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바꾸려는 물리적 환경과 그로 인해 바뀌지 않는 인간 관계라는 아이러
“그는 특정 미인들에게 불가해한 매력을 발하는 부류의 남자 - 막연히 비호감이고, 대개 대머리에 키가 작고, 뚱뚱하고, 머리가 좋은 - 였다. 아니면 스스로 그렇다고 믿어서 그렇게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일부 여자들이 그를 구제가 필요한 천재라고 믿는 것도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 시기의 마이클 비어드는 정신이 편협했고, 한 가지 문제에만 매달렸으며, 불감증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다섯번째 결혼이 무너져가는 지금 그는 어떻게 처신하고, 어떤 장기적 전망을 갖고, 어떤 식으로 잘못을 책임져야 하는지 알고 있어야 마땅했다...” (p.13)
주인공 마이클 비어드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과학자이다. 물론 오래전 일이지만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라는 레테르는 여전히 유효하여서, 그는 사회적 명사이다. 여기저기서 강연 초청을 받고 연구소의 소장 자리를 제안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지위와는 상관 없이 그는 크나큰 곤경에 처해 있다. 그것은 여자 문제 그것도 자신이 저지른 불륜이 아니라 자신의 아내의 불륜으로 인한 문제이다.
“그녀에 대한 갈망을 거둬들여야 했지만 갈망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를 원하기를 원했다...” (p.19)
그의 아내 퍼트리스는 그의 다섯 번째 결혼의 산물이다. 그는 이미 메이지, 루스, 엘리너, 캐런과 결혼한 적이 있고 이들 모두와 이혼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퍼트리스에게 느끼는 감정을 느낀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는 수많은 여자들을 만났고,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였고, 퍼트리스와 결혼한 이후에도 그렇게 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퍼트리스만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퍼트리스만은 강하게 그의 갈망을 거부하는 중이다.
“... 어쨌거나 비어드는 전에 없이 인류애를 느끼고 있었다. 인류도 자신을 좋아할 거란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 모두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망각될 운명에 직면해 있지만 아무도 심하게 불평하지 않는다. 종으로서 인간은 상상 가능한 최고의 종은 아니지만 분명 현존하는 최고의, 아니, 가장 흥미로운 종이다...” (pp.133~134)
그는 참을 수 없는 갈망 혹은 갈증 속에서 북극으로 떠난다. 아내를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러나 아내를 잃게 되고 말 것이라는 짐작 속에서 모든 것을 두고 떠난 북극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얼마간은 자신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끼고 돌아오지만 그가 자신과 퍼트리스의 집에서 발견한 것은 발가벗은 남성이다. 자신이 우두머리로 있는 연구소의 말단 연구원인 남자와 맞닥뜨려야만 한다.
“토비, 잘 들어요. 지구온난화는 대재앙이에요. 안심해요.!” (p.345)
소설은 세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2000년, 2부는 2005년, 3부는 2009년이다. 1부의 마지막에서 비어드가 맞닥뜨린 남자는 결국 사고로 죽는다. 비어드는 차분하게 이 사고를 처리하는데, 그로 인해 퍼트리스의 또다른 내연남이었던 건축업자 타핀을 감옥에 넣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는 이제 벌거벗은 남성 올더스가 남겨놓은 발상을 발전시켜 지구온난화 해결을 위한 비즈니스에 한창이고, 멜리사라는 여인의 따듯한 사랑을 받고 있다.
“캐트리오나는 멜리사와 달린보다 먼저 아빠를 발견하고 불분명한 발음으로 소리를 지르며 혼잡한 테이블 사이를 지나 그를 차지하려 달려왔다. 비어드는 딸을 맞이하려고 일어서며 심장에서 무언가 부풀어오르는 듯 생경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딸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데 의문이 들었다. 자신은 사랑인 것처럼 보이려고 해도 이제 믿어주는 사람이 있긴 할까.” (p.441)
하지만 이 남자 비어드의 마지막, 그러니까 소설의 마지막은 다시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십여 년 전 퍼트리스로 인해 겪은 고통은 버전만 바뀌었을 뿐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비어드를 둘러싸고 있는 인문학적 패러다임은 그대로이다. 그가 자신의 과학적 능력을 통해 바꾸어 보겠다 생각하는 물리적 환경과 (다름 아닌 바로 그로 인해)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가 같은 공간에 위치하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소설의 마지막 순간에 폭발한다.
이언 매큐언 Ian McEwan / 민승남 역 / 솔라 (Solar) / 문학동네 / 446쪽 / 2018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