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만든 자의 손을 온전히 떠날 수 있을만큼, 우연이 신비가 되어버
소설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는 심지에 불을 붙여 버린다. 심지는 타들어가기 시작하고 폭탄은 언제라도 터질 수 있다. 독자는 심지가 타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다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하지만 터지지 않는다. 눈을 뜨면 심지는 여전히 타들어가고 있다. 눈을 감고 다시 뜨고 눈을 감고 다시 뜨는 동안 심지는 타들어가고, 우리는 결국 소설이 끝날 때까지 폭탄이 터지는 광경을 발견하지 못한다. 소설을 읽는 동안에도 소설을 모두 읽은 다음에도 심지는 계속 타들어가고 있다.
“킬로런의 어부들은 고기를 잡고 새벽에 노를 저어 들어왔을 때 실종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들은 밤새 배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오래전 그들의 이야기를 장식했던 미신이 다시 그들 사이에서 중얼중얼 흘러나왔다. 비극을 먹고 사는 상어들은 파괴의 잔재만 남기는데 그나마도 많이 남기지 않는다는 것. 어부들도 살아 있는 아이의 죽음을 애도했다.” (p.58)
아일랜드의 라하단의 저택에는 골트 가문의 부부와 어린 딸이 살고 있었다. 신교도 지주 그룹에 속하는 가문이고 부인인 헬리이즈는 영국인이까지 하다. 때는 1921년이고 이때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구교도 젊은이 셋이 그들의 집에 방화를 목적으로 찾아오고, 그 중 한 명이 에버라드 골트가 쏜 총에 맞아 어깨를 다친다. 결국 골트 부부는 그곳을 떠나기로 하지만 직전 그들의 딸 루시 골트가 사라진다. 부부는 골트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 여름에 골트 가족의 운명을 정한 것은 진노가 아니라 우연이었다.’ 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 이제 그들은 이미 시작된 문장을 바꾸거나, 문장이 시들어 사라지도록 내버려두거나, 미소로 쫓아버리는 데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마음의 고통을 겪는 환자로서 도착한 장소의 낯선 느낌, 바위 많은 언덕과 좁은 거리, 어린아이들처럼 배우는 언어, 그들이 사는 공간의 꾸밈없는 환경에 몸을 맡겼다. 그들은 스스로 고안한 방식으로 시간, 하루, 그리고 또 하루와 또 하루의 시간을 소비했고, 마침내 첫 아마로네 와인 병을 열 순간이 왔다. 그들은 몬테마르모레오의 누구에게도 폐가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p.100)
발목에 상처를 입고 블루베리를 먹으며 숲에서 버티던 루시 골트가 돌아왔지만 골트 부부는 이미 라하단을 떠난 뒤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이주하기로 한 영국을 지나쳐 이탈리아로 스위스로 계속해서 이동한다. 부부에게는 자신들의 이주 결정으로 인해 딸이 죽음에 이르렀다는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루시 골트는 그곳을 떠나기 싫어했고, 떠나기로 결정한 것은 그들이었다. 하지만 라하단에 남은 루시 골트 또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자신의 거짓 죽음으로 인해 부부가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것임을 그녀는 안다.
“... 그는 수백 년간의 적의로 기운이 바닥난 아일랜드를 생각했고 그러자 타향살이 초기에 경험했던 감정이 다시 찾아왔다. 그의 가족이 어떤 역할을 했을지 모르는 과거의 죄들에 대한 벌을 받았다는 느낌. 골트 가문이 자신의 위치를 너무 오래 유지해온 것도 탐욕이었을까? 형법이 통과되는 동안 라하단에서는 파티가 열렸고, 교회에서는 왕과 대영제국을 위해 기도를 드렸으며, 빼앗긴 자들의 갈망은 무시되었다...” (pp.244~245)
어린 루시 골트가 서른이 넘을 때까지도 그 부부에게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루시 골트의 죄책감은 사랑하는 남자 레이프와의 결합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 또 하나의 숨겨진 죄책감이 있다. 골트 가문의 저택을 공격하려고 했고, 어깨에 부상을 입은 호라한이다. 그는 골트 가문의 슬픈 이야기를 들어서 안다. 그는 알 수 없는 꿈을 꾸고, 끝내 정신 병원에 들어갈 운명이다.
『그는 결국은 아주 쉽게 선잠에 빠졌다. 그러자 어떤 이탈리아 성당에서 여자 관리인이 저녁 봉독을 했다. 광장의 그늘진 구석에서는 남자들이 카드놀이를 했다. “사랑은 굶주리면 탐욕스러워져요.” 걷기 힘들게 포장된 도로를 가로지를 때 헬로이즈가 그에게 일깨웠었다. “기억나지 않아요, 에버라드? 사랑은 굶주리면 모든 이성을 넘어서버려요.”』 (p.288)
이 모든 죄책감 속에서 시간은 흘러간다. 루시 골트는 어른이 되었고, 헬로이즈 골트는 죽었다. 그리고 칠십이 넘은 에버라트 골트가 드디어 라하단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딸 루시 골트가 살아 있음을, 살아 있었음을 확인한다. 다시 시간은 흐르고 에버라트 골트 또한 죽고, 루시 골트는 정신병원에 갇힌 호라한을 찾아간다. 2주에 한 번 17년 동안 그렇게 한다.
“그러나 수녀들은 우연을 믿지 않는다. 신비가 그들의 본령이다. 숲에서 신비를 벗겨내면 서 있는 목재만 남는다. 바다에서 신비를 벗겨내면 짠물만 남는다. 그녀는 응접실 서가에 있는 책을 처음 읽던 무렵 어딘가에서 그런 말을 발견했다...” (p.374)
오랜 시간이 흘러 아이가 노인이 되는 동안 우연은 신비가 된다. ‘루시 골트 이야기’라는 제목이 붙어 마땅한 신비하기만 한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를 만든 이는 윌리엄 트레버이겠지만 이야기라는 것은 이야기를 만든 자의 손을 온전히 떠날 수 있을 때 완성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긴장과 이완으로 펄떡거리는 역사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러나 그 아랑곳하지 않음 때문에 더욱 확연해지는 역사 안에서 홀로) 긴장과 이완의 중간, 딱 그 경계선에서 내내 살았던 루시 골트의 이토록 긴 시간이, 타들어가는 심지처럼 마음에 그어지고 있다.
윌리엄 트레버 William Trevor / 정영목 역 / 루시 골트 이야기 (The Story of Lucy Gault) / 한겨레출판 / 385쪽 / 2017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