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TV 피플》

비현실에서 비현실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더듬는 문장의 감각...

by 우주에부는바람

「가노 크레타」

가노 크레타는 나의 이름인데, 실제 나의 이름은 아니다. 함께 일하는 언니가 마루타, 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 나의 업무상 이름으로 크레타, 를 선택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크레타 섬에 가본 적이 없고, 언니가 하는 일은 사람의 몸 안에 흐르는 물의 소리를 듣고, 그 물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고, 나는 일본 각지에서 공수하여 지하실에 보관 중인 물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 내가 많은 남성들에게 폭력적으로 강간을 당하는 것이 내 몸의 안에 있는 물의 탓이라고 언니는 말하고, 나는 그도 그럴 수 있다, 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나를 덮치려한 경찰관을 죽여야 했고, 유령이 된 경찰관과 함께 생활해야만 했고, 결국엔 나를 찾아온 남자에게 폭력적으로 범해지고 목이 잘렸다.


「좀비」

어쩌면 <잠>이라는 소설에 이르는 길의 중간에 만난, 좀비, 같은 것일까... 깨어났지만 깨어났다고 하기 어려운 어떤 연속, 죽어 있지만 죽어 있다고 할 수 없는 어떤 연속 사이의 매개로서의 좀비...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고도 자본주의 전사」

“...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문장화활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의 톤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 톤만 확실하게 포착하고 있으면, 그 이야기는 진실한 이야기가 된다... 사실은 얼마간 다를지 모르겠으나, 진정한 이야기가 된다. 사실과 이야기와의 차이가 진실함을 고양시키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세상에는, 사실과 전부 맞아떨어져도 진실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야기는 대체로 시시하고, 어떤 경우에는 위험하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들은 냄새로 알 수 있다.“ (p.42) 하루키가 중요시하는 것은 문장, 그러니까 자신만의 독특한 톤을 가지고 있는 문장, 그렇게 형성된 하나의 스타일이다. 이야기 자체보다는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중요하고, 어쩌면 그것은 이야기 자체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니까 하루키는 오랫동안 그렇게 했다. ”맨 처음 미리 말했듯, 이 이야기에 교훈이랄 만한 것은 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며, 우리들 모두에게 일어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를 다 듣고도 폭소를 터뜨릴 수는 없었고, 지금 또한 그렇다.“ (p.74)


「비행기-혹은 그는 어떻게 시를 읽듯 혼잣말을 했는가」

“사람의 마음이란 깊은 우물 같은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해. 그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 가끔 떠오르는 것들의 모양을 보고 상상할 수밖에.” (p.87)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에서 그와 그녀는 비행기에 대해 말한다. “내가 어떤 혼잣말을 했지? 예를 들어.” 그가 묻자 그녀는 말한다. “예를 들면, 비행기에 관해서.” 그래서 어쩌면 이번 소설은 <TV 피플>에 떠오르기 전의 깊은 우물에 갇힌 또다른 이야기 같은 것일까.


「잠」

“나는 잠을 자지 않은 지 오늘이 며칠째일까 하고 생각했다. 처음 잠을 자지 못한 날이 그러니까, 지지난 주 화요일이다. 그렇다면, 오늘로 꼭 열이레가 된다. 나는 열이레 동안 한잠도 자지 않았다... 잠이란 것이 대체 어떤 것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눈을 감아보았다. 그러고는 잠의 감각을 되새겨보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깨어 있는 어둠이 존재할 뿐이었다...” (p.151) 불면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풍요로운 잠, 잠의 향유와는 거리가 멀다. 이번 소설이 내게 특별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괘종시계의 울음을 한 번부터 여섯 번까지 차례대로 들은 적도 있다. 이 문장에 들어 있는 ‘깨어 있는 어둠’을 읽자, 잠시 그때 그 시간으로 순식간에 돌아갔다. 그때 부모님과 살 때 이후 나는 소리가 나는 시계를 가질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잠을 대하는 풍부하고도 대중적인 감각들이 소설에 가득하다. 이제 나는 얼마간 잠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다. 잠이 오지 않아도 잠을 불러들이려 애쓰지 않는데, 그것은 내가 삼일 정도를 깨어 있어본 다음에 가능해졌다.


「TV 피플」

“나는 전화기를 보았다. 그리고 전화기 코드를 생각했다. 어디까지고 하염없이 이어져 있는 전화기 코드. 그 끔찍한 미로로 얽힌 회선의 끄트머리 어딘가에 아내가 있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저 먼먼, 내 손길이 닿지 않는 멀리에. 나는 그녀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5분, 하고 나는 생각했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냐? 나는 일어나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일어난 순간 언어가 깨졌다. 사라지고 말았다.” (pp.203~204) 아내와 나의 이야기인지, 나와 TV 피플 사이의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 TV 피플은 마치 유령과도 같은데, 나는 그들을 보지만 다른 이들은 그들을 보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TV 피플은 나의 집이나 나의 회사에서 TV를 들고 다니고, TV 안에 있기도 하고, TV 바깥으로 나오기도 하고, 나에게 나의 아내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 김난주 역 / TV 피플 (TVピ-プル) / 북스토리 / 207쪽 / 2014 (199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