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의 그들을 떠올리느라, 떠오른 그들을 다시 소설 속으로 밀어 넣느
『개가 익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리코 녀석은 총명해서,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는 갈팡질팡하지 않았다. 개는 꼼짝하지 않았고 늘 그랬듯 말을 잘 들었다. 제리코는 물에 띄워진 라일로를 타고 가는 제 역할에 충실했다. 샛노란 바탕에 선명하게 찍힌 짙은 검은색 점이 되어. 두 소년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수도 호스 무지개가 만들어내는 색깔을 바라보았을 때처럼, 더밸리 양이 춤추는 고양이의 휘청거리는 발짓을 바라보았다고 한 것처럼. 이미 저 멀리 밀려간 라일로의 노란색이 물 위의 흐릿한 점이 되었고, 그러다 사라졌고, 다시 나타났다가 또다시 사라졌다. 개 짖는 소리가 시작되었다가 울부짖음으로 변했다. 그때도 둘 사이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자갈밭과 바위를 타고 오를 때나 지름길로 올라서서 가시금작화가 핀 들판을 질러갈 때도. 절벽에서 그들은 다시, 마지막으로,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바다는 잠잠했고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래, 오늘 아침엔 너희들 뭐하고 놀았니? 더밸리 양이 물었다. 다음 날, 다른 어딘가로, 개가 파도에 떠밀려 왔다.』 (pp.292~293, <감응성 광기> 중)
책에 실린 마지막 단편 소설 <감응성 광기>의 한 부분이다. 이제 중년이 된 윌비는 프랑스에 갔다가 그곳에서 어린 시절의 친구였던 앤서니를 발견한다. 앤서니는 청소년기를 지난 이후 사라졌고 사람들은 모두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윌비도 그렇게 여기고 살았다. 그러다 문득 앤서니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소설의 어느 부분에서인가 문득 위와 같은 문단이 등장한다. 윌비와 앤서니가 공유하고 있는,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감응하였을 어떤 기억이 아무런 경고 없이 독자들 앞에 툭 떨궈진다.
『캐서린은 커피를 다 마시고 플로렌틴 부스러기를 응시하며 한참을 더 앉아 있었다. “우린 감수하며 살고 있어요.” 그녀는 남자와 함께 파티장에서 나오며 말했다. 그는 사이가 안 좋은 아내에게로, 그녀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끝난 외도를 저지른 남편에게로. 그 부부가 감수하는 일에 매료된 그녀의 오후 연인은, 한 시간 전에 그의 임시 거처인 그 방 안에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다.
지하철에서도 그녀는 계속 그 방을 떠올렸다. 코끼리 그림, 여행 가방, 바닥에 늘어진 전선, 문 안쪽 면에 걸린 옷가지들. 방 안을 울리는 그들의 목소리, 그의 호기심, 회피하다가도 결국 조금 더 이야기하는 그녀, 왜냐하면 어쨌거나 그에게 무엇으로든 갚아줘야 하니까...』 (pp.41~42, <방> 중)
어쩌면, 그러니까 멋을 부리고자 했다면 이 소설의 제목은 ‘오후의 연인’ 같은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윌리엄 트레버에게 그런 건 필요 없다. ‘방’으로 충분하다. 외도를 저지른 것이 확실한 남편의 행적을 경찰에게 거짓으로 고한 그녀를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녀가 오후에 만난 외도의 대상인 그가 아니라, 그와 그녀가 그렇게 머물러야 했던 어떤 ‘방’이어야만 한다.
“프로스퍼는 그 밤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는 자신이 줄 수 있는 만큼을 그에게 돌려주었으며, 그는 그 사실을 몰랐던 적이 없었다. 아직도 추억을 되새기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 목소리에서 노곤함이 묻어났을 때, 이제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녀와 함께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녀 자신이 찾았다가 잃어버렸던 용기를. 그것은 이제 정리되어야만 하는 것들을 정리하고, 말해져야만 하는 것들을 말할 그의 용기였다. 어리석은 짓은 없었다. 실수는 없었다.” (pp.196~197, <완벽한 관계> 중)
두 사람이, 프로스퍼와 클로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클로이가 어째서 프로스퍼를 떠난 것인지, 아무런 기색도 없이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클로이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부질없다. 프로스퍼는 클로이를 찾아다녔고, 클로이는 어느 순간 다시 돌아왔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들은 시작보다는 끄트머리에 훨씬 공이 들어가 있다.
“오후에 소젖을 짜고 있을 때 애가 와서 옆에 서 있는데, 아무말 하지 않는데도 애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애가 뭔가에 홀린 것 같아요. 그러고도 나중에 우리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얘기를 했죠 애가 식탁을 차리고 내가 송어를 튀겨서 둘이 함께 먹었어요. 설거지도 함께 해치웠고. 내 소중한 테리사, 그 애의 남은 어린 시절을 망가뜨릴 수는 없어요.” (p.224, <아이들> 중)
코니는 엄마를 잃었고, 로버트는 아내를 잃었다. 엄마가 없고 아내가 없는 곳에서 코니와 로버트는 일년 여의 시간을 보냈다. 로버트는 코니와 친하게 지내던 멜리사의 엄마인 테리사와 함께 살기로 작정하였다. 코니는 이러한 사실을 통보받았고 그저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소설을 읽는 동안 ‘아무말 하지 않는데도 애원하는 소리’를 독자인 우리도 들을 수밖에 없게 된다.
소설집에는 <재봉사의 아이>, <방>, <아일랜드의 남자들>, <속임수 커내스터>, <객기>, <오후>, <올리브힐에서>, <완벽한 관계>, <아이들>, <그의 옛 연인>, <신앙>, <감응성 광기> 열두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해 탁자를 톡톡 두들겼다. 소설 속 인물을 떠올리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떠올리느라 그랬다. 떠올리고 난 다음에는 다시 소설 속으로 그들을 밀어 넣느라, 나는 계속해서 톡톡,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기고 있었다.
윌리엄 트레버 William Trevor / 민은영 역 / 그의 옛 연인 (Cheating at Cansta) / 한겨레출판 / 310쪽 / 2018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