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쿳시 《마이클 K》

가장 의지가 없는 자가 발현하는 의지에 대하여...

by 우주에부는바람

“기차는 측선에서 나와 우스터 뒤쪽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빨래를 널고 아이들이 담벼락 위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기차가 점점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K는 전화선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까마귀들이 날고 있는, 몇 마일에 걸쳐 아무것도 없이 황량하게 버려진 포도밭을 지나쳤다. 기차는 산으로 들어서면서 몹시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K는 와들와들 떨었다...” (p.58)


요즈음 이런 문장들이 마음에 든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전화선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나도 본 적이 있다. 혹은 있다고 여겨진다. 기차가 아니라 버스를 타고 가면서였을 수도 있다. 바르게 달리는 기차, 기차를 타고 가는 나 혹은 사람들, 내가 바라보는 것, 그러다가 다시 기차, 그리고 와들와들 떠는 나, 로 이어지는 식의 문장이 마음에 든다. 마음껏 전지적인데, 그것을 들키지 않는 그런 문장이다.


“그는 밤새도록 걸었다.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때로는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에 전율감마저 느껴졌다. 날이 밝기 시작하자 그는 길을 벗어나 광활한 곳으로 접어들었다. 그는 숨어 있다가 불쑥 튀어나와 멀리 도망가는 사슴 때문에 몇 번 놀라긴 했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다...” (p.129)


위의 문장에서는 어떤 애매함을 발견하고 좋아했다. 사슴을 발견하여 놀란 다음 ‘아무도 보지 못했다’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그것이 사슴 말고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라고 읽히기도 하고, 사슴을 발견하여 놀랐는데, 그 장면을 아무도 보지 못하여 다행이었다, 라고 읽히기도 한다. 정황상 전자로 해석하는 것이 맞겠는데, 혼자 후자로 해석해보고서는 이 와중에 웃긴데, 하였다.


"... 만약 본체들이 기생충들, 게으름의 기생충들과 군대와 경찰과 학교와 공장과 사무실에 은밀하게 스며들어 있는 또 다른 기생충들, 마음의 기생충들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하다면 어쩌겠는가? 그런 경우에도 여전히 기생충은 기생충이라 불려야 하는가? 기생충들에게도 살과 몸이 있었다. 기생충들도 잡아먹힐 수 있었다. 어쩌면 수용소가 도시에 기생하고 있다거나 도시가 수용소에 기생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누가 목소리를 크게 내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이지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p.153)


소설은 의미심장한데, 그 의미에 깊숙이 다가가기엔 시절이 많이 흘러가버렸다. 소설은 1983년에 출간되었고, 아직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사라지기 전이다. 넬슨 만델라가 출소한 것이 1990년이니 아직 그가 감옥에 있을 때이다. 마이클 K는 그런 시절, 그곳에서 태어났고, 온전치 못하였다. 온전치 못하였지만 정원사로 일했고, 엄마인 안나 K와 함께였다.


“그는 하나의 돌멩이 같다. 태초부터 어딘가에 조용히 있다가 지금은 갑자기 손에 들려져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아무렇게나 건네지는 돌멩이 같다. 주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과 자신의 내면적 삶에 갇혀 있는 딱딱한 작은 돌멩이. 그는 이러한 기관들과 수용소들과 병원들을 돌멩이처럼 통과한다. 전쟁의 내장을 통과해서, 태어나게 하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않은 존재...” (p.179)


소설은 그런 마이클 K에게 닥친 위기의 상황, 그러니까 산사람과 정규군이 벌이는 내전이 심각해지고, 엄마인 안나 K는 아프고, 안나 K의 고용주는 사라지고, 안나 K가 자신의 고향 땅으로 돌아가길 원하면서 시작된다. 이제 마이클 K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도시를 떠나 난생 처음 여행길에 오르고, 그 와중에 엄마는 죽고, 마이클 K 자신이 그저 엄마의 고향이라고 생각한 어떤 장소에 도착한다.


“... 당신이 도시의 그늘에서 삼십 년을 살았고, 전투지역에서 한 철을 자유롭게 떠돌다가(당신이 한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생명을 부지한다는 것이, 가장 힘이 없는 애완용 오리새끼나 고양이새끼나 둥지에서 쫓겨난 새새끼가 생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온전히 살아왔다는 것이 놀랍기는 하다. 서류도 없고,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당신이 말이다. 모호한 중에서 가장 모호한, 불가사의할 정도로 모호한 당신이 말이다.” (pp.188~189)


정원사로 일한 그에게 자연은 친숙하지만 동시에 낯선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를 쓰지만 연거푸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사람들은 그를 가두거나 방치하고, 그는 자꾸만 돌아가고자 한다. 그 모든 과정에서 그는 어떤 식으로든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그는 그들에게 그렇게 비춰지지 못한다. 다만 수용소에서 그를 간호하였던 이만이 그를, 그가 겉으로 보여주지 않는 그것을 발견한다.


“... 당신은 당신 나름의 방식으로 소중한 존재예요. 당신은 인류 초창기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사람이에요... 우리는 모두 역사의 가마솥 속으로 굴러떨어졌어요. 그런데도 당신만이 당신의 바보 같은 빛을 따르며, 고아원에서 시간을 벌고 (누가 그곳을 은신처로 생각했겠어요?) 평화와 전쟁을 피하며, 아무도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벌판에서 잠복하며, 시간 속을 떠돌고 계절을 지켜보며, 모래알이 그러한 것 이상으로 역사의 행로를 바꾸려 하지 않으며, 옛 방식으로 살아남았어요...” (p.201)


작가는 정확히 어떤 배경이나 시간을 소설 속에서 밝히고 있지 않다. 마이클 K가 어떤 인종에 속하는지 알지 못하겠고, 마이클 K가 있는 곳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라는 사실도 작가가 존 쿳시라는 사실로부터 그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그저 소설에는 제 의지대로 살기를 원하는 마이클 K가 있고, 그러한 마이클 K를 가로막는 이런저런 상황이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마이클 K와 그를 가로막은 상황들은 아파르르헤이트가 절단 난 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도 여전히 그리고 다른 어딘가에도 꾸준히 존재할 것이다.



J. M. 쿳시 J. M. Coetzee / 왕은철 역 / 마이클 K (Life & Times of Michael K) / 들녘 / 255쪽 / 2004 (1983)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고타 크리스토프 《문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