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보다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하는 경우 발생하는 어떤 파장.
존 쿳시의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일종의 관념 소설이다. 작가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 오스트레일리아의 작가로 나오는데, 남아프리카 출신의 존 쿳시는 2012년 오스트레일리아로 거처를 옮긴 상태였다 - 는 유명 작가로 세계 곳곳에 강연자로 초청을 받거나 유수의 문학상에 수상자로 선정되어 수상 소감을 발표하고는 한다. 소설은 바로 이러한 연설 그리고 대화로 채워져 있다.
“저는 작가입니다. 그리고 제가 쓰는 것은 제가 듣는 것입니다. 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서기입니다. 시대마다 있었던 많은 서기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받아쓰는 일이 제 직업입니다. 저한테 주어진 것을 의문시하고 판단하는 것은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저는 말들을 받아 적고, 제가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것들을 시험해보고, 그것들의 소리를 시험해볼 뿐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서기, 이것은 제가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우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그 말을, 어쩌면 재판관님들도 알고 계실, 더 높은 단계의 서기이자 시인인 체스라프 밀로쉬한테서 빌려 왔습니다. 그 말은 수년 전에 그 시인이 받아 적었던 것입니다.“ (p.257)
소설은 ‘리얼리즘’, ‘아프리카에서의 소설, 동물들의 삶Ⅰ _철학자들과 동물들’, ‘동물들의 삶Ⅱ _시인들과 동물들’, ‘아프리카에서의 인문학’, ‘악의 문제’, ‘에로스’, ‘문에서’ 라는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마지막에 ‘레이디 찬도스, 엘리자베스의 편지’ 라는 제목의 후기가 첨부되어 있다. 자신의 견해를 구술하는 언어로 직접 토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소설인데, 작가는 이런 관념을 리얼리즘과 따로 떼어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리얼리즘은 관념과 편안한 관계였던 적이 결코 없다. 그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리얼리즘은 관념들이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직 사물들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전제에 기초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리얼리즘은 어떤 관념에 대해서 논할 필요가 있을 때는 부득이하게, 인물들로 하여금 상반되는 관념들을 얘기하게 하고,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렇게 함으로써 관념들을 얘기하게 하고,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렇게 함으로써 관념들을 구현하는 상황을 꾸며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구현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그러한 논의에서 관념은 자유롭게 떠다니지도 않고 또 그럴 수도 없다...” (p.17)
이 책에서 작가고 택하고 있는 방식은 그러니까 인물을 둘러싼 사적인 환경이나 공적인 배경 안에서 구현되는 인물의 행동을 통한 리얼리즘의 방식이 아니라 그 인물이 자신의 언어를 통해 극히 직접적으로 관념을 표현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의 리얼리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의 연설은 곧 소설이 되고, 소설은 결국 일리자베스 코스텔로의 연설이다.
“... 제 어머니는 남자였던 적도 있고 개였던 적도 있어요.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다른 존재 속으로 들어가 생각할 수 있거든요. 저도 그걸 읽어서 알아요. 그건 제 어머니가 갖고 있는 힘이죠. 우리를 우리 밖으로 끌어내 다른 삶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던가요?” (p.34)
리얼리즘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비롯해 단순히 동물의 권익 보호가 아니라 동물 또한 인격권에 비견될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급진적인 사고, 구술과 언어의 문제를 통해 바라보는 아프리카 소설의 문제, 아프리카에서의 기독교를 통해 바라는 종교의 문제, 소설 속에 표현되는 악을 대하는 태도, 신과 에로스, 믿음의 문제 등을 소설은 형상화된 인간이 아니라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라는 인간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자신에게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녀가 수년 전에 이러한 생각들을 글로 썼을 때는 믿기도 했지만,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닳아빠지고 왠지 설득력이 없게 느껴진다. 반면에, 그녀는 더 이상 믿음이라는 것을 강하게 믿지 않는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어떤 것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혹은 그 반대라고 해도, 그것과 상관없이 사물들이 진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믿음은 결국 건전지처럼, 안으로 집어넣어 관념을 작동하게 만드는 에너지원 그 이상은 아니다. 글을 쓸 때 그러하듯이, 작업을 완수하기 위해서 믿어야 되는 것이라면 어느 것이든 믿듯이.” (p.55)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에 실린 단편들이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라는 인물을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의 메시지를 유지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소설이 보다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어떤 파장을 예의주시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소설이 구현할 수도 있을 또 하나의 지향에 대한 존 쿳시의 색다른 시도로 이해해 본다.
존 쿳시 J. M. Coetzee / 왕은철 역 /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Elizabeth Costello : Eight Lesson) / 들녘 / 304쪽 / 2005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