일 문제로 알게 되었다. 우리는 첫 만남부터 서로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살다보면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다. 우리는 일 때문에 두세 번을 더 만났다. 내가 그녀의 회사로 가기도 하고, 그녀가 우리 회사에 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 긴 시간 자리를 함께하진 않았고 단둘이 만난 것도 아니었다. 특별히 개인적인 얘기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일이 끝나자 어쩐지 몹시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을 불합리하게 뺏겨버린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pp.241~242) 나와 이즈미는 가정이 있었지만 서로에게 끌렸고, 두 사람의 관계가 각자의 배우자에게 알려진 이후, 그리스 아테네로 떠났다. 두 사람은 아테네의 한 마을에서 지내고 있었고, 그곳에서 나는 신문에 실린, 죽은 노부인이 죽고 그녀가 키우던 세 마리의 고양이가 꼭꼭 닫힌 집에서 죽은 주인의 살을 먹은 고양이 이야기를 읽는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하루키는 장편을 쓰고 난 다음 한숨 돌릴 즈음에 단편을 쓴다. 그러고 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시기가 도래하는데 그럴 때는 주로 번역을 한다. 이후 장편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면 그때 다시 장편을 쓴다. 이 순환은 사이클의 크기만 다를 뿐 매번 되풀이된다. 이 단편집의 소설들은 장편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이후 만들어졌고, 이후 작가는 《태엽감은 새》를 출간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 권남희 역 / 빵가게 재습격 (パン屋再襲擊) / 문학동네 / 2010, 2014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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