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불가침의 영역에서 여전히 유보 중인 작가의 곁으로 잠시...
*2018년 7월 13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마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던 톨스토이가 거지를 발견했다. 그는 헐벗은 거지에게 다가가 구걸이 아니라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자리를 떴다. 얼마 뒤 바로 그 자리를 도스토옙스키가 지나가게 되었다. 도스토옙스키는 헐벗은 거지에게 다가가더니 곧바로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서 건넸다. 그리고는 자리를 떴다. 오래 전 선배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이다. 선배도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몸밖으로 무엇인가가 빠져나가고 있다. 그는 생각한다. 죽은 건 나야. 나는 죽었지만 내 죽음은 도착하지 않았어. 그는 자기 몸이 강하고 튼튼하며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의 가슴은 튼튼한 나무판으로 만든 통 같다. 그의 심장은 오랫동안 계속 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의 시간 밖으로 끌려나왔다. 그를 나르는 물살은 여전히 앞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방향도 있고 목적도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더 이상 삶이 아니다. 그는 죽은 물, 죽은 물살에 실려가고 있다.” (p.31)
사실대로 말한다면 도스토옙스키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죄와 벌》이나 《악령》,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같은 작품들이 언급된 글들은 수도 없이 보았을 테지만, 실제로 그 작품들을 골똘히 읽은 기억이 없다. 그러다 불쑥 도스토옙스키가 소설 속의 인물이 되어 있는 소설을 읽고 말았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더듬거리만 하는, 눈 뜨지 못한 심정이 내내 계속되었다.
“... 제가 당신이 그것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확히) 예견했다고 해서 절 비난하지 마십시오. 사건이 예기치 않게 돌아간다면 몰라도 당신과 나의 관계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책을 덮으면 책 속의 인물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에 대해서는, 제 입이 봉해졌다고 생각하세요. 저한테서는 어느 누구도 이 슬픈 사건에 대해 어떤 말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p.213)
소설은 드레스덴에 머물고 있던 도스토옙스키가 자살한 의붓 아들이 머물렀던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에서 겪는 일련의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실제 도스토옙스키에게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존 쿳시는 소설 속의 의붓 아들인 파벨과 비슷한 나이의 아들을 잃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재하는 경우도 있고, 실존 인물이지만 소설 속의 상황은 허구인 경우도 있고,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는 막시모프의 조수와 그의 질문을 떠올린다. “어떤 종류의 책을 쓰시죠?” 그는 이제야 자신이 대답했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안다. “난 진실의 왜곡에 관한 글을 씁니다. 나는 구부러진 길을 택해 아이들을 어두운 곳으로 데리고 가는 사람이오. 펜이 춤을 추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이오.”』 (p.341)
그는 아들이 머물렀던 하숙집에 기거하면서 여주인과 관계를 맺기도 하고, 죽은 아들의 남겨진 하얀 양복을 입기도 한다. 아들이 빠져들었던 급진적인 모임의 우두머리와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경찰서에서 심문을 당하기도 한다. 아들이 남긴 문서에서 자신에 대한 언급을 발견하기도 하고, 하숙집 여주인의 딸의 언행에 따라 절망을 맛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글을 쓴다.
“그는 모두를 배반했다. 그는 배반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만약 배반의 맛이 식초 같은지 아니면 쓸개즙 같은지 알고 싶다면 지금이 기회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그의 입에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그의 가슴은 완전히 비어 있다... 그에게는 그것이 그가 지불해야 하는 엄청난 대가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책을 쓰라고 그에게 많은 돈을 준대요. 그 아이는 죽은 아이의 말을 반복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것은 그가 그 대가로 자신의 영혼을 포기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제 그는 그것을 맛보기 시작한다. 쓸개맛이다.“ (p.361)
사실인 것과 사실이 아닌 것,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선한 것과 선하지 않은 것, 죽은 것과 죽지 않은 것이 뒤섞여 있는 소설을 읽는 일이 쉽지 않았다. 선배가 도스토옙스키를 두둔하는 듯한 (일화인지도 분명하지도 않은) 일화를 들려주던 시기의 도스토옙스키는 우리에게 그리 탐탁스런 문학가는 아니었다.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불가침의 영역에서 여전히 유보 중인 채로 남겨져 있을 따름이다.
존 쿳시 J. M. Coetzee / 왕은철 역 / 페테르부르크의 대가 (The Master of Petersberg) / 문학동네 / 382쪽 / 2018 (1994)
ps. 소설을 읽는 동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왔고, 아카이브를 동생 대신 운영 중인 제냐로부터 도와달라는 톡이 날아왔다. 공황의 증세를 보이며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그녀는 강릉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녀를 만나 동생네로 인계했다. 그녀는 오랜 시간을 동생네서 잤고 자신의 집으로 갔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도와달라는 톡을 보냈다. 그녀는 심한 향수병을 앓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럼에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