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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0. 2024

이승우 《만든 눈물 참은 눈물》

드라마틱한 인생이 아니어도 우리들 삶의 곳곳에는...

  드라마틱한 인생이 아니었어도 우리들 삶의 곳곳에는 눈물이 포진하고 있다. 오랜 시간 운영해 온 블로그 검색창에 눈물, 이라는 단어를 넣었더니 무려 이백여 개의 글이 검색되었다. 내가 쓴 눈물도 있고, 남이 쓴 눈물도 있다. 나는 내가 쓴 눈물에 대한 글을 몇 개 열어서 들여다보았다. 나는 눈물을 아끼기 보다는 남발하는 쪽에 가까웠고, 그것은 때때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 안 나오는 것을 ‘일부러’ 나오는 것처럼 하거나 나오는 것을 ‘애써’ 참는 척하거나 연기일 수밖에 없고, 감정을 배반한다는 점에서 이 연기는 자연에 반한다. ‘일부러’든 ‘애써’든 이 연기를 보는 일이 불편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쏟아지려 하는 것은 쏟아지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나오지 않는 것은 내보내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운 모든 것은 비의도적이고(자연에는 의도가 없으니까). 쏟아지려는 것을 쏟아지지 않게 막거나 나오지 않으려는 것을 나오도록 만드는 것은, 인간이 흔히 하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짓인데, 그것은 인간이 비자연이기 때문이다.” (p.19)


  ‘만든 눈물 참은 눈물’은 짧은 소설들을 엮어 만든 이승우의 이번 책에 실린 첫 번째 글이다. 거기에서 작가는 자신이 포착한 한 순간, 그러니까 한 영화배우가 기자 회견을 하면서 보여준 눈물의 어떤 한 포인트를 케이라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그려내고 있다. 책에는 이처럼 작가가 발견한 어느 한 순간, 그것이 무엇으로 발전할지 알 수 없는, 혹은 이미 진화하여 또 다른 글이 되기도 한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작가들은 자기가 전에 쓴 글을 늘 불만스러워하고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꾸 손을 대지만, 아무리 손을 대도 만족스러울 수 없고 그 작업이 반드시 더 좋은 쪽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닌데, 그것은 처음 집필할 때 그가 쓸 수 있는 최선의 문장을 찾아 쓰기 때문이라는, 대부분의 편집자가 아는 사실을 아는 작가들은 많지 않다.” (pp.39~40)


  살다보면 이런 이야기들쯤, 그러니까 어린 나무 옆을 떠받치는 부목 같은 이야기들쯤 누구나 갖고 있지만 소설가에게 그런 이야기는 언제든 어린 나무와 자리를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어린 나무는 언제든 큰 나무가 될 수 있지만, 부목이 어린 나무로 바뀌는 것은 어려운 법, 어쩌면 이 책에는 그러한 색다른 연금술의 레시피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는데, 물론 난 그걸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 투병과 치료의 기간 동안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는 차곡차곡 쌓여갔다. 내일 죽게 될 거라고 해도 의심 없이 믿을 정도가 되어 있었으므로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의심할 여유가 없었다. 의사가 심각하다고 하면 심각한 것이고, 의사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것이었다. 자기 몸의 상태를 의사가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선언에 의해 자기 몸이 반응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은 그가 환자이기 때문이었다.” (pp.107~108)


  재미있는 것은 이 짧은 소설들에 등장하는 몇몇 이들은 작가의 분신이 아닐까 넘겨 짚게 되는 거다. 작가의 분신술을 통과한 몇몇 인물들이 조금씩 목소리를 바꿔가며 등장하고 사라지는데 은근히 상상하게 된다. 소설가인 작가가 소설가인 등장인물을 통해 사소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흘리고 다니는 것 같다. 그렇게 흘린 부스러기들을 주워가다보면 작가의 핵심에 가 닿을 수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 이상한 달콤함은 그를 짓누르는 감당하기 힘든 슬픔과 섞여 거의 분간되지 않았고, 차라리 슬픔의 다채로운 스펙트럼 가운데 하나인 것처럼 여겨졌다. 기이하지만 슬픔의 가장 안쪽에 그런 것이 숨겨져 있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것은 슬픔과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슬픔으로부터 떼어내려고 하는 순간 그 달콤함도 같이 부서져 사라지리라는 걸 그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동시에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자기가 그 달콤함이 사라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느꼈다. 그리하여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는 유혹에 행복했다. 그는 그 달콤함이 사라질까 봐 실연의 슬픔에서 놓여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고, 그 달콤함을 다시 맛보기 위해 슬픔의 깊은 곳으로 기꺼이 들어가기를 원하게 되었다.” (p.160)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짧은 소설들 사이사이에 유화도 몇 편 자리 잡고 있다. 서재민이라는 화가의 회화들인데, 벌써 끝이네, 소설이 끝나는 순간에 그림이 나타나면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비슷한 연배의 다른 작가들과 비교하여도 꽤나 다작인 작가가 잠시 쉬어가는 타이밍에 만들어낸 책의 컨셉에 그림들이 어울릴 수도 있겠다 싶다. 흰 모자와 흰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어둔 테라스 창을 배경으로 녹색 바닥을 걷는 그림이 나는 좋았다.



이승우 / 서재민 그림 / 만든 눈물 참은 눈물 / 마음산책 / 197쪽 / 20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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