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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0. 2024

박규리 《아무튼, 딱따구리》

제 삶의 기저에서 올바르게 활약하는 더 많은 딱따구리들을 위하여...

  연애를 할 때 아내는 딱따구리 만화인 우디 우드패커(Woody Woodpecker)의 딱따구리 소리를 에에에에헤~, 모사하는 개인기를 종종 보여주었다. 나는 재미있어서 몇 번이고 부탁을 하고, 아내는 수줍어하며 몇 번이고 흉내내주었다. 나는 보답으로 짱구춤을 추고는 했고, 아내는 그것을 재미있어 했고, 결혼을 한 다음에도 종종 짱구춤을 보여 달라 졸랐다. 우리는 상대방이 골이 나 있으면, 시키지 않아도 딱따구리 소리를 내거나 엉덩이를 흔들어서, 상대방을 달래주고는 했다.

  “딱따구리는 숲, 사막, 정글, 도시 등 전 세계 다양한 서식지에 살며 부리로 나무를 두들기는 재미있는 습성으로 유명한 텃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딱딱딱’ 하는 소리와 날아다니는 큰 새를 뜻하는 ‘구리’가 만나 ‘딱따구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 세게 180여 종 가운데 한국에는 크낙새, 까막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쇠딱따구리, 여섯 종류가 있다. 가장 커다란 종류인 크낙새는 안타깝게도 거의 멸종이 확실시되었고, 까막딱따구리와 큰오색딱따구리도 이젠 드물다. 우리 동네 뒷산에는 오색딱따구리가 가장 흔하고, 이따금 청딱따구리와 쇠딱따구리가 보인다.” (p.21)

  지극히 사적인 자세로 지극히 사적인 것에 대하여 서술하는 특징을 지지는 아무튼 시리즈의 이번 소재는 딱따구리이다. 도무지 딱따구리를 가지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나 싶었는데, 읽다 보니 딱따구리를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졌다. 딱따구리로 환경을 이야기하고, 딱따구리로 동물을 이야기하고, 딱따구리로 나를 이야기하고, 딱따구리로 남편을 이야기한다.

  “나 박규리 딱따구리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공대 소속 ‘산업지속가능성연구소(Centre for Industrial Sustainablility)’에서 일하는 지속가능 디자인 연구원이다... 이제는 제품 디자인보다는 제조 공정의 디자인,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산업 시스템을 연구하는 연구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특정 국가나 산업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혁신의 범위와 속도를 극대화해 생태계 파괴와 기후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방안을 두루 찾고 있다.” (pp.27~28)

  특히나 나 딱따구리와 남편 딱따구리의 맞춤인 만남이 재미있다. 생태계의 유지를 기반으로 하는 지속가능한 산업 시스템을 연구하는 나와 인간과 자연이 균형을 이루는 환경을 유지하고자 하는 철학을 기조로 환경 운동을 하고 있는 남편의 만남은 절묘하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만남을 지켜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의 거처에, 강릉에 고척동에 캠브리지에 깃드는 딱따구리 등이 사랑스럽다.

  “남편 김산하 딱따구리는 어릴 적부터 각별했던 동물 사랑을 지금까지 잘 간직해 동물을 연구하는 어른이 되었다... 지금은 학문적인 동물 연구에서 더 나아가 대중에게 동물과 우리가 처한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극적으로 알리고, 인간과 자연이 균형을 이루는 환경 만들기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pp.28~29)

  책을 읽으며 선배 H가 떠올랐다. 어느 오랜만의 만남에서 선배 H와 나는 동태 찌개를 먹었는데, 나의 식사가 모두 끝난 다음까지 그녀는 남은 건더기를 조금씩 조금씩 한참동안 더 집어먹었다. 나는 지켜보다가 도대체 무얼 하는 거예요, 라고 물었고 그녀는 그냥 남기고 싶지 않아서 되는대로 끝까지 먹는 중이야, 라고 심상하니 대꾸했다. 오래 전 일인데, 그녀가 여전히 자신의 삶의 기조를 바꾸지 않았음을 나는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자원 순환의 우선순위에서 보면 재활용(recycle)보다는 재사용(reuse), 재사용보다는 쓰레기 줄이기(reduse)가 환경영향 면에서 가장 우수하다. 개별적인 쓰레기 하나를 되살리는 디자인 시도는 여기저기서 많이 이루어지지만 소규모의 단발적인 시도에서 벗어나 대규모의 고부가가치 비즈니스를 창출해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주된 연구 관심사이기도 하다.” (p.201)

  책을 읽으며 직전에 읽은 《훈데르트바서》를 떠올리기도 했다. 훈데르트바서가 자신의 예술적 창작혼을 불사르며 행한 일을 책의 저자 그리고 그 남편 또한 자신들의 삶의 내부에서 실천하고 있구나, 여겼기 때문이다. 찾아보면 주변에 그런 이들이 꽤 있기도 하다. 선배 H도 그렇고, 후배 H와 그 남편인 선배도 나름대로 그러한 삶의 기조를 견지하려 노력하는 중인 것을 알고 있다. 아내도 언제든 나설 준비가 되어 있고, 이제는 내 차례인 것도 같은데...


박규리 / 아무튼, 딱따구리 / 위고 / 231쪽 / 20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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